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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아, 세상 사람들은 삼계대도사요 법왕인 거룩한 부처님보다 문둥이를 더 무서워하는구나. 젠장할 세상, 나도 문둥이나 되어야겠다.' 이렇게 다짐을 하고 문둥이를 따라 갔습니다. 그는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다리 밑에 거적때기로 움막을 만들어 놓고 마누라와 살고 있었는데, 남자는 이미 온몸이 다 문드러지고 여자의 몸에는 울긋불긋 복사꽃이 피는 중이었습니다.

문둥이 부부는 음산하게 웃으며 경계를 하더니 저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한식구가 되어 한 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 봄이 되자 이 문둥이 부부는 어느 날 밤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어요. '행자님은 절에 가서 공부해서 부처가 되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들고 문둥이 부부를 찾아 1년 가까이 해남의 땅 끝 마을까지 전국을 헤맸으나 결국 못 찾고 말았습니다."- 책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 중에서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을 읽고 오현 스님을 처음 알았지만, 문둥이 부부를 만난 짧은 문장만으로도 스님의 내공을 흠뻑 느꼈습니다.

만남을 시작하면서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은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불교든 문학이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를 하자는 것과 남의 눈을 의식하는 발언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이 책은 그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이것 때문에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깊이 없는 것으로, 새로움이 없는 평이한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고 하였지만 나는 이것 때문에 깊이가 한층 더했고 새로움이 한결 돋보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자들은 여행, 사랑, 환경, 욕망, 통일, 전쟁, 문학 등 주제를 일곱 가지로 나누고선 세상을 천천히 살자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풉니다. 욕망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랍니다. 그래야 편안해진다고 합니다. 스님은 자신을 천성적으로 '게으름쟁이'라고 말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친절함이 곧 깨달음'이라 하여 나를 한때 놀라게 하였는데, 오현 스님은 '게으름'으로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도 닦기를 게을리하지 말 걸 권유합니다. 여간 고수가 아닙니다.

시인은 스님에게 '미국이 매우 탐욕스런 나라가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그럴 수도 있지만 미국도 돌아보면 괜찮은 데가 많은 나라라고 말합니다. 특히 자립정신과 기부문화는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마냥 그렇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자기를 철저히 관리하면 이렇게 여유로워지나 봅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서로 비위를 맞춰주는 것

스님은 말합니다. 연애지상주의자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이 세상에서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서 모든 좋은 인간관계는 서로 비위를 맞춰주는 관계라고 합니다. 그렇게 잘 해주기를 하다 보면 남녀간에 사랑도 생기고 친구 간에는 우정이, 사제 간에는 믿음이 깊어진다고 말합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한 주장입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합니다. 이 탐욕은 무명(無明)에서 온다고 합니다. 무명이란 지혜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왜 지혜롭지 못한가,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불교가 욕망에 대한 부정의 논리를 펴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라는 뜻이고 부정을 통해 긍정을 이루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 사례가 등장합니다. 옛날 중국에 단하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여행 중에 어느 절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겨울이라 날이 몹시 추웠습니다. 그는 법당으로 올라가 목불을 꺼내더니 장작 패듯 쪼개서 불을 지폈습니다. 새벽에 그 절의 주지 스님이 일어나 보니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부처님을 쪼개 불쏘시개를 할 수 있느냐'는 주지의 물음에 그는 부지깽이로 재를 뒤적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느냐'는 물음에 사리를 찾는다고 답했습니다. 주지 스님이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느냐'라고 말하자 '사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무토막이지 어떻게 부처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꾸합니다.

스님은 자기 절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밥 짓는 공양주보살과 허드렛일 돌보는 부목처사라고 합니다. 스님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님도 석가모니도 자동차 운전을 못하는데 그 사람은 운전을 잘한다는 식입니다.

시인과 스님이 나누는 대화 속엔 가슴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있고 진솔함이 있고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삶의 깊이와 순수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직분에 맞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

신경림.조오현 지음, 아름다운인연(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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