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푸른숲
[최희영 기자] 조선 후기, 유통업을 통해 엄청난 재물을 모은 제주 지역의 거상이 있다. 제주에 최악의 기근이 닥친 1795년 전 재산을 내놓는 등 주체적인 삶을 개척한 여성 김만덕이 그 주인공.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는 세밀한 자료조사와 정교한 상상력으로 김만덕의 일대기를 복원한 책이다.

책은 김만덕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불가능을 모르는 운명의 개척자’로 김만덕을 묘사한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기녀로 살아가다 스무 살 무렵 스스로 관아를 찾아가 양민 신분을 회복한다. 그 당시 양민 신분을 회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첩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만덕은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관아를 찾아가 당당한 태도와 논리적인 언변으로 본래의 신분을 되찾았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보호받기를 거부하고, 책의 제목처럼 ‘새가 되어 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신분을 회복한 김만덕은 행상으로 돈을 모아 포구에 큰 객주를 차린다. 물건을 위탁받아 팔거나 거간하는 중간상인 역할도 했다. 유통업에 대한 통찰력과 과감한 투자, 모험정신으로 변방이라는 지리적 한계와 여성에게 강요된 시대적 굴레를 극복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더군다나 김만덕은 객주 운영에만 매진하면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이 책은 만덕이 독신을 택한 것에 대해 “주체적인 삶에 대한 자각과 사회제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여성 CEO로 이름을 떨쳤던 김만덕은 최악의 기근에 허덕이던 제주민을 위해 전 재산을 관아에 쾌척한 여걸이었다. 출처=김만덕기념사업회
조선시대 최고의 여성 CEO로 이름을 떨쳤던 김만덕은 최악의 기근에 허덕이던 제주민을 위해 전 재산을 관아에 쾌척한 여걸이었다. 출처=김만덕기념사업회 ⓒ 우먼타임스
또한 이 책은 김만덕을 ‘나눔을 실천한 선구적 자선가’로 평가한다. 1795년 제주에 최악의 기근이 닥쳐 민중들이 신음하자 전 재산을 관아에 기부한 것이다. 기부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전 시대에 전 재산을 내놓은 것은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이 책은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이제 곳간을 열어라”라고 외친 김만덕의 결단력을 높이 평가한다.

고려대 초빙교수인 지은이는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박진감 넘치는 일대기를 전한다. 획일화된 전기에서 벗어나 이야기체를 도입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실 관계를 엄밀히 고증하는 역사학자의 입장이 아니라, 과거의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입장에서 책을 구성한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에서의 장애인 인식’,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의 글을 통해 여성, 장애인 등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온 지은이의 열정이 김만덕의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삶과 만나 역동적인 상상력을 빚어낸다.

한 여성이 ‘나’를 발견하고 자아실현에 매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어여쁜 아내, 인자한 어머니가 되기보다는 꿈을 가진 한 사람의 ‘나’로 살았던 김만덕은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는’ 삶의 가치를 전한다.
댓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