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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여 관객이 모인 근정문 앞에서의 남사당패 공연. 대형 스피커의 증폭음은 담 너머 근정전 옥좌 뒤의 일월오봉도를 흔들었을 터이다.
이 천여 관객이 모인 근정문 앞에서의 남사당패 공연. 대형 스피커의 증폭음은 담 너머 근정전 옥좌 뒤의 일월오봉도를 흔들었을 터이다. ⓒ 곽교신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다른 민속놀이 공연장에서의 방관자적 태도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연희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중년의 한 남자 관객이 줄 위의 오른 권원태씨에게 만 원 지폐 한 장을 건네 좌중을 폭소에 빠뜨리기도 했다.

남사당놀이에 대한 이러한 친근감은 영화 <왕의 남자>를 관람한 여운이 주는 심리적 시너지 효과로 보인다. <왕의 남자>는 5일 오후 4시부로 <태극기 휘날리며>가 세운 한국 영화 최다 관객동원 기록을 돌파했다. 공연 현장에서 만난 관객 중에 무작위로 질문한 성인 25명 중 17명도 <왕의 남자>를 보았다고 답했다.

일반 관객들은 문화재청의 감사패 수여와 근정전 앞에서의 남사당패 연희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전문가 그룹에서는 행사 예고가 나갈 때부터 염려하는 의견이 많았다.

공연을 지켜본 황평우(문화재전문위원)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꼭 근정문 앞에서 이 공연을 해야했는가"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궁궐에서 광대들이 연희를 펼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 (공연)은 그와는 다르다"면서 "영화의 인기몰이에 편승해 경복궁 정전 앞에서 이런 놀이판을 펼치는 것은 일반인에게 조선시대 궁중에서 이런 연희가 일상화되었던 것으로 착각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영화의 대중적 인기에 편승한 이런 행사가 남사당놀이라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이벤트 소품쯤으로 취급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아울러 궁궐이 지닌 역사문화적 가치도 왜곡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궁궐 내 광대패 공연에 대한 실질적 고증이 부실했다는 지적을 사전에 들었던 유홍준 청장은 공연 전 인사말에서 "조선시대에도 '나례'라는 이름으로 궁중에서 광대들의 연희가 행해졌다"며 근정전 앞이 부적절한 공연 장소가 아님을 강조했다. 유 청장은 "심각한 왜곡이나 부실한 고증이 아닌 한 전통문화를 지나치게 형식 안에 가둬 놓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기자에게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 조선시대에 나례청 소속의 천민 출신 광대들이 사정전 등 경복궁 내에서 연희를 벌인 기록이 적지않게 있기는 하다. 문화재청 이름으로 특정 영화에 감사패를 수여하는 것은 명분과 격식이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유 청장은 "크게 예민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 말란 법도 하란 법도 없기는 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줄을 타보았으나 경북궁에서 줄을 타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줄 위에서 소감을 밝힌 권원태의 말은 어딘지 '왕의 남자' 대사를 빼닮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줄을 타보았으나 경북궁에서 줄을 타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줄 위에서 소감을 밝힌 권원태의 말은 어딘지 '왕의 남자' 대사를 빼닮았다. ⓒ 곽교신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었다고해서 그 안에서 남사당패의 공연을 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규칙은 없다.

이런 고궁 공연을 정기 또는 부정기적으로 계속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유 청장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으나 관객들의 좋은 호응을 바탕으로 주변의 여러가지 의견을 참고하며 계획을 세워보겠다. 일단 긍적적인 결과로 본다"고 행사를 마친 소감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계기가 전통놀이 공연장의 영역확대라는 공격적 문화정책이 아닌, 영화 <왕의 남자>의 인기몰이에 편승한 또 다른 '국내용 한류'의 시작이 아니라면, 차후에도 유사한 장소에서 유사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는 문화재청의 생각은 충분한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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