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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가 아닌 진주비빔밥 드세요
ⓒ 이종찬

진주비빔밥은 임진왜란 때 처음 만든 음식

저만치 봄이 느긋하게 다가오고 있다. 들녘의 논두렁 곳곳에서는 쑥과 냉이, 씀바퀴 등 여러 가지 봄나물들이 연초록빛 얼굴을 뾰쫌하게 내밀기 시작한다. 고드름이 뚝뚝 떨어지는 산골짝 곳곳에서도 갖가지 봄나물들이 파아란 싹을 밀어올리고 있다. 그래. 이런 때는 논두렁과 산골짝에 나가 연초록빛 봄나물을 한 바구니 캐서 맛갈스런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싶다.

교방음식, 냉면, 헛제삿밥과 더불어 경남 진주의 4대 음식으로 손꼽히는 진주비빔밥. 진주비빔밥은 예로부터 '칠보화반'(七寶花盤) 혹은 '꽃밥'이라 불릴 정도로 그 빛깔이 뛰어나고 아름다우며 맛 또한 기막히게 뛰어난 진주의 전통음식이다.

진주 비빔밥의 역사는 서기 1592년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진주민들은 왜군과의 치열했던 진주성 싸움에서 군, 관, 민 그리고 부녀자들까지 똘똘 뭉쳐 돌멩이를 나르며 왜군과 끝까지 맞서 싸웠다. 이때 서둘러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던 음식이 바로 지금 진주비빔밥의 뿌리.

진주비빕밥이 전주비빔밥처럼 나물 그릇이 따로따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커다란 양은 대접에 일곱 빛깔의 여러 가지 나물과 고추장이 함께 담겨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긴, 왜군과의 싸움이 치열한 진주성에서 한가롭게 나물 따로 밥 따로 담아내 느긋하게 음식을 즐길 틈이 어찌 있었겠는가.

▲ 집의 겉모습은 허름하지만 맛은 달라요
ⓒ 이종찬

▲ 이 집은 장독대에 김치, 동치미, 간장, 된장 등을 직접 담근다
ⓒ 이종찬

시할머니, 시어머니를 거쳐 3대째 이어오는 진주비빔밥

"저희 집 진주비빔밥은 시할머니 때부터 시어머니를 거쳐 저까지 3대째 가업으로 물려받았지예. 저희 시할머니께서 연탄과 석유가 없던 시절(1929년), 나무정글이(땔감 장터)가 열리면 나무를 해서 팔던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 국밥을 판 것이 이 집의 시작이었지예."

지난 달 14일(토) 오후 1시. '진주 한류상품 팸투어' 일행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진주비빔밥 전문점 '천황식당'(경남 진주시 대안동 4-1). 진주가 자랑하는 전통음식인 진주비빔밥을 3대째 이어오고 있다는 이 집 주인 김정희(52)씨는 "옛날에는 다방이 없어 작은 방이 많은 이 집이 맞선 보는 장소로도 유명했다"라고 귀띔한다.

김씨는 "천황식당에서 맞선을 보고 결혼을 해서 지금은 아들, 손자까지 거느리고 있는 노부부가 가끔 자식들을 데리고 와 진주비빔밥을 먹으며 추억에 잠겨들기도 한다"라며, "옛 진주MBC 자리가 예전에는 법원이어서 고관들이 재판하러 왔다가 이 곳에서 진주비빔밥을 많이 먹었고, 역대 대통령도 다녀갔다"고 자랑스레 늘어놓는다.

기자가 "식당 이름이 '천황'이니 혹 일본 천황을 뜻하는 것 아니냐"라고 묻자, 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황의 '황'은 임금 황(皇)이 아니라 봉황새 황(凰)자라고 설명한다. 이어 낡고 허름한 데다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건물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부서진 것을 다시 지었을 뿐 모든 것은 옛날 그대로"라고 못박는다.

▲ 진주비빔밥의 상차림
ⓒ 이종찬

▲ 숯불에서 구운 쇠고기 맛이 그만이다
ⓒ 이종찬

진주 비빔밥은 시골국물에 밥을 짓는다

"진주비빔밥은 칠보화반(七寶花盤)이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음식이지예. 예로부터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있다고, 진주비빔밥은 말 그대로 멋과 맛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봐야지예. 진주비빔밥은 사골국물에 밥을 지어 밥알이 구수하고 곱슬곱슬한 것도 특징이지만 따라나오는 선지국의 시원한 맛은 정말 끝내준답니다." -진주시 박용덕 관광진흥담당

잠시 뒤, 주인 김씨가 빠알간 육회에 빠알간 고추장, 그리고 여러 가지 나물(어린 배추, 고사리, 호박, 잔파, 무, 양배추, 콩나물, 숙주 등)이 잔뜩 담긴 진주비빔밥을 상 위에 올린다. 첫 눈에 보기에도 색깔이 너무 예쁘다. 그대로 비벼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게다가 따라나오는 쇠고기 숯불구이와 깍두기, 물김치, 김장김치, 오징어무침 등도 정말 맛깔스럽게 보인다.

근데, 흔히 비빔밥 하면 당연한 듯 올려져 있어야 할 계란 프라이가 보이지 않는다. 왜? 이 집에서는 계란 프라이 대신 빠알간 육회를 쓰기 때문이다. 비빔밥에 따라나오는 국 또한 마찬가지다. 흔히 나오는 콩나물국이 아니라 쇠고기 선짓국이다. 선짓국에는 깍두기처럼 들어 있는 소피와 무, 파, 고사리, 쇠고기 등이 듬뿍 들어 있다.

어느새 입안 가득 고인 침을 꼴깍 삼키며 칠보화반이 담겨 있는 양은 접시에 밥을 넣고 숟가락으로 마악 비비려 하자 주인 김씨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김씨는 "진주비빔밥은 숟가락으로 비비는 것이 아니라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며, "젓가락으로 비벼야 밥알이 서로 엉키지 않고 나물이 골고루 섞여 제맛이 난다"며 직접 비벼준다.

▲ 어때요?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 이종찬

▲ 칠보화반(七寶花盤), 꽃밥이라 불리는 "진주비빔밥"
ⓒ 이종찬

"선짓국은 몇 그릇이든 맘껏 드세요"

젓가락으로 맛깔스럽게 비벼낸 진주비빔밥을 한 숟가락 뜨서 입에 넣자 참기름의 고소한 맛과 함께 몇 번 씹기도 전에 목구녕을 타고 술술 넘어간다. 쫄깃하게 씹히는 육회의 맛, 그리고 향긋한 봄내음을 풍기며 아삭아삭 씹히는 여러 가지 나물의 맛이 깊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그 깊은 맛이 바로 이런 맛일까.

비빔밥을 꾸울꺽 삼키고 난 뒤 떠먹는 선짓국의 시원하고도 깔끔한 뒷맛도 그만이다. 게다가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찍어먹는 쇠고기 숯불구이의 그 달착지근하면서도 고소하게 쫄깃거리는 맛은 어찌하랴. 비빔밥을 뜬 수저 위에 동치미와 1년 묵힌 김장김치를 척척 걸쳐먹는 그 기막힌 맛은 또 어떡하랴.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다 보니 2~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비빔밥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진다. 근데, 소주가 아직 반 병 넘게 남아 있다. 소주를 다 마시기 위해 주인 김씨에게 선짓국을 조금 더 달라고 하자 "선짓국은 몇 그릇이든 맘껏 드세요, 어떤 손님은 비빔밥보다 선짓국에 소주를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도 더러 있어예"하며 빙그시 웃는다.

"저기 보이는 저 장독대에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를 직접 담그지예. 그리고 김치는 1년 동안 묵힌 김치만을 사용합니더. 요즈음 젊은이들은 조미료 맛에 길들여져 있지만 저희는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모두 옛날식 그대로 하지예. 웰빙 웰빙 해도 음식의 진짜 맛은 옛맛, 즉 어머니의 손맛 아입니꺼."

▲ 진주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답니다
ⓒ 이종찬

▲ 봄을 드셔요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대진고속도로-진주 나들목-진주 중앙시장-진주비빔밥 전문점 '천황식당'

※SBS 'U포터 뉴스', '시골아이 고향' 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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