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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새 대표로 당선된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새 대표로 당선된 오자와 이치로 ⓒ 오자와 이치로 홈페이지
일본 정계의 풍운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4)가 마침내 제1야당의 당수가 됐다. 그가 '정권교체가 가능한 양당제'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자민당을 탈당한지 13년만의 일이다.

오자와는 7일 민주당 중-참의원 합동 의원총회에서 경쟁자로 나선 칸 나오토(管直人) 전대표를 119 : 72의 표차로 당권을 거머쥐었다. 오랜 소망이었던 정권교체의 한 축에 선 것이다.

오자와 신임대표를 통해 그의 13년 전 주장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세월은 흘렀고 정치환경도 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건강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란 모른다. 불과 얼마 전까지 누가 '민주당 대표 오자와'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흡수됐던 정당 당수가 3년만에 당대표로

오자와가 야당 당수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03년 민주당과 합당하기 전까지 자유당 당수였다.

당시 자유당은 그의 측근들만을 모아 만든 조그만 지역정당에 불과했다. 사실상 흡수당한 정당의 당수가 3년만에 당권을 차지한 것을 보면 그의 수완은 확실히 경이롭다. 한국으로 치면 김학원 전 자민련 대표가 한나라당 당수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오자와 대표는 1942년 일본 북부 이와테현에서 태어났다. 게이오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69년 중의원선거에서 첫 당선한 뒤 내리 13선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대부분 유력 정치인들처럼 아버지의 선거구와 정치기반을 물려받아 정계에 입문한 '2세 정치인'이다.

그 중에서도 오자와 대표는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 1980년대 말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었던 다케시타(竹下)파의 후계를 다투던 이른바 '나나부교(七奉行)'의 일원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40대에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했으며, 다케시타파 회장대행을 맡아 일본 정치를 막후에서 주물렀다.

그는 90년대 일본 정치의 화두였던 이른바 '보통국가론'을 체계화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후 일본사회가 걸어온 우경화의 방향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1993년 출간한 저서 <일본개조계획>에서 '보통국가'의 조건을 "국제사회에서 당연시되는 것을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스스로의 책임 하에 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91년 발발한 걸프전에서 일본이 막대한 군비를 지출하고도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거의 평가 받지 못했다는 반성과 반발이 배경에 깔려있다. 이런 반성과 반발이 '국제공헌'을 명분으로 한 자위대의 해외파병 추진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개조계획>은 또 ▲총리의 권한 강화 ▲정-관 관계에서의 정치주도 ▲소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 등 굵직굵직한 정치개혁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 오자와가 제시한 이런 과제들은 그 후 등장한 정권들에 의해 대부분 실행에 옮겨졌다.

오자와는 1993년 자민당을 탈당, 신생당을 결성해 호소카와(細川) 연립정권을 탄생시킴으로써 정계개편의 서막을 열었다. 이것이 당내 권력투쟁에서 패한 결과인지, 아니면 스스로 주창한 정치개혁을 실천하기 위한 결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양론이 있다. 어쨌든 그의 정계개편 실험은 1년여 짧은 기간에 막을 내린다. 1994년 자민당이 상극이었던 사회당과 손을 잡으면서까지 다시 정권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자민당 상징했던 인물이 '자민당 대항마'로

오자와 대표에게는 항상 '음습한'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그가 어느 정치인보다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으면서도 한번도 총리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오자와를 민주당이 대표로 선출했다는 것은 일본 야당이 처한 상황의 절박함을 잘 말해준다. 자민당을 극복하고 정권을 잡겠다고 하면서 15년 전 자민당을 상징하던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민주당은 50대인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52), 40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43) 대표를 거치면서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흐름이 단 한번의 사건으로 역전됐다. 이른바 '메일 위조 문제'에서 젊은 지도부의 대처가 미숙했다는 인식이 '백전노장'을 다시 찾게 만든 것이다.

대표 선거전이 시작되자 옛 사회당 그룹이 가장 먼저 오자와 지지를 선언한 것도 아이러니다. 정치적으로 가장 상이한 성향의 두 집단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사회당 그룹으로서는 신보수주의 성향을 보이는 민주당 소장파 지도부가 정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자꾸 이탈해 하려는 흐름에 불만을 품고 있던 터였다. 정책적으로는 오히려 유연한 오자와 대표가 소장파보다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오자와 대표의 등장은 오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민당은 그와 이미지가 대비되는 젊은 정치인을 선호할 것이람 점에서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더 유리하게 됐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그의 경륜에 대항할 중진의원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갈 것이란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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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국제부에서 일본관련및 일본어판 준비를 맡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년간 채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 대학원 한일 통번역을 전공하였습니다. 현재는 휴학중입니다만, 앞으로 일본과 한국간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기사를 독자들과 공유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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