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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적성교육 확대…학교에서 모든 것 배워요

"과소규모 학교(도교육청 기준 전교생 50명 이하 학교) 학생들은 학습의욕이 없고, 문제해결능력과 목표달성 의지가 낮으며, 성격·정서교육이 배제된다."

최근 충남 예산교육청이 예산군내 50인 이하 5개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보낸 '과소규모학교 통폐합 학부모 안내문' 도입부에 나와 있는 얘기의 요지다. 이 얘기대로라면 군내 7개 초등학교 학생들은 심각한 교육부재상황에 방치돼 있다.

정말 그럴까?

전교생 42명 통폐합대상학교
2004, 2005년 2년 연속 우수교 표창, 비결은?


▲ 아침시간, 중국어 여행에 빠져있는 장복초 어린이들.
ⓒ 장선애
예산군 예산읍내에서 자가용으로 10분 거리인 대술면 장복리에 위치한 장복초등학교는 벽지 아닌 벽지다. 예산읍 인접학교이면서도 아산시 경계지역에 있어 그동안 행정관청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학교 관리자들도 외지에서 왔다 가는 경우가 많았다.

장복초는 현재 전교생이 42명으로 도교육청 기준 통폐합대상학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문을 닫아야 할 대상으로 지목된 이 학교는 지금 에너지가 넘친다. 최고로 가르치고, 제대로 배우겠다는.

장복초는 예산교육청이 실시한 교육과정평가에서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우수교로 표창을 받았다. 2004년 9월 장복초에 부임한 강성규 교장이 "내일 문을 닫더라도 오늘 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며 학교예산 원칙을 세우고, 학력신장과 특기적성교육에 전력을 기울인 결과다.

어두운 교실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조도가 낮은 형광등이 교체되면서 그해 밝은 교실을 찾았다. 비 오는 날 수돗가와 급식실로 이동할 때 비를 맞아야 했던 아이들이 초록색 간이 지붕아래에서 맘 놓고 이동하기 시작한 것도 그해의 일이다.

특기적성 못할 것 없다

장복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국어 중심의 특기적성 교육프로그램이다. 강사 영입의 어려움과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대부분 과소규모 학교들이 손을 놓다시피 하는 특기적성교육, 강 교장은 "하려고 맘 먹으면 안 될 일은 없다.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기본이고, 영어와 한문, 중국어를 모르면 살아갈 수 없다"며 실행에 옮겼다.

장복초는 강 교장이 부임하기 이전부터 실시해오던 영어에 컴퓨터와 미술을 병행했다. 당시 계획에 없던 교육을 하자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장 강사비 마련이 문제였다.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술을 제외한 나머지 특기적성 과목은 1만원씩만 책정한데다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조부모가정은 면제해주다 보니 학교예산으로 강사료를 충당해야 했다. 강 교장은 고심 끝에 교사들에게 "나랑 선생님들이 십시일반 해보자"고 제안했고, 교사들도 선뜻 동의했다.

이 소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전해지자 학교 운영위원장인 박종덕씨가 강사비를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박 위원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애들을 열심히 가르쳐 준다는데 그 정도 못하겠어요? 우리학교 정말 달라졌어요. 어떻게 이보다 더 잘 가르칠까 싶다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한자교육이 실시됐다. 한자는 그 자체로 중요할 뿐더러, 제2외국어로 채택될 중국어 특기적성교육을 위한 기초다지기란 의미도 있었다. 교사들은 학부모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재를 직접 만들고 교육을 맡았다. 영어와 마찬가지로 전교생이 한자교육을 받고 지난해 7월과 11월 한자급수시험에 2학년 이상 모든 학년이 응시, 8급부터 6급까지 100% 합격하는 성과를 거뒀다. 성적우수자에게 주는 우수상 수상자도 15명이나 나왔다.

지난해 가을에는 한 학부모가 "아이가 한자와 영어를 물어보는 통에 나까지 공부하게 됐다. 정말 감사하다"면서 수확한 햅쌀로 떡을 해와 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미술 수상실적 화려
도 단위 대회 금상과 전국대회 은상


▲ 장복초등학교 전교생과 교직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찰칵'. 뒷줄 맨 오른쪽이 강성규 교장
ⓒ 장선애
드디어 이번 학기부터 시작된 중국어 교육. 시골까지 온다는 실력 있는 강사가 있을까, 비싼 교재비는 또 어찌할 것인가. 난제는 계속 발생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실마리는 강사선정을 위한 교사회의에서 풀렸다.

"교장 혼자 끙끙거리는 것보다 학교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교장은 방향만 제시하는 사람이지요. 결국 선생님들의 열정이 없으면 되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과연 교사들의 인맥과 정보를 활용하니 실력 있는 강사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더욱이 고민이던 교재비도 함께 해결됐다. 천안에서 중국어 학원을 운영하는 학부모가 우연한 기회에 장복초를 방문한 뒤 이 학교에 매료돼 자신의 딸을 전학시키기에 이른 것.

2학년 장아람양은 그래서 천안에서 통학을 하고 있으며 아람이 어머니는 딸의 학교에 중국어 교재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중급단계 교재는 박종덕 운영위원장이 부담했다.

전교생이 모두 하는 외국어와 달리 교육비가 가장 높은(월 2만원) 미술의 경우 희망하는 학생만 참여하고 있다. 학원의 도움 없이 학교에서만 교육받은 이 학교 학생들의 지난해 미술 수상실적은 화려하다. 도 단위 과학캐릭터대회 금·은상과 전국 무궁화그리기대회 은상 등.

장복초는 방학에도 문을 연다. 방학 중에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한문과 영어수업이 진행된다. 올 여름방학에는 중국어가 추가된다.

학년 성적 도 평균보다 훨씬 높아

장복초의 일과는 8시 10분에 시작된다. 농촌의 하루는 도시와 달리 새벽에 시작되기 때문에 아이들도 일찍 등교한다. 외국어 특기적성 교육을 이 시간에 배치한 이유다. 오전 8시 50분까지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영어와 중국어가 격일제로 실시된다. 그리고 1교시 수업이 시작되는 9시 10분까지 학생들은 책을 읽는다.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약 30분 동안 학생들은 강 교장이 직접 만든 국어·수학 학습지 '오름길'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학교에서는 월말평가도 실시하고 있다. 학교교육이 자칫 학력에만 치우칠 우려가 있어 폐지한 평가지만 강 교장은 폐단을 줄이면서 운영의 묘를 살리면 약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시험결과에 대한 상대적인 서열화는 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별로 성적을 분석하고 앞으로 지도대책까지 명기한 자료가 만들어진다. 학년별 월별로 정리된 이 자료파일은 교장실 컴퓨터에 모두 들어있다.

지난 3월 도교육청 실시 진단평가에서 강교장이 부임한 이후 입학한 학년의 성적이 도 평균 보다 훨씬 높게 나온 게 우연이 아닌 듯하다.

이쯤 되면 학생들이 공부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그런데 아이들이 일과가 끝나고도 학교에 남아 있으려 한다는 것을 보면 '보고 싶은 얼굴, 하고 싶은 공부, 오고 싶은 학교'라는 장복초의 슬로건은 실천중인 것이 분명하다.

학교는 가난, 학생은 행복

4월 한 달 동안 장복초 학생들은 청남대와 매헌문화제, 해미비행장 등 모두 세 차례 현장학습을 다녀올 계획이다. 비용은 지난해 교육과정평가 우수교로 지정받으면서 나온 상금 100만원으로 충당된다.

강 교장은 "우리학교 선생님들의 열정에는 저도 놀랍니다. 농촌에서는 사교육을 받을 여건도 안 되고 도시보다 문화수준이 낮기 때문에 교사들이 더 희생하고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2006년 인성사례발표대회에 우리학교 교사 7명이 전원 계획서를 제출하는 이례적인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게 교장이 강요한다고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모든 것을 배운 아이들은 학원으로 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 놀거나 도서실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다가 선생님들 퇴근과 함께 교문을 나서기도 한다. 학생들의 놀이터고, 학습의 장이고,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찾는 탐구의 장이어야 하는 학교의 기본 임무를 되찾은 학교.

어떤 훌륭한 시설보다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교사의 질'이라는 명제를 다시 한 번 입증한 학교. 학교는 가난하지만 학생들은 행복한 학교. 작은 학교인 장복초등학교에 학생들의 역전입이 이어져 명문으로 회생하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두 마리 토끼 다 잡았어요"
예산읍서 통학시키는 학부모 김은영씨


"초등학교 때 뛰어놀지 못하면 언제 놀아보겠어요?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보냈는데, 지금은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은 셈이 됐네요."

예산읍에 살면서 올해 장복초에 입학한 이경숙양의 어머니 김은영씨는 학교에 ‘대만족'하고 있다. 다른 학부모들처럼 공부욕심도 많고, 좋은 시설에 보내고 싶어 큰 학교 입학을 고민하기도 했다는 김씨.

갈등하던 김씨는 아는 이가 추천한 장복초를 남편과 함께 방문하고 난 뒤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농촌마을에 자리 잡은 아담한 학교의 시설이 생각처럼 낙후되지 않은데다 선생님들의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들 절더러 1대1 과외 보내는 것 같다고 해요. 사실 교사 1명이 30~40명씩 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10명도 안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죠. 아이들 생활과 학습지도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유치원 때보다 더 세심한 교육을 받고 있다니까요."

요즘 경숙이는 학교가 끝난 뒤 2~3시간 정도 학교에서 놀다온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친구들이 방과 후에도 학교에서 노니까 경숙이가 더 있다 가고 싶어 한다고. 선생님이 계신 안전한 학교에서 놀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있겠어요?"

이씨는 등교할 때는 인근에 사는 교사의 차를 태워 보내고, 하교할 때는 데리러 가면서도 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크기 때문에 번거롭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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