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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이 암탉들을 이끌고 다닙니다.
수탉이 암탉들을 이끌고 다닙니다. ⓒ 이승숙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아주 거창해 보입니다만 사실 우리 집에 있는 토종닭은 현재 4마리밖에 안 됩니다. 암탉 2마리에 수탉 2마리, 이렇게 달랑 4마리만 남아 있습니다.

제가 '남아 있다'고 그랬지요? 그래요, 우리 집 닭들은 사냥에서 살아남은 우수 종자들입니다.

우리 집엔 삽살개가 있습니다. 토종닭도 삽살개도 우리 집에 온 역사는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토종닭들의 세계였어요. 삽살개는 아직 어린 강아지였는 데 비해 토종닭들은 빨리 컸습니다. 그래서 그 해는 집 안팎을 닭들이 점령했고 삽살개는 사람들 뒤만 따라다니며 놀던 평화롭던 공존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삽살개는 어미 개가 되었고 그리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닭 사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닭장을 만들어서 닭들은 그 안에서만 놀게 했습니다. 30마리가 넘는 닭들은 닭장 안에서만 자유를 구가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각자 애정을 가지는 대상이 조금 다릅니다. 제 남편은 삽살개도 좋아하지만 토종닭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그에 비해 나는 닭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삽살개만 좋아합니다.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닭들이 닭장 안에 갇혀서 사는 게 보기에 안 좋았나 봅니다. 그 사람은 닭들이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아 땅을 헤집으며 노는 모습을 보기 좋아합니다. 그이는 뒷산에서 닭들이 판을 치는 그런 모습을 꿈꾸며 닭을 키우는데 삽살개 때문에 감옥 아닌 감옥살이를 하는 닭들이 보기에 안 좋았나 봅니다.

땅을 헤집으며 모이를 찾습니다.
땅을 헤집으며 모이를 찾습니다. ⓒ 이승숙
그래서 우리 둘은 절충안을 냈습니다. 낮에는 삽살개를 묶어두고 닭을 풀어주고 저녁이 되면 닭장 안으로 들어가는 닭들 대신에 삽살개를 풀어 주는 것으로 의견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평화로워졌습니다. 어디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보면 이곳저곳에서 놀고 있는 닭들이 보입니다. 땅을 헤집으며 모잇감을 찾는 닭들을 보면 평화롭고 한가해 보여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게 평화로울 수만은 없었어요. 아무리 단단히 묶어 두어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개가 목줄을 끊고 한낮의 자유를 구가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삽살개한테는 자유였지만 닭들한테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무서운 세상이 되는 겁니다.

삽살개는 덩치가 큰 개입니다. 진돗개보다 더 큽니다. 덩치도 큰 데다가 털까지 길어서 아주 커보입니다. 이렇게 덩치가 좋은 놈이 줄을 끊고 내달릴 때 보면 비호같습니다. 개가 풀렸을 때 미처 피하지 못한 닭들은 엉덩이가 물리기도 하고 가슴팍이 물리기도 해서 죽습니다.

그나마 토종닭들이다 보니 몸이 가볍고 행동들이 재빨라서 나무 위로 잽싸게 올라가서 살아남는 놈들이 있습니다. 우리 옛 속담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그 말 그대로 닭들은 지붕으로도 날아 올라가고 나무 위로도 날아 올라가서 그 위기 상황을 피합니다.

우리 집 삽살개 '갑비'입니다.
우리 집 삽살개 '갑비'입니다. ⓒ 이승숙
하지만 상처는 큽니다. 그렇게 한 번 휘젓고 나면 보통 7~8마리 정도는 기본이고 어떤 때 한 번은 13마리까지 물어 죽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자, 그리 되면 우리 남편 심정이 어떻겠어요. 애지중지 키운 토종닭들이 하루아침에 폭탄 맞은 집처럼 나가떨어지면 화를 불같이 내면서 삽살개를 걷어차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나요 어디? 그래 봤자 그때만 죽은 듯이 지내지 또 끈 풀리면 사냥을 '왕창' 해버립니다.

그래도 닭들은 봄이 오면 알을 까고 병아리들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왔습니다.

지난 겨울에도 우리 남편은 어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병아리를 까는 꿈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아슬아슬한 처지에 몰렸습니다. 그나마 몇 마리 남아 있던 닭을 또 우리 집 삽살개가 사냥해 버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 집엔 닭이 4마리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암탉은 2마리밖에 안 됩니다. 걱정하는 나한테 남편이 그랬습니다.

"여보, 걱정 마. 2마리 가지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토종닭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데. 걱정 마."

알을 품고 있는 닭
알을 품고 있는 닭 ⓒ 이승숙
우리가 아는 대부분 닭들은 양계장에서 부화해 키워지다 보니 알을 품는 기능이 다 퇴화되어 버렸습니다. 그 닭들은 알을 품지 못합니다. 하지만 토종닭은 봄이 오면 알 자리를 찾아서 알을 모읍니다. 그리고 스무하루(21일) 동안 알을 품어서 생명을 키웁니다.

2마리밖에 안 남은 암탉으로 알을 부화시키고 병아리를 까서 다시 닭들의 세상을 만들겠노라며 우리 남편은 꿈을 꿉니다. 저는 제 남편의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왜냐면 우리 토종닭들의 질긴 생명력을 믿거든요. 그리고 알이 부화되고 키워지는 그 모든 과정을 사랑하는 우리 남편이 있거든요.

앞으로도 우리 집에서는 위험한 동거가 계속 되겠지요. 그래도 나름대로 규칙을 따라서 잘 굴러갈 겁니다. 낮에는 닭들이 활개치고 밤에는 삽살개가 군림하는 세상으로 우리 집은 공존할 겁니다. 토종닭들이 알을 잘 까서 병아리들이 종종거리는 봄날의 우리 집이 기대됩니다.

평화로운 한낮
평화로운 한낮 ⓒ 이승숙

덧붙이는 글 | 암탉이 알 품을 자리를 찾아서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을 찾아서 알을 품겠지요. 다시 닭들이 활개치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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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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