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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태
도무지 아무것도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곳에서도 생명은 그 도도함으로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전해준다...
도무지 아무것도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곳에서도 생명은 그 도도함으로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전해준다... ⓒ 백성태

지난 3월 12일 발생한 대구 동구 지묘동 왕산 산불은 연인원 4143명, 헬기 19대, 소방차량 37대, 진화장비 1200점 등을 투입했지만 임야 3만평을 잿더미로 만들고 16시간만에 진화됐다. 자칫 강풍이 멈추지 않았더라면 팔공산 전체로 번져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뻔한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잿더미로 변한 그 곳엔 한 달 뒤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불은 지붕에 간판이 걸린 식당 마당에서 우측 능선을 타고 올라 삽시간에 번졌다. 때마침 불어온 강풍이 바라보이는 북쪽으로 불었더라면 팔공산 전체가 엄청난 재앙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의 산책길은 시간이 정지된 숯가마로

불은 지붕에 간판이 걸린 식당 마당에서 우측 능선을 타고 올라 삽시간에 번졌다.
불은 지붕에 간판이 걸린 식당 마당에서 우측 능선을 타고 올라 삽시간에 번졌다. ⓒ 백성태
왼쪽 산아래에서 불길이 올라, 오른쪽으로 번져갔다
왼쪽 산아래에서 불길이 올라, 오른쪽으로 번져갔다 ⓒ 백성태
부모들의 계모임에 따라나선 초등학생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불씨가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왕산의 능선을 타고 급속도로 번져갔던 것이다. 왕산은 태조왕건이 후백제 견훤의 군사들과 맞닥뜨려 싸우다가 몸을 피한 곳이라 해서 '왕산'이라고 이름붙여진 산이며 능선 우측 끝에 신숭겸 장군의 사당이 있다.

산불은 산등성이를 넘어 반대편 6차선 도로를 훌쩍 건너뛰어 공산댐 근처까지 옮겨 붙기도 했다. 산과 인접한 인근 아파트에는 밤새 소방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주차장 차들은 모두 대피했으며 주민들은 불안한 밤을 뜬 눈으로 새워야 했다.

화마가 지나간 곳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불길이 미처 지나지 않은 곳에는 새싹이 돋아 있지만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곳은 잿더미 상태였고, 불길에 번지지 않은 나무들도 화기에 노출되어 바싹 말라죽어 있었다. 숲으로 발길을 들여 보니 푸석거리는 재와 시커멓게 그을린 나뭇가지들로 거대한 숯가마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산불의 특징은 산림이 울창하고 낙엽이 많이 쌓여 가연성이 강하고 경사가 급해 발화가 되면 삽시간에 많은 면적에 번지는 특성이 있다. 해마다 평균 543건의 산불이 일어나 여의도 면적의 2.2배에 이르는 1844㏊의 산림이 사라지고 있고, 산불로 소실되는 피해액을 공익적 자연가치로 환산하면 엄청난 금액이 된다고 한다.

자연 환경은 우리에게 있어 더없이 소중하고 지켜가야 할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숲의 가치는 인간의 생활환경과 생존요건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조형물처럼 인위적으로 공간적·시각적 욕구만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태계를 보존시켜 우리가 함께 숨쉬고 살아가게 해주는 생명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 백성태
ⓒ 백성태
이 곳 왕산은 인근 지묘동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등산로이며 해발 250m 남짓의 완만한 등산로를 가지고 있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오르면, 좌측은 파계사, 우측은 동화사로 연결되기도 하다. 능선 우측 아래 대원사 골짜기는 거의 평지와 다름없는 주민들의 산책길로 애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적막감과 황량함으로 아무도 오를 것 같지 않게 흉하게 변해버린 능선에서 마침 가족 단위의 등산객들과 조우하면서 겨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까맣게 타버린 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전경이 삭막하게 변해 버린 산등성이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잿더미 속에서도 생명은 잉태하고 새로운 질서를 위한 힘찬 생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잿더미 속에서도 생명은 잉태하고 새로운 질서를 위한 힘찬 생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 백성태

불길에 그을려 바싹 말라 버린 잔가지들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은 가지 하나.
불길에 그을려 바싹 말라 버린 잔가지들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은 가지 하나. ⓒ 백성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제일먼저 땅을 박차고 나온 식물이 쑥이라고 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제일먼저 땅을 박차고 나온 식물이 쑥이라고 했다. ⓒ 백성태

검게 그을려 버린 도토리 사이로 반쯤 타 버린 풀잎이 파란 생명으로 고개를 내민다
검게 그을려 버린 도토리 사이로 반쯤 타 버린 풀잎이 파란 생명으로 고개를 내민다 ⓒ 백성태

산불피해에 대한 대응은 나라마다 다르다. 독일이나 일본은 인공림을 통해 적극적으로 복구하지만 미국은 자연복구상태로 방치한다. 우리나라는 인공복구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산림청·환경부·학계·시민단체 등이 최근 확정한 5개년 복원 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공복구와 자연복구의 비율을 51%(1만2252ha) 대 49%(1만1542ha)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림청 통계 발췌>

덧붙이는 글 | 작년 4월 천년고찰 낙산사가 산불로 전소한 현장을 우리는 목격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불은 거의가 사람들의 실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산불은 우리가 수십 년 일궈온 자연환경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드는 환경파괴 행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이번 팔공산 왕산 산불은 어린아이를 동반하는 부모들의 공공 본능의 실종과 무관심의 발로가 불러온 인재였음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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