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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사수' 공동전선...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대규모 집회. 이 자리에는 영화배우나 감독, 제작사 관계자 뿐 아니라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 각종 스태프들도 대거 참석했다.
'스크린쿼터 사수' 공동전선...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대규모 집회. 이 자리에는 영화배우나 감독, 제작사 관계자 뿐 아니라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 각종 스태프들도 대거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친구가 영화에 빠져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조감독 자리까지 왔지만 생활은 어렵습니다… 스크린쿼터는 지켜져야 합니다. 하지만 배우들 밥그릇만 지켜주는 제도라고 보는 이가 많습니다. 영화는 배우들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영화인 아닌가요?"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시위가 한참이던 이달 초, 아이디 '조감독을 친구로 둔 친구'라는 네티즌이 '스크린쿼터문화연대'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양극화의 그늘은 한국 영화계에도 짙게 깔려있다. 충무로는 지금 '관객 천만시대'를 구가하지만, 촬영스태프 처우 개선 미비, 스타 의존 시스템 등은 영화계의 대표적 문제점이다.

영화계 양극화는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영화계는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여론은 "호의호식하는 일부 영화배우들과 유명 감독, 제작자들을 위해 스크린쿼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며 등을 돌렸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성장의 그늘에 있는 스태프들은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그들은 "스크린쿼터 축소는 고용의 불안정을 가져온다"며 우려의 한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지금까지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에서 영화 스태프들은 '있으나마나'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일부 제작사들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스크린쿼터는 내가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박봉에 시달리며, 의료보험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그들이 제작사들과 함께 공동전선을 형성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① 촬영 담당 윤성원] "쿼터는 최소한의 삶을 위한 전제조건"

충무로에서 촬영을 담당하는 윤성원 씨는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일자리가 없어져 생존권을 박탈당한다"고 주장했다.
충무로에서 촬영을 담당하는 윤성원 씨는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일자리가 없어져 생존권을 박탈당한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한국 영화계는 양극화 문제를 인정해야 한다.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가 존재해야 한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일자리가 없어져 생존권을 박탈당한다. 양극화는 영화노동조합이 생겼으니까 영화계 내부에서 적극 대처해야 할 문제다."

<폰>, <오구>, <말죽거리 잔혹사>, < B형 남자친구>. 윤성원(34)씨의 손을 거쳐간 영화는 화려하지만, 16일 만난 그의 차림새는 소박했다. 10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며 덥수룩한 머리,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에 맨발이었다.

충무로에서 5년째 촬영을 맡고 있는 그는 20일부터 제작에 들어갈 단편영화 한 편을 준비중이다. 28살 나이에 영화 촬영을 배우기 시작해 학교 선배의 소개로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평균 수입에 대해 묻자 윤씨는 "처음보다는 많이 올랐다, 두 번째 영화에서 500만원 정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수입도 한 편당 들어오는 돈으로, 4∼5개월 꼬박 일해 얻는 수입이다. 언제까지 일해야 한다는 기간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고, 초과수당도 없다.

윤씨의 이같은 생활을 알았는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발하는 영화인들의 투쟁에 대해 일부 네티즌은 "양극화부터 해결하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윤씨는 "정확한 근거를 갖고 지적을 하면 모르겠는데,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스크린쿼터를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며 "축소되거나 없어지면 생계를 유지할 길이 좁아진다"고 우려했다. 제작사, 영화감독, 배우들과 함께 하는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소외된 측면이 있어서 적극 못 나서는 것도 있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촬영) 현장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영화인들의 대규모 집회 당시 주최측은 하루동안 영화촬영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일부 현장에서는 촬영을 강행했다고 한다. 마지막 질문으로 "힘들 텐데 왜 이 일을 계속 하느냐"고 묻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예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 말의 다른 전제는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라는 현장과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들을 위한 지원을 해주는 게 정부의 몫이다.

그런 노력 없이 '왜 그것을 하느냐'고 묻는 것은 무책임하다. 촬영 일이 (나에게) 맞겠다 싶어서 뒤늦게 결정해서 들어왔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돈은 따라온다'는 명제를 따라가고 있다."


[#② 조명 담당 장태현] "아직 세계 시장에서 게임 안 돼"

조명일을 하는 장태현 씨는 "스크린쿼터 유지로 한국 영화계가 풍족해져야 양극화를 논할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조명일을 하는 장태현 씨는 "스크린쿼터 유지로 한국 영화계가 풍족해져야 양극화를 논할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한 군데 얽매이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 영화 촬영현장에 들어선 장태현(34)씨. 14년 경력의 그도 이제 조명 전문가 축에 들어 조수 7~8명을 거느리는 조명팀의 '퍼스트(first)'다.

영화 한 편을 만들면 조명감독과 그 밑에 장씨와 같은 '퍼스트'가 있고, 그 아래 조수들까지 합쳐져 조명팀이 된다. 조명팀의 수입은 4000∼4500만원 정도. '퍼스트'에게는 1000∼1700만원, 조수들에게는 경력별로 500∼800만원 정도가 떨어진다.

장씨는 지난달까지 영화 <청춘만화>를 끝내고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20일 그를 만나 스크린쿼터에 대해 물었다.

장씨는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의 기본 밥상"이라며 "일단 밥상을 차린 다음에 어떤 반찬을 먹을지 정할 수 있다"고 평했다. "기본 바닥이 깔린 다음 영화계가 풍족해져야 양극화를 논할 상황이 된다"며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고 영화 편수가 줄어들면 제작사도, 스태프들도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4000억원 지원에 대해 "영화를 앞으로 1년 찍고 말 것도 아닌데,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느냐"며 "한편 제작비가 40∼50억 정도인데, 집행된다 해도 골고루 분배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 1500억을 줬다고 영화진흥위원회 기록에 나온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영화하는 사람들이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영화의 기술 수준, 짧은 준비 기간 등을 들어 "우리 영화의 경쟁력 상승은 시작단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영화를 하는 기술 파트는 지금 과도기다. 장비가 좋아지고 있지만, 때깔 좋은 할리우드 영화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다. 돈도 그렇지만, 전문 지식도 떨어진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이 좋은 영화 소스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비쥬얼 면에서는 게임이 안 된다."

스태프들 처우 개선과 관련해서는 "영화노조가 생긴 이후 실질적인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다"며 지난해 12월 정식 출범한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위원장 최진욱)에 기대를 걸었다.

그는 "(영화계 내부 이야기들이) 공론화하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공개하고, 영화계 내부에서도 상하부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제작 지원과 스태프 인턴제도 등의 정책 지원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스태프들은 사람들이 잘 보지도 않는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에 이름을 남기는 정도인데, 섭섭치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되레 "행복하다"고 답했다.

"영화는 행복한 편이다. 방송과 광고 일을 다 해봤는데, 광고는 크레딧 자체가 없다.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고.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남으니까 자료로 영구히 보관되는 셈이다. 방송은 나가버리면 끝이고, 광고는 증거자료도 전혀 없다. 그런 부분에서 영화는 행복하다."

[#③ 촬영 담당 윤영수] "스크린쿼터는 그림 그릴 수 있는 흰 도화지"

촬영 경력 5년차 윤영수 씨는 "영화노조라는 대화의 창구가 생긴만큼 노조의 말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촬영 경력 5년차 윤영수 씨는 "영화노조라는 대화의 창구가 생긴만큼 노조의 말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스크린쿼터는 흰 도화지 같은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그리고 싶을 것을 그릴 수 있는데, 일단 도화지가 넓어야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축소돼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면 다양한 한국영화를 만들 수 없다."

충무로에서 촬영을 담당하는 윤영수(32)씨는 22일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에게 전화를 해 스크린쿼터에 대한 정의로 그의 '도화지론'을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긴장한 탓인지 그는 한 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스크린쿼터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생각을 정리한 듯했다. 그만큼 스크린쿼터는 그에게 절박한 문제였다.

윤씨가 충무로에 들어온 것은 지난 2001년. 영화 <일단 뛰어>를 시작으로 <귀여워>, <거미숲>, <그때그사람들>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아쉽게도 관객 1천만을 넘는 대흥행작은 아직 없다.

그는 촬영작들을 열거한 뒤 "흥행작은 없었지만, 평단의 평도 좋았고 작품성도 뛰어난 작품들"이라며 "스크린쿼터가 없었다면 이런 영화들이 만들어졌겠느냐"고 반문했다.

윤씨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스태프들의 고용환경이 불안정해진다"며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 제작자들은 흥행에 성공할 만한 '안전한' 영화만 제작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스태프들이 일할 곳이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또 "지금 영화와 관련된 학과에서 공부하는 영화학도들은 졸업 이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덧붙였다.

"잘 만든 영화는 관객이 찾아서 보지 않느냐"고 되묻자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 쳐도 상영할 극장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따졌다. "극장주도 사업자기 때문에 이익 창출을 위해서 한 편이라도 (장사가) 잘 되는 영화를 받지,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러면서 그는 촬영부터 개봉까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대박'을 터뜨린 영화 <왕의 남자>를 예로 들었다.

그에게도 물었다. "힘든 영화일을 왜 굳이 하려고 하느냐"고.

"힘들게 만드는 환경을 고치면 된다. 영화노조를 통해서 초과근무수당도 받고, 재교육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된다. 힘들다고 피하지 않을 것이다. 내 후배들에게 내가 일했던 것과 똑같은 환경을 전해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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