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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왕은 엎드려 있는 왕신복의 모습을 살피다가 문득 이렇게 물어왔다.

"좌윤은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난데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하던 왕신복은 이내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일본은 우리 발해의 오랜 우방입니다. 서로 사절단을 보내며 상호 왕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왕이 묻는 의도를 짐작해보았다. 문득 얼마 전에 양태사를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일본의 후지와라나카마로가 황제에게 밀서를 보냈다고 했다. 왕신복은 그와 관련되어 있다는 짐작을 했다. 왕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면 일본의 현 정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가?"

"후지와라 나카마로라는 자가 천황을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신복의 말대로 일본의 쥰닝천황은 나카마로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나카마로는 일본 조정의 모든 병권을 쥐고 내외제 병사를 장악할 만큼 막강한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쥰닝 천황이 자신의 아버지라 여길 만큼 나카마로의 위세가 극에 달하자, 그의 전제 독재를 비난하는 여론들이 들끓을 정도였다.

문왕 또한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외교 관계에 능한 자로서 국제적인 정세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일본의 모든 권력은 후지와라 나카마로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다른 씨족이나 후지와라 가문내의 다른 파벌로부터 반발이 생길 게 뻔하다. 그런 반발을 잠재우려고 나카마로는 어떤 계획을 남몰래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

"남몰래 준비를 하고 있다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옵니까?"

"작년 가을 일본에 보낸 사절 단속에 짐의 밀명을 받은 군사 다섯을 보낸 적이 있다. 짐은 그들에게 일본의 군사적 동향을 샅샅이 살펴오라는 밀명을 내렸었다. 그들은 얼마 전, 발해에 도착해서 일본이 몇 해 전에 500척의 배를 전국적으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런데 그 배들의 완성시기는 삼 년 안이라고 못박았다는 것이야. 올해가 바로 그 3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이 무슨 계책을 꾸미고 있다는 말씀이옵니까?"

"이뿐이 아니다. 작년 정월에는 미노와 무사시 지역의 소년들을 선발해서 신라어를 가르치게 했다고 한다."

"신라어라면…."

순간 왕신복은 너무 놀라 왕 앞이라는 것도 잊고 그렇게 탄식을 내질렀다. 문왕은 개의치 않고 침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본이 신라를 침공할 계획을 오래 전부터 세우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후지와라 나카마로는 자신의 권세를 위협하는 여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신라정벌이라는 국가적인 숙원사업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것이야."

일순 문왕과 왕신복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일본이 신라를 침공하면 발해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왕은 여태 주변국가와의 전쟁을 억제하며 내치를 다져왔다. 특히 근자에는 나라의 체계를 군사중심에서 율령체재로 개편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하게 된다면 여태 다져온 모든 율령체제가 다시 군사 중심으로 재편될지도 몰랐다. 문왕과 왕신복의 공통적인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문왕은 잠시 눈을 감고 침묵에 빠져 있다가 문득 이런 말을 건네 왔다.

"좌윤은 이번에 일본에서 우리 발해에 보낸 사신이 어떤 인물인 줄 아는가?"

"고마오오야마라고 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한자로 풀어보게."

고마오오야마. 한자로 풀어쓰면 고려대산(高麗大山)이었다. 고려라……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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