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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꽃보리 산타잔치 때
크리스마스 꽃보리 산타잔치 때 ⓒ 양대석
2005년 7월 9일 설립된 경기도 광주 꽃보리 푸른학교(대표 김수영)는 대표 교사를 비롯해 각각 저학년, 고학년반 주임교사와 영어담임 교사 한 명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임교사를 비롯한 모든 푸른학교 활동가는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소외된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하려는 의지가 높아 학부모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신뢰가 곰비임비 일어난다. 푸른학교에 3남매를 보내고 있는 김아무개씨도 그런 학부모 중 한 사람이다.

"아이들이 학교 담임 선생님보다 푸른학교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무료로 운영되는 곳이라 처음에는 그리 신뢰하지 않았어요.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없이 사는 사람들 무시하기만 하지 어디 관심이나 두나요. 보내놓고 나서 한두 달은 내내 불안했죠.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적응 잘하고, 밝아진 걸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는걸요. 요사이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푸른학교 선생님과 상담합니다."

현재 초등반 아이들 30여 명이 광주시 역동 한 상가 건물 3층에 있는 푸른학교 공동체에서 방과 후에 놀고, 밥 먹고 학습한다. 그동안 함께 놀 친구가 없어서, 가난해서, 공부하고 싶어도 같이 할 선생님이 없어서 너무 일찍 외로움을 배우고, 절망을 경험했던 냉소적인 아이들이 푸른학교에 온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몰라보게 밝아지고 있다.

"푸른학교를 열고 사회 양극화의 심각성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광주에서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분당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백만 원짜리 과외를 받으면서 공부하는데, 여기는 푸른학교가 아니면 저녁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아이들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닥친 냉정한 현실과 작은 가슴에 받은 모진 상처를 보면서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많이 비관적이고 날카로웠거든요."

광주 꽃보리 푸른학교 김수영 대표의 말이다.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인데 처음 푸른학교에 왔을 때 한글조차 모르더군요. 그 아이가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거죠. 저학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시키는데 아이 눈치가 이상하기에 나중에 살짝 불러서 물어봤더니 글을 모른다고 했답니다. 그 아이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데 아버지가 생계를 꾸리는데 고단한 나머지 한글 교육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한 거죠.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글을 가르쳐 주지 않잖아요. 글을 모르는 채 2년을 묵묵히 다닌 거죠. 다섯 살짜리도 읽는 한글을 모른 채 학교를 다니면서 그 아이가 알게 모르게 받았던 상처와 소외감의 깊이가 얼마나 컸을지 제대로 짐작도 못하겠습니다. 저학년 선생님이 관심을 두고 차근차근 한글을 깨우치게 도와주니까, 아이가 몰라보게 밝아지고 자신감이 붙고 당당해지더군요. 재정이나 자원 교사, 물품 등 여러 운영상의 어려움이 많지만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과 함께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푸른학교는 매달 적게는 오천 원, 많게는 수만 원씩 CMS로 보내오는 '개미' 회원들(2006년 2월 현재 130여 명)의 후원을 받아 운영한다. 학습에 필요한 여러 학용품과 물품 그리고 쌀, 부식을 꾸준히 감당해주는 후원자들도 있다.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 정신이 푸른학교를 지켜주는 힘인 셈이다.

푸른학교에는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아이들이 많다. 어떤 아이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푸른학교에 왔는데 오랫동안 씻지 않아 몸에서 군내가 날 지경이고 머리에는 이가 득시글했다고 한다. 교사들이 씻기고 옷도 빨아 갈아입히면서 아이에게 정성을 쏟았으나 부모가 생활고로 인해 이혼한 후 아이는 학교를 떠나 혼자 친척집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교사들은 이 아이의 연고를 끝내 찾을 수 없어 데려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놓쳐버린 아이들도 있지만, 푸른학교에 발을 딛고 선 아이들은 시나브로 예의 아이다움을 회복해간다. 푸른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맡은 한 담임 교사(탄벌 초등학교)는 푸른학교가 아이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에 감탄한다.

"학년 초에는 아이의 얼굴에서 그늘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정 형편을 보니 아빠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이를 반신불수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돈 벌러 간다고 다른 곳으로 가서 간간이 돈만 부쳐주는 모양이더군요. 아이가 학교에서 다녀오면 혼자 밥 해먹고, 청소하고, 혼자 놀면서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2학기부터는 아이가 몰라보게 밝아진 거에요. 다른 아이들과 장난도 하고, 숙제도 잘 해오고, 학습태도도 많이 좋아져 집중력을 보이더군요. 갑자기 바뀐 이유를 일기검사를 하면서 찾았습니다. 일기마다 푸른학교 이야기뿐이더군요. 오늘은 푸른학교에서 현장학습을 했다, 오늘은 영어 공부를 했다, 오늘은 저녁에 뭐가 나왔다, 오늘은 뭘 하고 놀았다, 오늘은 무엇 때문에 싸웠다 등등 이제 겨우 아이다워졌어요."


단지 함께 이야기할 친구, 함께 공부할 선생님, 함께 볼 책, 함께 놀 공간만으로도 지금 이 아이들은 행복하다.

엘리 위젤은 "어린이의 죽음은 신의 죽음"이라고 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아이들이 희망이고 우리의 미래다'는 표어는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그저 공염불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푸른학교 아이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양극화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 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는 것이, 5월 가정의 달을 맞는 우리의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광주 꽃보리 푸른학교(http://gjblueschool.com/ 경기도 광주시 역동/ 031)761-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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