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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겉그림
<낙타> 겉그림 ⓒ 문이당
<낙타>는 시아버지의 돈을 둘러싼 가족의 해프닝의 한가운데에 서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며느리 '고야목'의 이야기이다. 야목의 남편은 야목이 첫 아이를 낳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승려가 되기 위해 집을 나간다. 남편이 멀쩡히 살아 있으면서도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린 며느리를 가엾게 여긴 시아버지는 야목을 위해 커다란 레스토랑을 하나 차려주고, 아버지의 풍요로운 재산을 눈독들이던 큰 아들 '민석'은 이를 못마땅해 한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하는 시아버지가 자신에게만은 예외적으로 큰 재산을 마련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야목. 그녀는 나머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재산이 많은 부모는 자식에게 그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민석과 시누이가 파렴치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인생의 끝자락에 근접한 시아버지에게 사랑이 나타난다. 인생의 마지막 선물처럼. 그는 남은 인생을 최대한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고, 늘그막에 만난 귀한 인연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식들의 반응은 냉정하고 야멸차다. 오직 아버지 사후의 재산이 갑자기 나타난 여인에게 넘어간다는 사실과, 남은 여인이 짐스러울 것이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자식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합시다. 막말로 아버지가 살면 얼마나 사시겠어요. 그러고 나면 최소 20년 이상 그 여자를 어머니로 모셔야 하잖아요. 제수씨나 나나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답디까. 낳아 준 부모도 귀찮아서 갖다 버리는 세상인데, 이 좁은 바닥에서 명색이 어머니라고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요. 혹시 알아요? 아직도 임신할 수 있는 상탠지. 그러면 정말 절망이에요. 막말로 나야 어렵다면 어려운 사이가 될 수 있지만, 제수씨는 혼자인 데다 같은 여자라서 편하다는 이유로 이쪽으로 빌붙을 확률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자신 없어요, 이러면 안 된다니까요. 혹 떼는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려도 될까 말까 한 일이에요. 노인네 고집이 엔간해야지요"...

생활자금과 정치자금으로 아버지의 재산 상당부분을 억지로 뜯어내고도 늘 더 받지 못해 불만이었던 시아주버니 민석은 아버지의 결혼발표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야목에게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 그가 쏟아내는 타산적인 말에 야목은 실소를 금치 못할 뿐이다.

야목은 이해한다. 사랑에 빠진 늙은 노인의 마음을, 그의 인생 말기에 피어난 꽃 같은 사랑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이에 가족들은 야목이 큰 재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시아버지를 싸고돈다고 공격한다. 그러나 야목은 시아버지를 단지 이해할 뿐이다. 그의 노년을. 홀로 사는 이의 외로움을. 역시 홀로 남겨진 자로서 야목은 시아버지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고, 그리고 솔직히는 너무나 부럽다.

육신이 멀쩡한 남편이 야목을 영원히 떠나버린 것은 순전히 그의 정신세계 때문이었다. 허공의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남편의 눈빛. 부재를 예감하며 느꼈던 사랑. 세상에는 떠나게 되어 있는 자에게서만 나오는 정취 같은 게 있는 법이다. 야목은 '동반자의 부재'를 운명처럼 대물림하는 자신의 인생을 쓸쓸하게 관조하며 사랑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시아버지의 당당한 모습을 남몰래 부러워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존재인가. 자식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가. 흔히 말해지듯 부모는 자식의 인생의 반을 이미 결정한다. 그렇다면 자식은 어떤가. 자식도 부모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지 않는가. 부모자식간의 돈관계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부모의 재산은 반쯤은 자식의 것이나 마찬가지인가.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다른 이에게 주거나 사회에 환원한다면 자식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식에게도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혹자는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만일 자신의 이야기라고 가정해 본다면 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100% 확신할 수 있을까. 부모가 내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도 나는 서운하지 않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좋은 일에 쓰시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렇듯, '재화에 대한 욕망'은 부모 자식 관계에 있어서도 복잡한 그물망을 형성한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끈적끈적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욕보다도 더한.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기회를 주는 이 책은 그러나 다른 주제로 옮겨가면 금방 구성적 한계를 드러낸다. 야목이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상황설정이나 육체적으로만 사랑을 나누는 K의 이야기는 구성이 너무 엉성해서 전형적인 통속소설의 이미지를 준다. 또한 중이 되기 위해 돌도 안 된 딸아이를 두고 가출하는 남편이라는 인물의 성격은 너무 추상적이고 개연성이 없어 이야기 자체에 전혀 울림을 주지 않는다.

야목이 자신 본연의 목소리에 충실하고 싶어할 때마다 나타난다는 짐승의 실체가 낙타라는 설정도 너무 엉성해서 이야기로 그럴싸하게 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 낙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떻게 해서 소설의 제목이 '낙타'가 되었는지가 소설 전체를 통해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채 그저 중간 중간 '털갈이하는 짐승'의 이미지로 모호하게 나타날 뿐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관계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여 부모 자식간의 여러 문제, 특히 금전 문제에 관한 근본적 의문을 이야기로 형상화해낸 것은 이 소설이 갖고 있는 특별한 미덕이다. 그러나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그 밖의 여러 화두들은 결국 이야기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결국 큰 줄기의 이야기마저 훼손하고 있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작가의 감각 있는 문장들을 생각해볼 때 자꾸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쉬운 소설이다.

낙타

이명인 지음, 문이당(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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