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갑판 밑에 물건이 실려 있지 않아 상선 같아 보이진 않았다. 더구나 신라의 상선이라면 동해를 이용할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신라는 일본과 적대적인 관계로, 주로 당나라와 교역을 했다. 그래서 신라의 상선은 주로 서해를 이용했다.

뱃전 난간에 방패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전선(戰船)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 배의 용도는 무엇인가? 이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배가 무슨 이유로 동해 한가운데 주인을 잃고 떠다닌다 말인가?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어느 것 하나 짐작되는 게 없었다.

왕신복은 뱃집으로 들어가 선창 뚜껑을 열고 밑으로 내려갔다. 밖과는 달리 안은 너무 어두워 앞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손을 더듬어 겨우 부싯돌을 찾아 불을 켰다. 마침 선반 위에 호롱불이 있어 실내를 밝힐 수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주방이었다. 주방은 배의 크기에 비해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았다.

주방 옆에는 식량을 보관하는 작은 창고가 연결되어 있었다. 창고 또한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배의 규모나 크기에 비해 주방과 식료품 창고가 너무 작은 것 또한 잘 이해되지 않았다. 식량 창고에는 약간의 찐쌀과 훈연한 지 오래된 물고기, 그리고 물이 든 통나무가 들어 있었다. 물통이 세 개. 그럭저럭 물 걱정은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식량은 그렇게 풍부하지 않았다.

약간의 찐쌀과 훈연된 물고기로는 며칠을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장기적으로 가려면 식량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식량을 점검한 왕신복은 주방을 나와 선실과 연결된 복도로 들어갔다. 배의 크기에 맞게 선원이 기거하는 선실의 숫자도 많았다. 그중 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내의 구조는 단순했다. 바닥은 송진 냄새가 아직도 배어 있는 소나무 합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바닥 위에 작은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선실에는 옷가지와 이불이 널려있고, 각종 책자와 도자기, 작은 장신구들이 마구 흩어져 있었다. 급히 선실을 빠져 나온 흔적이 역력했다. 아마 갑판 위에 불이 붙으면서 급히 몸을 피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또 다른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배에 불이 붙었다면 이 큰배에 타고 있던 그 많은 선원들은 모두 어디로 갔다 말인가? 화재를 피해 모두 바다로 뛰어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배에 남아 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배의 모든 선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사라졌다?

그의 의문은 조금씩 증폭되어갔다.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다는 느낌이 시시각각 정수리께로 몰려들었다. 미묘한 긴장의 타래가 그를 옭아매는 듯 했다.

혹시 이 배는 유령선이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실제로 선원들로부터 난파된 배가 죽은 선원들의 원혼을 실어 동해 바다에 떠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유령선의 전설은 큰배에 의한 해상무역이 번창하기 시작한 삼국시대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큰배라고는 하지만 해양기상의 변화나 항해술의 미숙, 조직적인 해적의 폭력 등에 의해 선원 모두를 잃어 무인선(無人船)이 되는 예가 적지 않았다. 항해하는 선박으로부터 유령선으로 간주되는 배의 대부분은 이러한 무인 선이었다. 유령선이 보통의 배와 다른 점은 바람을 거슬러 배가 나아간다든지, 배의 불빛이 바닷물에 비치지 않는 등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며칠을 꼬박 이 배에서 보낸 왕신복은 그런 낌새는 전혀 채지 못했다.

왕신복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유령선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몸이 많이 쇠약해져서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듯 했다.

할 수없이 문 열기를 포기하고 복도를 지나 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눈이 심하게 부셔왔다. 강렬한 햇살이 갑판 위에 쏟아져 내렸다. 왕신복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뱃집 입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람도 불지 않아 후덥지근한 열기가 훅 끼쳐왔다. 땀이 많이 흘러 옷이 몸에 착 감겨들었다. 왕신복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바라보았다. 목둘레가 둥근 단령(團領)으로 된 그의 옷은 현주(顯州)에서 난 마포로 만들어졌는데 소금물에 젖어 색이 바래있었다.

땀이 나 몸에 달라붙어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왕신복은 두건을 벗어 상투로 빗어 올린 머리를 풀어헤쳤다. 그리고 목둘레의 단령을 풀어 바람이 통하게 했다. 그러자 한결 시원하게 느껴졌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