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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길만 되었어도 정말 쉽게 넘었을 텐데...
이 정도 길만 되었어도 정말 쉽게 넘었을 텐데... ⓒ 문일식
그날도 여행의 다음 목적지에 가기 위해 잠시 지도를 훑어보았습니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산을 끼고 한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돌아가지 않는다면 바로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산을 넘어가는 굽고 굽은 길에 신기하게도 지방도(노란색 직사각형에 파란색 글씨) 표시가 있었고, 표시가 있는 걸로 봐서 산을 넘어가는 길이 분명히 존재함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절약할 겸 구불거리는 산길의 묘미도 느껴볼 겸 산을 넘어가는 코스로 결정했고, 네비게이션을 강제지정했습니다.

길이 차츰 좁아지기 시작하고, 길도 안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길이 차츰 좁아지기 시작하고, 길도 안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 문일식
한참을 달리다보니 약간의 경사가 생기면서 곧 산에 오르겠구나 라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르막 입구에는 '산길을 넘어가는 것은 위험하니 통행하지 말라'는 친절한 경고문구와 함께 도로진입금지표시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산길 하나만 믿고 수십 분을 달려왔는데 내심 허탈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지방도 표시가 있는데 길이 얼마나 나쁠까 싶어 경고표시를 무시한 채 산길을 올라섰습니다.

차안에서 바라본 도로의 모습...
차안에서 바라본 도로의 모습... ⓒ 문일식
처음에는 그런 대로 평탄하게 올랐는데, 가면 갈수록 길도 험해지고, 시멘트로 이어진 길조차 끊어져 먼지 폴폴 날리는 흙길이거나 흔들림이 절정인 돌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길을 달리면서 차량은 계속 요동을 쳐대고, 더군다나 도로 폭까지 좁아져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였습니다. 오랜만에 울렁거림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삐죽삐죽 나온 나뭇가지들이 차량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면서 내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운전하는 사람의 입가에서는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아무리 잔가지지만 차량에 턱턱 부딪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울렁거림의 시작... 돌길이 나타났습니다.
울렁거림의 시작... 돌길이 나타났습니다. ⓒ 문일식
오프로드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정말로 좋아할 법한 길이었지만, 승용차라면 평생 잊지 못할 고난의 길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발 500m가 넘어서고, 차는 한없이 하늘로만 향해 가는 듯했으며, 운전석 옆으로는 빨려 들어갈 듯한 천길 낭떠러지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네비게이션의 화살표가 작은 화면 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정상에 거의 다 이른 모양이었습니다.

750m가 훨씬 넘는 정상에 도착한 차량...
750m가 훨씬 넘는 정상에 도착한 차량... ⓒ 문일식
드디어 정상, 해발 750m가 훨씬 넘는 곳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울렁거리는 속을 간신히 보듬고 나니 적어도 왔던 만큼을 또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내려갈까 하고 한없이 내려가는데 대미를 장식할 사건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멈춰선 차량들... 코란도 앞에는 고장난 승용차
멈춰선 차량들... 코란도 앞에는 고장난 승용차 ⓒ 문일식
멀찌감치 차 두 대가 꼼짝도 안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앞서가던 한 대가 고장이 난 듯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앞서가던 승용차가 낮은 차고를 이기지 못하고 길 한가운데 솟은 돌에 치이며 멈춰서고 말았던 겁니다. 앞 차가 움직일 때까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차량바닥과 돌부리가 부딪치면서 기름이 새어나왔습니다.
차량바닥과 돌부리가 부딪치면서 기름이 새어나왔습니다. ⓒ 문일식
승용차가 이곳에 멈춰 서 있는 이유를 들어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맨 앞에 멈춰선 차량의 주인은 여수 영취산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이었고,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설정했더니 이 길이 나오더랍니다. 더 웃긴 것은 산을 오르던 등산객에게 이 길로 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갈 수 있다라는 대답을 듣고 올랐는데, 승용차라 차고가 낮다보니 흙길, 특히 돌길에서는 무력했던지라 옆에 계시던 부인되시는 분이 차에서 내려 돌을 골라가며 차가 다니는 길을 만들고 오셨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다가 거의 다 와서 방심한 채 차를 몰아내려가다가 그만 돌부리에 차가 걸렸고, 그 자리에 멈춰 고장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 부부로부터 산을 넘어온 사연과 하소연을 듣고 나니 측은한 생각도 들고, 이 차가 움직여야만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배를 탔다는 동질감이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올지도 모르는 AS기사와 견인차를 기다리다보니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고, 여행은 이미 물 건너 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면서 화도 나고, 아쉬움도 들었지만, 몇 시간 동안이나 차를 몰고 내려오신 분들의 노고나 자신들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몇 명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을 생각하니 감히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견인차가 도착했습니다. 이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드디어 견인차가 도착했습니다. 이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 문일식
다행히 우리보다 앞서 내려간 차량은 인근에 사시는 분이고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AS기사와 견인차를 차량이 있는 쪽으로 유도하시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입니다. AS기사는 이곳을 못 찾고 산 속에서 헤매고, 견인차는 그 지역에 유일한 차라 이곳에 급파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1시간 반을 넘어서고 있을 때쯤 AS기사가 도착했고, 이어서 산 아래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견인차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장차량이 제대로 실리는지 쳐다보고 있는 일행들
고장차량이 제대로 실리는지 쳐다보고 있는 일행들 ⓒ 문일식
고장차량이 있는 곳에서는 차를 돌릴 수 없어서 저 아래서부터 후진으로 올라오는 중이었습니다. 견인차는 마치 무인도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러오는 구조선처럼 보였습니다. 견인차는 한동안 고장차량과 씨름을 하더니 가뿐히 올라섰고, 산길 위에 갇혀 있던 3대의 차량은 그렇게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자신들 때문에 애꿎은 시간 버리셨다며 미안해 하고, 고마워 하셨고, 우리 일행들도 좋은 추억거리 남겼다 했습니다.

고장차량을 실은 견인차도, 갇혀있던 차량도 아스팔트길에 올랐습니다. 상황 끝
고장차량을 실은 견인차도, 갇혀있던 차량도 아스팔트길에 올랐습니다. 상황 끝 ⓒ 문일식
좁은 산길에 멈춰선 3대의 차량, 짜증 섞인 목소리가 오갔을 법도 한데 원인제공을 했던 사람들도, 고장 난 차량에 갇혀 점심을 쫄쫄 굶었던 사람도, 여행일정에 차질이 생겨 그날의 일정을 포기한 사람들도 모두 웃으며 헤어졌습니다. 편하기 위해 장착한 네비게이션때문에 한 부부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몸서리쳐지는 기억을 남겼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억지로 한 우리 일행 역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습니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편하기 위해 만든 것들조차 한없이 편안함만을 주지 않으며, 때로는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과 해서는 안 될 일에 자만과 만용이 더해지면서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지난 후에야 기억에 남는 일이 되었지만, 빨려 들어갈 듯한 천길 낭떠러지에서의 곡예운전이 뇌리를 스칩니다.

덧붙이는 글 |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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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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