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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겨울철새를 꿈꾸며...

▲ 청둥오리는 하필 왜 추운 겨울에 찾아왔을까요?

겨울 철새를 꿈꾸며

1
아이의 자연 공부를 도와 주다
철새의 얼굴을 보게 되다.
철새 - 철을 따라 이리 저리 살 곳을 바꾸는 새. 기후조,반더포겔,후조(候鳥) <=> 텃새.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로 구별

아빠,
여름 철새가 좋아? 겨울 철새가 좋아?
글쎄...
갑작스런 심문에... 소크라테스 되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겨울 철새.
왜냐고 묻기도 전에 아이의 입술은 벌써
바람개비

기러기는 서리 맞고 내려와 추위를 온몸으로 짊어지다가 마침내 어둠이 썰물져 가면 한낮의 이슬처럼 낮아져 미련없이 또 다른 겨울을 향해 나래를 펴지만,
제비는 꽃바람 타고 와 마치 자기가 새봄의 여왕인 양 진탕 노래하다가 한기(寒氣)가 어리면 물차게 몸을 날리잖아. 다른 봄을 찾아. 밤손님처럼

순간, 여미어지는 나의 옷 매무새
과연 딸애에게 비친 나의 얼굴은
기러기일까 제비일까 혹 참새는 아닐런지

천국은 어린 아이들 차지라는 성구(聖句)가 새삼 뜨끔하다.

2
인생은 어차피 철새인데
그럼에도, 텃새처럼 영생(永生)할 듯이 텃세를 놓는 어리석음
새들도 본향(本鄕)과 종점(終點)을 알건만
진실로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또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남의 집에 알을 낳는 뻐꾸기,
말없이 젖을 주는 개개비,
온종일 땀흘리는 꿀벌들,
밤이 늙도록 이슬에 젖는 박쥐들,
빛도 이름도 없이 그림자를 도(道)로 아는 사람들,
쓸개와 간을 오르내리며 영광을 가로채는 족속들...

얼핏 보기에 세상은 어둠으로 짓눌린 만화경속
똑바로 걸어 가면 바보 천치
샛길로 날아 가면 영웅이요 장군

아빠,
이런 동네에서 보람이 꽃필 수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점점 추해진다는 것 아닐까
차라리...

3
딸아, 사랑스런
그런 것은 아니다.

옛날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열 명이 없어 불세례 맞았다지만
오늘의 서울에 그래도 여전히 해가 솟고 달이 뜨고 별빛이 흐르는 것은
그 어딘가에 그늘처럼 숨쉬는 지상(地上)의 천사(天使)가
적어도 열 사람 이상은 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자고로 백학(白鶴)보다 까마귀의 울음이 활개를 치는 법
몇 마리의 미꾸리가 겁나서 강물을 닫을 수는 없잖니
설사 여름 철새로 하늘이 온통 뒤덮인대도
그것을 핑계삼아 푸르른 꿈을 구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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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도 이제부터
겨울 철새로 살거야
아빠처럼... / 리울 김형태

안양천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겨울철새들
안양천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겨울철새들 ⓒ 김형태

안양천까지 날아온 것을 보면 서울의 환경이 많이 좋아진 듯 보입니다.
안양천까지 날아온 것을 보면 서울의 환경이 많이 좋아진 듯 보입니다. ⓒ 김형태

둘의 다정한 비상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둘의 다정한 비상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 김형태
주말이면 저는 아이들과 함께 곧잘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에 갑니다. 보통 오목교에서 출발하여 안양천을 끼고 페달을 밟아 한강까지 달려갑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선유도, 또는 여의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곤 합니다.

운동 삼아 찾아간 안양천과 한강이었지만, 어떤 날은 거의 운동을 못하고 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어쩌면 이번 주가 겨울철새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듯싶어 자꾸만 저도 모르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철새를 지켜보면서 상념에 잠깁니다. 저 철새들은 왜 이곳 안양천까지 찾아왔을까? 추운 겨울에, 그것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또한 서울에서도 수질이 가장 나쁘다는 안양천에… 알고 온 것일까요? 모르고 온 것일까요?

어쨌든 죽음의 하천이라 불리던 안양천에 철새가 날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안양천이 맑아졌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도 맑고 푸르기보다는 탁하고 시커먼 안양천, 곳곳에서 폐수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이런 곳에서 겨울을 난 철새들이 과연 건강할까요? 혹시 몸 안에 중금속이 과다하게 축적된 것을 아닐까요? 무사히 고향에까지 날아갈 수는 있을까요?

겨울철새들의 안식처인 안양천변의 갈대숲
겨울철새들의 안식처인 안양천변의 갈대숲 ⓒ 김형태

안양천변의 들풀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안양천변의 들풀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 김형태

높은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와 그것을 마시고 크는 들풀,  둘의 관계는 모순일까요? 조화일까요?
높은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와 그것을 마시고 크는 들풀, 둘의 관계는 모순일까요? 조화일까요? ⓒ 김형태

겨울철새들이 설마 저 연기를 초가집 굴뚝연기로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겨울철새들이 설마 저 연기를 초가집 굴뚝연기로 착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 김형태
자연은 언제나 우리의 교과서요, 큰 스승입니다. 겨울철새를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봄을 오게 한 주역이라고, 봄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한번쯤 큰소리 칠 만도 한데, 겨울이 지나자 미련없이 떠나가는 겨울철새의 삶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이 한 수 배워야 할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텃새의 삶도 아닌, 여름철새의 삶도 아닌 겨울철새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도 자꾸만 겨울철새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겨울철새의 삶이 신기한 모양입니다. 먹을 것이 많은 따뜻한 계절을 놔두고 왜 하필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춥기만 한 겨울에 찾아왔다가 이제야 추위도 물러서고 먹을거리도 풍성해질만해지자 다시 추운 곳으로 떠나는 겨울철새의 거룩한 삶을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겨울철새와 닮은 한 사람을 꼽으라면 충무공 이순신입니다. 임진왜란과 충무공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임금과 대신들은 백성들을 내버려둔 채 의주까지 도망을 갔습니다. 여차하면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까지 갔을 것입니다. 텃새와 여름철새와 같은 삶이지요.

그러나 충무공은 달랐습니다. 그는 정말 겨울철새와 같은 삶을 살다갔습니다. 혁혁한 공로로 민심까지 얻은 충무공이 마음만 먹었으면 임금도 폐하고 조정도 갈아 치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임진왜란이라는 춥고 기나긴 겨울이 지나자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충무공의 죽음을 놓고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의견이 분분하지만, 제 생각에는 임금과 조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킨 충무공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겨울철새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가 자꾸만 입안에서 맴돕니다. 그리고 한동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이해찬 전 총리와 최연희 의원도 스쳐 지나갑니다.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유방백세(流芳百世)와 유취만년(遺臭萬年)"이라는 한자 성어를 마음에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겨울철새와 같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추워도 춥지 않지 않을 테니까요.

철새들이 다시 오는 다음 겨울에는 안양천 물이 더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폐트병 등 쓰레기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철새들이 다시 오는 다음 겨울에는 안양천 물이 더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폐트병 등 쓰레기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형태

멀리 떠나가는 철새들이 마치 "안녕!"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합니다.
멀리 떠나가는 철새들이 마치 "안녕!"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합니다. ⓒ 김형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서울방송(SBS)과 미디어다음, 국정넷포터 등의 매체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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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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