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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환 영화산업노조 사무처장
이진환 영화산업노조 사무처장 ⓒ 이동원
그러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목소리가 워낙 거세다 보니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화인들의 집단이기주의다, 영화는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쿼터 축소를 해도 별문제 되지 않는다 등 여러 이유를 대며 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주장도 많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계 내의 영화배우와 제작진 간 양극화를 거론하며 영화배우들의 움직임을 비꼬면서 스크린쿼터 축소 운동에 흠집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영화 제작진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지난 1월2일 정식 노동단체로 인가받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사진. 영화노조) 이진환 사무처장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한다고 했다.

특히 이진환 사무처장은 “제작진의 처우 문제와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를 연관시켜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는 단순비교일뿐”이라면서 “스크린쿼터와 상관없이 제작진의 처우는 개선해야 할 문제로 영화계 내부의 고민과 논의로 해결할 문제”라고 단언했다.

경쟁력을 거론하며 쿼터 축소에 찬성하는 의견에 대해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 이진환 처장은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극장 점유율만 가지고 경쟁력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현 시스템으로는 경쟁력은 말도 안된다”며 쿼터 축소는 한국영화의 내부 다양성을 없앨 것이며 영화산업의 축소를 부를 것이 자명하다고 전망했다.

"극장 점유율로 경쟁력 운운은 말도 안돼
현 영화 시스템 극복 없이는 경쟁력 말 꺼내기 어려워"


특히 이진환 처장은 스크린쿼터 축소가 미국과의 FTA 전제조건으로 사용된 것에 분개를 표하며 “전 세계적으로 미국 영화에 맞서는 몇 안 되는 곳이 바로 우리 영화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는 우리 영화가 눈엣가시인 셈이다. 그래서 미국은 줄기차게 쿼터 축소를 요구해왔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아시아지역에서의 FTA 협상 표본국으로 삼을 속셈임이 분명하다”며 미국의 강압적 요구와 굴종적인 정부의 자세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진환 사무처장은 국민에게 산업이자 문화인 영화를 지키는 것은 영화인들의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우리 문화, 우리 산업을 지키는 길이라는 점을 깊이 이해해줄 것을 당부하며 앞으로 스크린쿼터 축소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사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이진환 사무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아직 영화노조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먼저 단체에 대해 설명해달라.
"영화노조는 지난 1월2일 노동부에서 정식 노동단체로 인가받았다. 물론 이전에도 제작진의 처우개선을 위한 단체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협회 형식이라 법적 효력이 없었다. 알겠지만 한국영화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통계상으로도 세계 9위라고 하니 그 규모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그건 밖에서 볼 때이고 실제 안을 들여다보면 제작진 처우나 시스템 구조 등은 아직까지도 낙후되어 있다. 이런 조건이 노조 설립 조건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아직은 연출, 제작, 촬영, 조명팀이 주로 조직화되었지만 앞으로는 2만여 명에 이르는 제작진을 다 아우르는 단체로 성장할 계획이다."

- 영화노조의 탄생은 제작사나 감독들도 반기는 눈치인가
"일단 영화계는 모두 환영하고 있다. 제작진의 처우라는 게 워낙 주먹구구식이다 보니 기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을 대표할만한 조직이 없어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번에 영화노조가 생기면서 대화상대가 생겨 많이들 환영하고 있다. 사실 올봄 첫 번째 임금단체협상을 할 계획인데 스크린쿼터 문제가 터져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들 정신이 없다."

-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영화인들의 반발이 정말 거세다. 제작진의 반응은 어떤가
"당연히 반대하고 분개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쿼터 축소가 되면 제작진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아닌가. 쿼터 축소를 두고 논란이 분분한데 축소방침이 한국영화의 축소를 불러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의 지속적인 요구가 있긴 했지만 이번 FTA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알아서 쿼터를 내준 것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며 상당히 실망한 눈치다."

- 한국영화가 경쟁력 있다는 것이 쿼터 축소의 가장 큰 근거일 수 있다. 과연 그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물론 극장 점유율을 보면 어마어마하고 천만 관객 시대다 보니 겉에서 볼 때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내가 아니라 국외에서도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가질까. 세계적으로 한국영화 점유율은 3% 정도다. 그것도 최근 메이저영화제에서 감독상 몇 번 탄 것인데 그것으로 경쟁력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부 경쟁력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최근의 일이고 제작진은 내부 경쟁력 또한 없다고 말한다. 시스템이나 불합리한 양극화의 표본이 영화인데 이런 상황에서 어디 경쟁력을 찾아볼 수가 있나. 영화의 구조적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경쟁력이란 쿼터가 있든 없든 똑같아야 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쿼터가 흔들리면 경쟁력이 흔들릴 여지가 매우 크다. 만약 축소된다면 지금의 점유율이 유지될 것 같나. 불행히도 아니다."

- 쿼터가 축소돼 나타날 수 있는 변화를 예상하다면.
"일단 제작편수가 줄어들 것이다. 영화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안 되면 무엇도 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돈이 안 되는 영화는 당연히 제작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100%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좋은 감독, 좋은 배우가 계속 나오면 지금 수준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쿼터를 없애면 발전 토대를 없애는 것이다.

ⓒ 이동원
"당연히 제작편수가 줄어들 것
돈 안 되는 영화 유통 안 되는 데 제작될 리 있나"


그리고 내부다양성 문제다. 극장으로서는 잘 나가는 영화 몇 개만 걸면 쿼터는 충족된다. 그럼 그나마 보호받던 독립영화나 저예산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장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 큰 영화 두세 편 한두 달 걸면 되니 나머지 영화는 만들어도 걸 곳이 없어진다. 극장이야 당연히 돈 되는 영화를 걸고 싶지 않겠나."

- 그러나 한 편에서는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선택하고 찾으면 극장도 그에 따르게 될 것이라며 반박하기도 한다.
"현재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고르는 것과 같은 구조다. 예전에는 단관영화라 시간이 늦으면 기다리거나 다른 영화관에 갔지만 지금은 시간이 안 맞으면 그 영화관의 다른 영화를 본다. 영화가 하나의 오락으로 전환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락성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에 잠식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 내부다양성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다.
"예를 들어 임권택 감독이 한국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대는 쿼터였다. 쿼터 축소는 비오락성 영화가 극장에 걸릴 기회의 상실로 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장르의 다양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쿼터가 없었다고 비오락성 영화를 안 만들었을 거라 할 수는 없지만 감독의 노력 여하에 모든 것을 맡기는 꼴이 된다. 일차적으로 보호받을 장치가 필요하다.

쿼터는 유통의 문제이기 때문에 축소되더라도 제작이나 해외수출은 할 수 있다. 김기덕, 홍상수 감독 등 국내흥행은 되지 않더라도 해외에서 인정받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러나 쿼터가 축소되면 김기덕,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국내극장에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대만의 몇몇 감독들은 해외영화제에서 상 무지하게 받지만 국내에서는 참패인데다가 볼 기회도 없다.

그럼 과연 관객이 찾는다고 해서 극장에서 김기덕 홍상수 감독 영화를 걸까. 돈은 안되지만 관객이 찾는다는 이유로…. 물론 걸 수야 있을 거다. 그렇지만, 과연 얼마나 걸릴까. 1-2주 걸리기도 어려울 거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극장주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쿼터가 축소되면 국내영화 간의 경쟁이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부다양성이 사라질 위험에 직면하는 꼴이 된다. 영화의 문화적 측면은 사라지고 산업적 가치가 있는 영화, 즉 돈 될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쿼터 축소되면 김기덕,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국내 극장에서 만날 수 없을 것 자명"


- 영화의 문화적 측면을 이야기했는데 내부다양성 상실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의 잠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대단히 크다.
"쿼터 축소는 영화의 문화적 성격보다는 산업적 성격에 비중을 둔 결과다. 어떤 사람들은 쿼터 축소가 되면 외국의 다양한 영화를 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파는 측은 상품이 될 영화, 메이저 영화를 팔게 된다. 예를 들어 메이저 영화를 팔면서 끼워팔기를 한다.

즉, <킹콩>같은 메이저영화를 팔 때 B급영화를 끼워파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년에 수백 편을 만드는데 그것을 다 소화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는 거다. 100만 원짜리 영화를 팔면서 50만 원짜리 영화 수 편을 끼워파는 상술을 쓰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끼워파는 영화들이 좋은 영화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B급 영화, 저급 오락영화라는 것이다. 그런 영화들이 물밀듯이 들어올테고 우리 문화의 잠식뿐만 아니라 문화의 질 또한 상당히 낮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 이동원
- 다른 나라의 쿼터 축소 사례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호주는 자체 생산 영화는 별로 없다. 대부분 후반작업이나 장소제공으로 영화산업이 발달했다. 호주 영화라는 게 거의 없어진 상황이다 보니 언어마저 미국과 같은 호주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라는 것은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쿼터 축소가 되면 외국 메이저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 상영에 간섭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경우는 이미 있었다. 예전에 <여고괴담>이 상영될 때 <고질라> 수입이 추진됐다. 그런데 할리우드에서 <여고괴담>을 내리거나 시간대를 바꿔야 <고질라>를 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여고괴담>은 오전에, <고질라>는 오후에 상영됐다. 또 한 번 이런 경우가 있었다. 쿼터가 축소되면 이런 간섭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 쿼터가 한국영화 발전에 이바지한 측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90년대 초반 UPI 직배로 한국영화가 망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쏟아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신예 감독과 좋은 배우의 대거 출연, 기술력 발달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그 기틀에는 쿼터가 있었다. 물론 쿼터만이 영화발전을 가져왔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보호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쿼터가 영화발전에 이바지하지 못했다고 없애도 되느냐고 반문을 던지고 싶다. 절대 그건 아니다. 이바지를 하든 안 하든 있어야 하는 게 쿼터다. 문화 성격을 띠는 영화의 특수성상 보호장치는 성장의 좋은 토양이 된다. 쌀도 옥토가 있어야 비옥하게 크는 것 아닌가. 쿼터를 없애는 것은 작물에서 옥토를 빼앗는 것과 같다. 쿼터와 같은 보호장치가 없이 외국에 홀로 나왔을 때 한국영화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쿼터 없애는 것은 작물에서 옥토 빼앗는 것과 같아"

- 지난 시기에도 스크린쿼터를 놓고 논란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른 것은 쿼터 축소와 FTA를 모두 반대한다는 것인데
"스크린쿼터 축소 전에는 쌀시장 개방이 있었다. 그리고 뒤로는 의료, 교육 등이 문을 연다. FTA란 게 관세 장벽 없이 동등한 토양 위에서 경쟁하자는 건데 과연 우리가 그럴 준비 정도가 되어 있는지 간곡하게 묻고 싶다. 그리고 미국에 아시아에서의 자유무역협정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중국도 쿼터가 있고 수입편수 제한도 있다. 미국은 우리를 다른 아시아국가와의 협상을 위한 표본으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와의 협상에서는 결국 캐나다의 완고한 태도로 쿼터 축소가 빠졌다. 미국은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은 거다. 우리나라와의 협상을 표본으로 미국은 앞으로 다른 나라랑 협상할 때 분명히 영화를 걸고 넘어갈 거다."

- 마지막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운동을 바라보는 국민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일각에서는 영화배우들의 1인 시위를 두고 제비뽑기네, 끝내고 외제차 타고 사우나를 가네, 남들은 천막 치는데 영화배우들은 좋은 데서 농성하네….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1인 시위는 자진해서 하는 것이며 피켓 문구도 배우가 직접 작성한다. 영화배우들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잘사는 대한민국을 바란다. 만약 FTA가 국익에 정말 도움이 된다면 뒤로 물러설 수 있다. 그러나 과정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본질과 FTA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더욱 노력할 테니 국민도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주민보(www.jajuminbo.net)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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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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