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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사다 준 국화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사다 준 국화 ⓒ 김현
그제는 아내의 서른여덟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생일날 아침 미역국도 끓여주지 못하고 겨우 아침밥만 해서 먹고 출근하니 마음이 개운치 못합니다. 지난 내 생일 때 아내는 아이들과 풍선을 달고, 선물을 사고 나름대로 거창(?)하게 남편의 생일을 챙겨주었는데 아내의 생일 땐 그러지 못했습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마음이야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출근해서도 '좀 일찍 일어나서 미역국이라도 끓여줄 걸'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내 어머니도 아내도 늘 남편과 자식만을 생각하고 챙겨주고 한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겠지만 어머니 세대만 해도 어머니는 늘 뒷전이었습니다. 제 기억에도 어머니의 생신을 제대로 챙겨드린 것은 결혼을 하면서인 것 같습니다. 남자만 넷인 관계로 살뜰히 부모님 생신을 챙겨드리는 일이 거의 없어 생일이란 남의 행사처럼 생각했는데, 아내라는 존재가 생기면서 아내가 시집 부모님의 생신을 챙겨드린 것이지요.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무심한 남자, 유심한 여자' 뭐 이런 말까지 떠올랐습니다.

출근해서 아내에게 뭔가 해주긴 해야 할 텐데 뭘 할까 생각하다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냥 넘어가려니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자꾸 밀려와서요.

편지 내용이라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마음 착한 우리 순이가 아내가 되어주고, 사랑스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주고… 말은 안 하지만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며 처음엔 생일 축하내용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우리 모두 건강하고 웃으며 잘 살자 뭐 이런 내용입니다. 연애 땐 닭살 돋는 말도 가끔 하고 그랬는데 10년이 넘은 세월이 흐르자 그것도 잘 되지 않습니다.

편지를 써서 속주머니에 곱게 넣어두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전화해서 필요한 게 뭐 있냐고 물으니 아무것도 필요 없다며 일찍 오라고 합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아빠, 케잌 케잌' 하며 소리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작은 케이크를 사서 나오다 양동이에 꽂혀 있는 소국(小菊)을 보았습니다. 다 팔렸는지 몇 다발 남지 않은 소국을 보며 얼마냐 물으니 사천 원에 팔았는데 삼천 원만 달라고 합니다.

"꽃병에 꽂아 놓으면 아주 좋습니다. 조금 전까지 사천 원에 팔았는데 몇 개 안 남아서 그냥 삼천 원만 받는 거예요. 자 보세요. 향기 좋죠?"

총각인 듯한 꽃집주인의 말이 아니라도 향내음이 바람에 코끝을 스쳐 지나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소국 한 다발을 사니 신문지에 돌돌 말아줍니다. 아내의 생일날 장미도 아닌 국화 한 다발을 예쁜 포장도 아닌 신문지에 말아가려니 괜히 켕기기는 하지만 '화병에 꽂을 건데 뭐' 하는 말로 안위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꽃을 들고 오며 코끝에 대어보니 향이 진하지도 않고 좋습니다. 향기를 맡자 저절로 미소가 돕니다. 아내가 좋아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아내가 문을 열어주고 아이들은 다녀오셨냐는 인사말과 함께 케이크를 받아갑니다. 아이들 눈에 꽃보다는 먹는 게 우선인가 봅니다. 아이들이 케이크를 가지고 식탁으로 가자 뒤에 숨겼던 국화를 아내에게 내밀었습니다.

"자, 당신 생일 선물."
"어머, 꽃이네. 어디서 샀어요?"
"마트에 들렀다가 보이길래… 마음에 들어? 생일 선물 치곤 너무 초라하지?"
"아뇨. 좋아요. 근데 뭐 하러 꽃을 샀어요. 밖에 나가면 온 천지가 꽃인데."
"밖에 꽃은 내 마음이 안 들어갔고, 이 꽃은 내 마음이 들어갔잖아. 신문지에 싼 꽃이지만 그래도 향기는 좋다. 내가 주는 향기라고 생각하고 받아."
"암튼 고마워요. 서방님이 주는 향기."

속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비록 신문지에 돌돌 만 꽃 선물을 받자 아내는 얼굴이 환해집니다.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나중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나중엔 좋은 선물도 주고, 근사한데 가서 밥도 먹자고요. 그러자 아내는 두고 보자며 웃습니다. 이 '나중에'라는 말이 처음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아내는 남편의 말을 믿어줍니다. 그러면서 화병에 꽃을 꽂으며 '호호, 꽃이 꽃을 받았네'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아직도 자신을 어여쁜 꽃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낮에 써둔 편지를 주며 입맞춤을 살짝 해주었습니다. 삼천 원의 작은 행복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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