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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아늑한 곳>, 겉그림
<하늘 아래 아늑한 곳>, 겉그림 ⓒ 샘터
"나 같은 완벽주의자는 도시 생활이 힘들다. 소음과 주위 것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하고 사는 건 피곤 그 자체이다. 조금 느리게, 마음이 조용하게 있으려면 나를 아늑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서 떠난다. 떠남은 나의 유일한 출구이다. 허공, 빈 공간, 소리없음이 있는 아늑한 곳으로 떠나 포근한 사람들과 자연을 누린다. 그러니 어찌 떠나지 않겠는가."

이는 김나미의 <하늘 아래 아늑한 곳>(샘터·2006)에 나오는 머리말 가운데 한 토막이다. 그만큼 그녀는 답답한 도심 속 그늘 아래서 소유와 집착에 얽매인 채 쫓겨 살기보다는 자유와 여유를 찾아 이곳저곳 발걸음 닫는 데까지 따라나섰다.

그녀가 돌고 돈 곳으로는 서울의 퇴촌 '천진암'을 비롯해 수원의 '모후원', 양평의 '석산리'가 있다. 그곳들이 서울 도심에서 조금은 가까운 곳에 속한다면, 좀 더 먼 곳으로는 여수의 돌산 '향일암', 부안 '내소사', 태백의 오지마을 '예수원', 무등산의 '중심사', 봉화의 나무 심는 '도인 집', 그리고 제주의 '목부원 등이 있다.

지레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곳들은 분명 다른 곳과는 달리 조용하고 아늑하다. 소리를 내지르며 갖가지 행사를 벌이기보다는 그저 침묵 가운데에 제 할 도리를 다 하는 곳들이다. 그렇다고 유명인사들만 받아들이는 닫힌 공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다. 물 흐르듯이 누구나 흘러들어가 똬리를 틀 수 있는 곳이다. 갈증을 느끼는 누구에게나 한 모금 생수를 마시게 해 주는 샘터 같은 곳들이다.

때론 그곳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수행터가 되기도 하고, 영혼의 위안을 위한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또 물질주의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에게 유심론을 생각토록 하는 새로운 사상의 태반이 되기도 하고, 흙 밭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삶을 통해 정신을 맑게 해 주는 해탈의 텃밭이 되기도 한다.

그 많은 곳들을 모두 이야기한다면 분명 한 권의 책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곳들 가운데에 여섯 곳만을 간추려서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광화문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성가수녀원'을 비롯해, 남도 땅에 자리 잡고 있는 송광사와 충북 청천의 '가톨릭농민회', 강원도 인제의 미산리 '개인산방(開仁山房)'과 천안의 호두마을 '위파사나 수행처', 그리고 제주의 '목부원' 등이 그곳이다.

성가수녀원은 그녀가 삶에 지쳐 있을 때에, 그곳 안에서 섬기고 있던 세실리아 수녀를 통해 큰 힘과 위안을 얻었는데, 그만큼 그곳은 영혼의 굶주림을 채워주던 일종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더욱이 그곳은 직장에서 쇠잔할 때,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상사가 괜스레 미워질 때, 왠지 모를 슬픔이 복받쳐 오를 때, 직원들 사이에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니면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아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고 시끄러울 때, 고요와 침묵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곳이기도 하다.

송광사는 그녀에게 불교의 세계를 이끌어 주었던 곳이기도 하고, 암자와 토굴을 다니면서 일종에 반쯤 출가한 스님처럼 사는 재미가 무엇인지 쏠쏠하게 맛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괴산군 청천에 자리 잡고 있는 가톨릭농민회에서는 흙냄새와 아궁이 냄새, 장작 냄새와 장독대 된장 냄새를 맡으며 산다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으며, 그 땅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냄새를 맡으며 그곳 농민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밥도 지어 먹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제군 미산리의 개인산방 더불어 숲 학교에서는 '용서'라는 풀기 어려운 숙제를 마칠 수 있었고, 천안의 호두마을 위파사나에서는 마음을 한껏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으며, 제주도 목부원에서는 육지와 떨어져 있는 섬이 주는 아늑함과 고즈넉함을 마음속에 통째로 담을 수 있었다.

"마음의 기지개 펴기, 눈 감아 보기, 호흡 길게 하기, 심장 박동소리 듣기,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기, 잠시 멍하니 있기, 벽 마주하고 앉기, 그냥 웃어 보기, 뒤로 걸어 보기,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 들어보기, 아랫목에서 게을러 보기, 조금 느리게 움직이기, 좋아하는 단어 떠올리기, 가장 따듯한 풍경 떠올리기, 마음 덜 쓰기, 잠시 침묵하기, 잠깐 보지 않고 듣지 않기, 뭐든지 잠시 수용하기, 자그마한 것에도 감사하기."(143쪽)


이는 그곳들을 찾아 떠나면서, 그녀가 길 위에서 수행한 '자유자재, 깃털처럼 살기'의 여러 방법들이다. 미친 듯이 속도전을 치르고 있는 이 숨 막히는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그녀만의 숨고르기가 아닐까 싶다. 내리는 사람 없이 타는 사람만 가득 차 있는 우리사회의 열차 안에서 그녀만의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숨고르기는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다. 때론 자연이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타인의 행동에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고, 바람처럼 밀려드는 생각에 귀를 쫑긋 세워 보는 것이고, 그리고 주어진 모든 상황에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코 누군가와 그리고 무엇과 더불어서 하는 일들이다. 그렇다고 크고 놀랄 만한 기적 같은 일을 이루는 것은 결코 아니다. 흘러가는 것들을 가로 막고서 새롭게 방향을 트는 것도 아니다. 안 되는 일을 붙잡고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바람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자유롭게 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오늘도 그녀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숨고르기 할 수 있는 아늑한 곳을 찾아 그녀는 오늘도 길 위에 서 있다.

하늘 아래 아늑한 곳 - 마음을 비우는 여행으로의 초대

김나미 지음, 샘터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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