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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안 산 건 아니지만 그냥 TV 앞에서 멍하니 앉아서 시청 당하는 것이 싫어서 TV를 아예 사지를 않았지요. 그러다가 올해 월드컵도 하고 방송과 관계된 일을 하는 아내 때문에 고민 끝에 지상파DMB 수신기를 지난 주에 구입했습니다.

TV 광고에서 실시간 방송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도 그렇고 위성DMB에 비해 저렴한 장치가격 그리고 따로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위성DMB 수신기가 아닌 지상파DMB 수신기를 구입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배달온 수신기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보니 광고 그대로 지상파방송이 실시간으로 나오더군요. 전파가 약해서 가끔 끊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서비스 품질에 감격까지 했더랬습니다.

마침 우리 선수들의 멋진 활약으로 WBC 4강에 진출, 일요일 점심에 경기를 치른다길래 교회에 가서 점심시간에 야구경기 중계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교회에 지상파DMB 수신기를 설치하고 테스트까지 해봤습니다.

우리집보다는 전파가 잘 잡히는지 화질도 깨끗하고 TV채널도 6개나 나와 이번 야구 경기는 교회에 있는 프로젝터로 큰 화면에서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같이 볼 요량으로 점심시간에 야구를 틀어준다고 교회사람들에게 광고까지 했지요.

일요일 아침 혹시 몰라서 다시 한 번 테스트를 해보니 역시 잘 방송이 잘 나오더군요. 그러나 문제의 점심시간! 11시 예배를 마친 12시 20분쯤, 점심식사 시간에 야구를 틀어준다는 안내방송까지 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각 채널에서는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만 하더군요. 그 장면이 고스란히 프로젝트를 통해서 방영되어 교회청년들이 사무실로 달려왔습니다.

6개의 TV채널을 전부 다 틀어봤지만 야구중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무실 구석에 설치된 TV에서는 야구 중계가 나오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중계하는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그 화면 구석에 선명하게 위성DMB TU라는 로고가 보였습니다.

그 순간 한 청년이 "뭐가 실시간 방송이야, 야구도 안 나오면서. 월드컵 경기도 볼 수 있다고 하더니 월드컵도 못 보겠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참 속이 상하더군요. 잘난 척 하면서 "이게 말이야 지상파DMB 수신기라는 거야~ 이제 TV가 없어도 TV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 한껏 뽐을 내었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방송이 되지 않아 '김뻥!'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오후가 되어 교회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왜 지상파DMB에서는 중계방송을 하지 않았는지 알아보기 위해 KBS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습니다. 지상파DMB를 담당하고 있는 KBS 직원은 전화통화에서 "WBC 경기의 DMB 중계권을 위성DMB 방송사인 TU미디어 측에서 독점계약을 했기 때문에 지상파DMB 방송에서는 중계방송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해서 "그러면 월드컵경기도 못 보는 게 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월드컵 경기는 이미 중계권 계약이 되어 있어 중계할 수 있으니 걱정말라"며 방송사측이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위성DMB에서 독점계약을 했기 때문에 못한 것이니 이해를 해달라고 덧붙였습니다. KBS DMB 관련 게시판에도 가보니 왜 지상파DMB에서는 야구 중계를 해주지 않느냐는 항의글이 간간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아직 지상파DMB 사용자가 많지 않고 무료서비스이기 때문에 투자가 많이 이뤄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한두 번 실망하다보면 사용자가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국 지상파DMB 수신기로 야구중계를 보여준다고 큰 소리 쳤던 저는 '뻥장이'가 되었고, '김뻥'이라는 새 별명까지 얻게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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