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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오늘 졸업식 하는데….”
“엄마 못 가는 거 알지?”
“…….”

“그래. 서운한 네 마음 모르는 거 아니다. 하지만 공장 하루 빠지면 손해가 얼만데….”
“…….”
“그럼 점심시간에 잠깐 갈 테니까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을래?”

순간. 목구멍에서 터질 듯 말 듯 그렁대던 눈물이 결국 터지고 말았습니다. 13살 나이면 철부지도 아니건만 졸업식에 못 온다는 어머니 말씀이 무어 그리 서운타고 내내 울음을 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점심시간에라도 오신다는 말씀에 끝내는 목구멍을 달구던 뜨거운 것을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많이 기다렸지? 오늘따라 왜 그리 일이 밀리는지…. 가자. 오늘은 엄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먹고 싶어?”
“자장면.”
“자장면? 그래 졸업 축하 선물로 오늘 엄마가 자장면 사줄게.”

아버지 어머니 언니 오빠까지 달려들어 졸업을 축하해주던 숱한 친구들 틈에 낀 저는 거짓말쟁이였습니다. 웃음을 가장한 외로움과 서러움은 자꾸만 헤픈 웃음으로 둔갑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명랑했던 성격 탓으로 친구들이 많았던 것이 퍽이나 다행이었습니다. 너도 나도 함께 사진 찍자며 밀고 당기는 틈바구니 속에서는 굳이 혼자라는 감상에 빠져들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떠나버린 텅 빈 학교 운동장. 꼬박 1시간을 넘게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그때야 억눌렀던 외로움과 서러움이 꾸역꾸역 치고 올라왔습니다. 하루 빠지면 주차 수당에 월차 수당까지 깎여 버리는 엄청난 손해가 두려워 열이 펄펄 끓는 용광로 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공장으로 출근하던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이 무어 그리 중차대한 일이라고 천번만번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또한 감출 수 없는 서운함에 가슴이 먹먹했었습니다. 그러나 서운함도 잠시. 교문을 들어선 어머니를 마주한 순간 저는 죄스러움의 수렁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뿌연 먼지와 시커먼 기름으로 칠갑한 작업복 잠바를 채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헐레벌떡 달려와 제 앞에 선 어머니….

양 볼을 발갛게 얼려 놓을 만큼 차디찬 2월의 바람 사이로 어머니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리 미안하신지 애써 만든 어설픈 웃음 사이로 햇살 받아 반짝이던 한줄기 눈물을 보았습니다.

꼬깃꼬깃 접힌 지폐 몇 장을 움켜쥔 어머니의 손에 제 손이 잡혔습니다. 한 시간뿐인 점심시간에 어머니도 저도 애가 타 중국집으로 종종걸음쳤습니다. 허름한 중국집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저는 자장면을 먹었습니다. 꿀떡꿀떡 자장면 넘어가는 소리가 왜 그다지도 크게 들리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와 제가 몰래몰래 삼킨 서러움 덩어리였던 것 같습니다.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부모에 대한 죄스러움을 서로 들키지 않으려 뜨거운 눈물 덩어리를 자장면과 함께 삼켰던 것 같습니다.

ⓒ 김정혜
오늘 딸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3년을 한결같이 딸아이는 단 한번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써 본 적이 없었습니다. 천방지축이던 다섯 살배기가 3년여 어린이집을 다닌 덕분에 이젠 제법 의젓해졌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대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김정혜
아직은 졸업이 뭔지도 모르는 철부지들이지만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때로는 엄숙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눈물 나게 예뻤습니다. 졸업노래를 부르고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두 눈 가득 그렁그렁한 눈물을 보자니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 김정혜
졸업식을 마치고 딸아이에게 물었습니다. 30년 전 내 어머니가 물었던 그때처럼.

“복희 뭐 먹고 싶어? 오늘 엄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음… 자장면!”

“자장면? 그래 졸업 축하 선물로 오늘 엄마가 자장면 사줄게.”
“아싸!”

ⓒ 김정혜
딸아이의 대답은 30년 전 저처럼 자장면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제일 맛있는 음식은 자장면인가 봅니다. 딸아이는 자장면 한 그릇을 아주 맛있게 거뜬히 먹어치웠습니다. 그런 딸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습니다.

ⓒ 김정혜
그 순간 문득. 30년 전 내 어머니가 떠오른 건 무슨 조화속인지…. 그때 어머니 마음이 이랬을까 싶습니다. 자장면을 삼키지도 않았건만 목에서 꿀꺽 소리가 납니다. 그때 자장면과 함께 삼켰던 부모에 대한 죄스러움은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건만 어찌 그 모양 그대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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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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