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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주 토요일 야간 근무 시간에는 로또 당첨 번호를 묻는 고객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당첨 번호를 알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안내해 달라고 문의를 하는데 지난 토요일 저녁 열 시가 넘은 시간에 연결된 고객은 특별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네. 114 요금 팔십 원을(고객은 114 요금을 잘못 알고 있었다. 114 번호 안내 요금은 건당 120원이며 평일: 09:00~18:00, 토요일:09:00~13:00, 이 시간을 제외한 시간과 공휴일은 건당 140원이다) 들여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고 전화했어요.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주세요."
"네? 로또 당첨번호 말씀이십니까?"
"네."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 달라고 일방적으로 문의하는 고객은 처음입니다. 미리 사 두었던 로또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은 고객의 간절한 마음에 제가 다급해졌습니다. 근무를 하다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고객들이 기다리게 되는 불편함이 있으므로 대부분 당첨 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114 요금을 써(?)가면서"라는 말을 강조한 걸 보면 꼭 알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도 되겠지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고객님! 업무 중이어서 당첨 번호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주시면 10분 후에 확인을 해서 문자로 보내 드릴 수는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000-000-0000이요."

고객의 씩씩한 대답이 쩌렁쩌렁 이어폰을 타고 전해왔습니다. 고객은 이 긍정적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손 전화번호를 불러 준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컴퓨터로 달려가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제170회 당첨번호는 2,11,13,15,31,42이었습니다. 곧 고객의 손전화에 당첨번호를 문자로 보냈습니다. 소요된 시간은 3분이었습니다. 그러나 114 고객에게 3분은 긴 시간입니다. 정확한 상호와 인명을 알고 있을 경우 안내하는 시간은 대부분 20초를 넘지 않지요. 그래도 이런 부탁은 어렵지 않은 고객입니다.

그런데 열한 시 삼십 분 연결 된 고객은 급한 용무라도 있는 걸까요?

"여보시오. 농업기반공사 충남지사 당직실 좀 대시오." (참고로 전국 전화번호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농업기반공사 충남지사 당직실 말씀이십니까? 죄송합니다. 당직실은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없긴 왜 없다는 겨? 빨리 연결시켜!"
"고객님! 등록되어 있는 번호로 안내해 드릴까요?"
"뭣이라고? 당직실 없으면 청와대 직통 전화 대!"

이런 고객을 만나는 밤은 업무가 끝날 때까지 힘 빠집니다. 특히 해당 전화가 되지 않는다고 언성을 높이며 막무가내로 협박을 하는 고객에겐 죄송하다는 말씀도 통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찾는 전화를 안내에서 직접 연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해당하는 번호를 찾아 자동안내 키를 누르면 그 음성 안내를 듣고 고객이 직접 1번을 누르셔야 찾으시는 번호가 연결이 되지요. 그런데 그 방법을 모르시는 고객들은 무조건 연결을 해 달라고 합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청와대에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자동 음성 안내만 있었습니다. 주소와 홈페이지 안내는 1번, 청와대 관람안내는 2번, 민원안내는 3번, 비서실 직원 안내는 4번, 어느 번호를 눌러도 담당직원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고객의 처지에 서서 생각해 봅니다. 고객 한 분 한 분 목소리로 만나다 보면 문의하는 방법도 성격과 나이에 따라 많이 다름을 느낍니다. 한 번 만난 고객은 두 번 연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잠깐 스치는 만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몇 초의 만남으로도 일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 오래 흘러도 잊히지 않는 고객들도 많이 있지요.

오늘도 고객과의 짧은 데이트를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책상 위에 놓고 이어폰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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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방문 후 놀랬다. 한창 나이 사십대에 썼던 글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니..새롭다. 지금은 육십 줄에 접어들었다. 쓸 수 있을까? 도전장을 올려본다.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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