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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연찬회를 마친 뒤 기뻐하는 아이들과 함께...
ⓒ 장옥순
<백만불짜리 열정>을 쓴 이채욱 사장의 글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최고가 되려면 최고에게 배워라. 뜨거웠던 첫 마음을 잊지 말고 열정과 겸손으로 무장하라" 였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직원을 최고의 부모로 만들어 줄 수 없는 리더는 가장 초라한 사람이고, 가장 무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내가 살아온 삶을 새삼스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내 반 아이들을 최고의 어린이로 만들어 줄 수 없는 선생님은 가장 초라한 사람이고 가장 무례한 선생님이다"로 바꿔 놓고 보면 내가 초라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아픔과 좌절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첫 마음과 열정이 지금 내게 남아 있는가를 묻는다면, 결손 가정 아이들과 지적 능력 부족으로 손길이 많이 가야 하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산만함과 싸움질 앞에서 무너지고 좌절했던 3월은 열정과 겸손, 첫 마음까지 다 잊은 탓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힘들다는 핑계로 독서마저 소홀히 했던 3월이었습니다. 모든 시작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잊고 아이들 탓을 했던 부끄러움을, 붉은 가슴으로 말없는 열정을 전하는 철쭉꽃 앞에서 한없이 낮아진 4월입니다. 꽃들이 전하는 열정과 인내의 시간, 말없는 겸손, 꽃을 피우기로 한 그 약속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가르침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행복한 교실수업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의 수업연찬회

▲ 전라남도교육청 주관 '수업연찬회'.
ⓒ 장옥순
다시 일어서기로 다짐하던 날, '최고에게 배우리라'는 다짐을 생각하며 특별연구교사 수업연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4월 26일 오후 1시 30분부터 강진중앙초등학교(교장 오인성)에서 실시된 전라남도교육청 특별연구교사 수업연찬회에는 전라남도교육청의 특별연구교사 열 분의 수업을 보고 배우기 위해 몰려든 선생님들로 강당을 빼곡히 채워졌습니다. 그리고도 좌석이 부족해 선 채로 개회식에 참석해 강의를 듣는 열정은 철쭉꽃의 붉음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세상에서 선생님들을 향해 던지는 우려와 질책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다 하기 위해 배우고 또 배우는 것입니다. 새내기 선생님은 물론 연세 지긋한 선배 선생님들까지 마지막까지 수업협의회에 참석하여 기술이 아닌 '양심적인 가르침, 진실한 목소리'를 담은 수업 만들기에 동참한 것입니다.

나는 무안 몽탄초등학교 김형만 선생님이 진행하는 5학년 국어 수업을 보기 위해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수업을 기다렸답니다. 최고에게 배우자는 동기를 안고 찾아간 수업이었던 만큼 보이는 것 모두가 새로움과 감동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후배이기도 한 김형만 선생님은 오늘의 수업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수업 시간 내내 열정에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국어교육의 최종 목표인 '창의적인 국어사용 능력 신장'을 위해 교육연극 기법 중에서 '타블로(움직임 없는 정지 동작)' 기법을 연관시켜 전개하면서 아이들에게 흥미진진한 수업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예술적 수업'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깨달음과 앎의 기쁨을 함께 느끼는 수업을 '예술적 수업'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날 수업은 내가 보았던 수업 중에서 가장 예술적인 수업이었습니다. 낯선 새 선생님과 40분간 호흡을 나누며 공부하는 아이들의 표정과 왕성한 표현력, 더 공부하고 싶어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수업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40분간의 수업 뒤에 이어진 수업협의회와 지도조언까지도 배움의 연장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생명이 교실수업 개선에 있다는 전라남도교육청의 목소리가 현장의 선생님들 속에 내면화되었음을 반증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곳곳에서 찾아오신 선생님들의 열정, 배우고 또 배우려는 겸손... 이처럼 아이들의 행복한 교실수업을 위해 애쓰는 현장을 보신 분이라면 '스승의 날'을 없애자고 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스승의 날을 없애자구요?... 죄인으로 매도당하는 선생님들

▲ '타블로(움직임 없는 정지 동작)'를 이용한 수업 현장.
ⓒ 장옥순
<한겨레신문>의 칼럼 내용(칼럼 바로가기)으로 인해 전국의 선생님들이 죄인으로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칼럼에 등장하는 수치스러운 단어(쓰레기 운운) 앞에 망연자실해질 만큼 절망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생님들은 행복한 교실을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열정과 겸손을 무기로 다시 일어서서 세상이 던진 돌마저도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주춧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날'은 내가 어버이로서 내 자식에게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가를 돌아보는 날이고, '어버이 날'에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함을 반성하고 죄스러워 하듯이, '스승의 날'에는 은사님이 베풀었던 가르침과 사랑을 생각하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죄짓지 않는 선생이 되기를 비추어 보며 엷어진 정열을 부끄러워하는 날입니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꽃바구니를 보내주거나 안부를 물어오는 제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연로하신 은사님을 찾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갖습니다. 5, 6학년 담임이셨던 선생님께서는 가난하고 허약했던 나를 위해 삼계탕을 고아 놓고 집에 데려가 먹게 하셨습니다. 그 분이 베풀어 주셨던 은혜와 사랑을 다시금 돌이켜 보곤 합니다. 날마다 은사님을 생각하지 못하니 스승의 날 만이라도 마음껏 그리워하고 죄스러워하면서, 스승을 가진 행복함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다가설 힘을 얻곤 했습니다.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다는 세간의 비판과 질책은 교육에 거는 학부모의 기대와 소망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이므로 무관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가발전에 교육만큼 공헌한 분야가 없다고 할 만큼 높은 점수를 받았던 과거를 생각해 봅니다. 천직과 소명의식, 높은 자부심으로 제자들을 훈육했던 선생님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한 세상입니다.

어느 직업보다도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 진실한 인간애의 바탕위에 실력 있는 선생님을 원하는 학부모님. 그러한 바람을 만족시키지 못해 불거지는 잡음의 일차적인 책임은 선생님들에게 있음을 부인해서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는 철저한 도덕성, 힘들어하는 제자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어버이의 심정, 인생의 길을 바르게 갈 수 있도록 훈육하는 지엄함, 언행으로 본을 보여야 하는 어려운 길이지만 무럭무럭 자라며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를 무엇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채찍 못지 않게 찬사와 격려도 필요합니다

▲ 철쭉꽃처럼 붉은 열정으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 장옥순
돌아오는 스승의 날이 오기 전에 이채욱 사장님의 <백만불짜리 열정>을 한 조각만이라도 내 가슴에 품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겸손함으로 낮아져서 선생님들에게 던지는 돌팔매를 솜이불로 받을 수 있는 정신 자세로 무장하고 싶습니다.

수업연찬회에서 그렇게나 강조하시던 '진실한 가르침'은 열정과 겸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줄인다면 교육은 '사랑' 이겠지요.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그런 사랑이지만, 어버이의 그것처럼 맹목적인 사랑으로는 제자를 훈육할 수 없으니 교직은 더 힘듭니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자로서 교단에 던지는 매를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는 선생님들까지 죽이지 마시길 빕니다. 정 때리시려거든 한번쯤 당신의 자녀가 배우는 교실에 가셔서 40분 수업을 한 번만 해보신 다음 돌을 던지셔도 늦지 않습니다.

학교 현장이 혁신적으로 변화되는 것은 새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원대한 설계도와 엄청난 비용, 시간과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육 현장은 자기 정화 기능을 살려 변화되어가는 곳이므로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학부모님! 당신의 자녀를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 거듭나는 5월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채찍도 필요하지만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의 박수도 함께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들면 참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에세이> <한교닷컴>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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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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