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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2006년 3월 1일의 금정산 주능선.
ⓒ 김영철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군요. 남쪽나라 부산에 눈이 내렸습니다. 눈 조금 내린 것으로 '살다 보니'라는 형용이 무엇이냐고 할 테지만 이런 부연이면 어떤가요?

2005년 3월의 첫 주말 부산엔 눈이 내렸습니다. 그냥 눈이 아니라 폭설이 내렸지요. 나아가 폭설도 그냥 폭설이 아니라 기상청 관측 이래 최고인 100년만의 폭설이었습니다. 그래 내 그랬지요. 살다 살다 이런 날이 다 있구나! 내 어머니도 그러시고 이웃의 할아버지도 그러시고….

세월이 한참 흘러 그것도 세월이라고 100년만의 폭설도 그저 추억의 편린이 되고 말 즈음, 과연 100년만의 폭설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였는지를 다시금 되새겨야만 하게 되었으니 2006년 3월의 첫날, 2005년의 그날로부터 1년여만에 부산에 또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냥 눈이 아니라 나름의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름이라니요? 그 귀한 눈이 폭설로 내렸는데 나름이라니요? 그럴 밖에요. 2005년의 춘삼월 폭설이 하도 대단하였던지라 학습 효과인지 이만한 폭설이 이제는 고작 나름의 폭설쯤으로만 대접 받을 밖에요.

무척 기쁩니다. 어쩌면 춘삼월의 펑펑 함박눈 소식이 해마다 봄소식이 될는지도 모르겠거든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부산에서의 춘삼월의 눈은 서설일 수 있습니다. 시민들 저마다의 마음에조차 하얗게 내려 맑고 깨끗한 새봄 맞을 수 있을 것이고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한 거름이 될 테니까요.

100년만의 폭설, 그리고 1년만의 폭설. 100년과 1년의 물리적 차이를 떠나 연이은 상서로운 하늘의 조화로 느끼고, 마침 같은 날 그리 되었던 것에조차 가벼운 의미를 부여하여, 초여름 지구촌을 온통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갈 2006 독일월드컵에서 태극 전사들의 선전과, 나아가 정치, 사회적 통합과 경제적 안정도 기대해 봅니다. 더불어 우리네 인생도 2% 더 꽃피길….

▲ 2005년 3월 금정산 정상 고당봉.
ⓒ 박종욱
2005년 3월 첫 주 금정산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철모르는 하얀 봄 옷 입고 맵시를 뽐내었지요. 정상인 고당봉이 아주 의젓합니다.

▲ 2005년 3월 부산 시내 전경.
ⓒ 박종욱
금정산 능선을 걷다 가만히 고개 돌려보니, 과연 이곳이 어디메뇨? 전혀 뜻밖의 부산 시내 모습이 환하게 펼쳐졌었습니다.

▲ 2006년 3월 1일의 금정산 설경.
ⓒ 김영철
2006년의 3월 1일 하얀 옷의 맵시가 그에 못지 않으나 고작 1년만의 자태라는 부연이고 보니 그 예우가 도무지 격에 맞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 2005년 3월 금정산.
ⓒ 박종욱
2005년 3월의 금정산 자태입니다. 순백의 미가 마음을 설레게 하였지요. 무작정 걷고 싶었으나 너무 아까워 감히 걷지를 못하였던 기억입니다.

▲ 2005년 3월 금정산.
ⓒ 박종욱
동행하였던 지인과 옷차림이 가볍습니다. 폭설이라고는 하나 삼월의 햇살인지라 포근하여 그랬더니 지나는 이들마다 입에 올리기를, "역시 젊음이 좋습니다. 춥지 않습니까? 멋지네요"하였습니다. 동행한 분은 지천명의 나이인데도 말입니다.

▲ 2005년 3월 금정산 범어사 설경.
ⓒ 박종욱
금정산의 유명한 절집인 범어사가 100년만에 흰 옷으로 단장한 모습입니다. 고즈넉한 절집이 새색시의 수줍은 모습으로 길손에게 자비를 선물하였습니다.

▲ 2006년 3월 1일의 금정산 눈꽃.
ⓒ 김영철
2006년 1년만의 폭설로 금정산의 숲이 눈꽃으로 한껏 치장하였습니다. 앙상한 겨울의 나무라도 세심한 눈꽃 치장에 앙드레 김 패션쇼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 2006년 3월 1일의 금정산.
ⓒ 김영철
세속의 더께를 깨끗이 씻어버린 서설 내린 그 길을, 그림처럼 걸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 2005년 3월 금정산 아래 어느 찻집의 푯말.
ⓒ 박종욱
하산길 고운 찻집이 있는데 이름도 제격이라 '天雪'이라 되었었지요. 풀이하기를 "하늘에 눈이 오면"이랍니다. 언제 차 한잔 마시며 사는 이야기 나누러 한번 들러야겠습니다.

연 이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자태를 뽐낸 금정산에게 감사하고
백 년만의 설국, 일 년만의 설국 연출해준 하늘의 눈꽃들에 감사하고
화창하여 이내 녹아내려 불편을 줄여준 봄 햇살에 감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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