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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포동과 압구정동의 동(洞)별 아파트 평당가가 3000만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지난 8ㆍ31대책 발표 전에 기승을 부렸던 공급확대론이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이 역력하다.

8ㆍ31대책이 발표된 직후 떨어졌던 강남벨트 소재 아파트 가격이 재건축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무섭게 회복되자 공급확대론이 시나브로 세를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강남-서초-송파구를 아우르는 이른바 강남벨트에 소재하는 중대형 평형 아파트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근본 이유는 교육을 포함한 사회적 인프라가 잘 구축된 강남 소재 중대형 평형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급확대론자들(이들은 자신들을 '시장주의자'라 칭한다)의 주장이다.

이들은 정부의 8ㆍ31대책에 대해서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데 그 까닭은 폭발적인 수요가 대기하고 있는 강남벨트 소재 아파트 가격이 세금폭탄(?)으로 잡힐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공급확대론자들은 강남벨트 소재 재건축 아파트들에 대한 정부의 각종 규제 - 예컨대 기반시설 부담금제, 개발부담금제, 개발이익환수제 등 - 역시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들이 강남벨트 소재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해서 내놓는 해법은,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층고 제한 완화 및 용적률 상향 등의 방법을 통해 공급을 늘리는 것과 강남 대체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마침 공급확대론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명인 서승환 교수가 공급확대론에 통계적 근거를 제공할 연구결과를 발표했기에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기사의 일부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

서울 강남 지역의 집값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5년간 강남 주택 공급 턱없이 부족

서승환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말 내놓은 '주요 대도시 주택 공급량 및 가격 변동 분석' 보고서에서 강남 집값 급등의 주원인으로 공급 부족을 꼽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서울시내 아파트는 97만4910가구에서 121만6755가구로 24.8%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 중 관악구는 93%의 증가율을 보였고, 성북(89%), 강북(86%) 등도 증가율이 높았다. 반면 강남지역은 강남구의 증가율이 2%에 그쳤고, 강동(8%), 서초(17%) 등도 평균에 못 미쳤다. 잠실 주공 등 재건축 대단지가 많은 송파구는 기존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15% 감소했다.

강남 지역은 올해부터 3년간 매년 1만 가구 이상의 입주 물량이 나올 예정이지만, 물량 대부분이 송파·강동 지역에 치우쳐 있다. 강남·서초구는 내년 입주 물량이 크게 줄고, 2008년에는 아예 입주 물량이 전무한 형편이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팀장은 "송파신도시는 2009년에나 분양이 가능해 내년부터 2~3년간 수급불균형에 따른 집값 불안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건축 통해 아파트 공급 늘려야

서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부산·대구·인천 등 광역시는 지난해 3분기(7~9월) 아파트 입주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다. 지난 1987~1990년 연평균 20.5%씩 상승했던 아파트 가격도 주택 200만호가 건설된 1991~2000년에는 오히려 연평균 0.35%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 교수는 "결국 공급을 늘리지 않고서는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없다"며 "개발 이익환수제도를 마련한다는 전제하에 강남의 유일한 아파트 공급원인 재건축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월 7일자 "서울 강남 집값 뛰는 건 공급 턱없이 부족 때문" 기사중에서

위의 기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서 교수는 강남벨트 소재 아파트 가격이 줄기차게 앙등하는 이유를 지난 5년간 강남벨트에 필요한 수준의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서 교수에 따르면 87~90년 사이 폭등을 거듭하던 아파트 가격이 주택 200만호가 건설된 이후부터는 오히려 하락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이런 통계들을 바탕으로 해서 서 교수는 강남의 집값을 잡으려면 공급을 늘려야만 하고 구체적으로는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강남벨트에 존재하는 수요는 '투기적 가수요'가 압도적

일견 매우 높은 설득력과 논리적 인과관계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 서 교수의 주장은, 그러나 '투기적 가수요'라는 결정적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서 교수는 강남벨트에 존재하는 모든 수요는 '실수요'라고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지 지난 5년간 강남벨트의 아파트 증가율이 다른 지역보다 둔화하였기에 아파트 가격 폭등이 유발되었다는 식의 용감한(?) 주장을 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강남벨트에 존재하는 모든 수요를 '실수요'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오히려 통계는 강남벨트에 존재하는 수요는 '투기적 가수요'가 압도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부터 이를 입증하는 통계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첫째, 이른바 '강남벨트'에는 주택 소유 편중 현상이 극심하다. 지난 2003년 11월 24일 행자부가 발표한 '전국 가구별 주택소유 현황'을 보면 강남(강남, 서초, 송파구)은 5만5000여 가구가 20만여 채(평균 3.67채)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4만2000여 가구가 전국에 집을 세 채 이상(평균 5.1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8000여 가구는 아파트만 3채 이상(평균 3.8채)을 소유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통계는 2000년 이후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 취득자의 60% 가량이 3주택 이상의 다주택 보유자라는 사실이다. 즉 다주택 보유자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가격상승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권역에 소재한 아파트들을 집중적으로 매수한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강남 지역의 평균 아파트가격은 2000년 1월 3억 7700만원이었지만 작년 6월에는 10억6500만원으로 무려 2.82배나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이른바 '강남벨트' 등에는 대출 등을 통한 투기적 가수요가 창궐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은행이 열린우리당 오제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과 경기도 분당, 용인 지역의 작년 주택담보 대출은 재작년 말과 비교할 때 7.9%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증가율보다 무려 세 배에 가깝다.

또한 작년에 강남, 분당, 용인의 주택 담보대출증가액이 전국 증가분의 43%를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이 1.6%였는데 비해 이 지역 집값은 8.4%나 올랐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근래 집값 급등을 경험한 바 있는 강남, 분당, 용인 등에 집을 소유한 많은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장래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 분당, 용인 등지의 타인 소유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매수한 결과 이 지역에 소재한 아파트 가격이 전국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강남벨트'에 대출 등을 통한 투기적 가수요가 창궐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만한 통계는 또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택구입용 가계대출비중추이'를 보면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권은 2001년 1월부터 1년 3개월간 가계대출 중 주택구입비중이 19.1%에서 48.2%로 1.5배 이상 뛰었고, 서울은 26%에서 53.1%로 100% 늘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각각 65%, 49% 늘었다.

특기할 점은 2000년 대비 2003년 집값이 강남-서울-수도권-지방 순으로 많이 상승하여 가계대출 중 주택구입의 비중이 높은 순서와 정확히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남권역에 실수요가 아닌 투기적 가수요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셋째, 전세가격의 안정이 두드러진다. <중앙일보> '조인스랜드'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2001년 51.4%에서 작년 6월 현재 31.7%로 떨어졌으며 분당은 34.4%, 용인도 32.6%에 불과하다고 한다.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최저 수준에 해당할 만큼 낮다는 것은 투기적 가수요에 의해서 주택을 여러 채 사놓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라 할 것이다. 특정 지역이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으려면, 인구유입의 급증으로 인해 전세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주택 소유자들이 대부분 1가구 1주택을 소유해서 전세를 줄 만한 여분의 주택이 적어야 한다. 강남권역은 둘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자, 어떤가? 강남벨트에 존재하는 수요의 대다수가 '실수요'가 아니라 기실은 '투기적 가수요'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극히 정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강남벨트'에는 주택 수요를 촉발시킬 만한 인구 증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 강남, 서초, 송파구의 인구추이를 보면 90년대 후반부터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통계를 보면 1996년 55만7533명이던 강남구 인구는 2004년 53만1517명으로 줄었고, 1996년 40만8781명이던 서초구 인구는 2003년 40만220명으로 줄었으며, 1996년 67만1560명이던 송파구 인구는 2003년 62만3267명으로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시 주택기획과와 서초구 건축과, 송파구 주택과에서 발행한 자료를 보면, 2003년 기준 강남구의 주택보급률은 94%, 서초구는 90%, 송파구 85%에 이른다.

실수요에 의해서 특정지역에 주택 가격 상승이 일어나는 것은 급격한 인구유입이나 주택물량의 절대적 부족이 주요한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의 통계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현재 강남권에는 급격한 인구유입도 없으며, 주택물량의 절대적 부족 현상도 없다.

공급물량도 차고 넘쳐

더욱이 올해부터 내후년까지는 강남벨트에 추가 공급 물량이 넘친다. 위에서 〈조선일보〉가 인용한 〈닥터아파트〉의 자료를 보면 4만5000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강남권역에 줄줄이 공급될 예정이라 한다. 그 중 대다수가 재건축 아파트임을 고려하면 공급되는 물량 중 상당수가 중대형 평형일 것임은 불문가지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판교신도시에 25.7평형 초과 중대형 아파트 등 8500호가 건설되고, 판교 신도시 이외에 7곳에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기 때문에 중대형 아파트가 부족하다는 전망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 오히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대형 평형 아파트의 공급과잉과 그에 따른 가격폭락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위에서 꼼꼼히 살핀 것처럼 2000년 이후에 강남벨트 소재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서승환 교수의 주장처럼 이 지역에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의 존재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한편 서 교수는 87년부터 90년까지 앙등하던 아파트 가격이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이 본격화한 이후에는 오히려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주장하면서 주택 가격 하락과 공급량의 상관관계를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주택 공급이 대폭 늘어나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고 6공화국이 추진한 주택 200만호 건설도 그런 맥락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88년 이후 전국의 땅값과 집값을 들썩이게 한 부동산 투기 바람을 잠재운 공신은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를 내용으로 하는 토지공개념의 시행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욱 온당할 것이다.

토지공개념의 역할을 간과한 채 주택 200만호 건설이 부동산 투기를 진정시켰다는 식의 해석은 공급확대론자들이 지닌 시야의 협소함을 잘 드러내 줄 뿐이다.

재건축 규제 완화는 도시 토지이용의 관점에서

서 교수는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개발이익 환수를 전제로 강남벨트 소재 재건축 아파트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서 교수는 고밀도 개발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재건축 층고 완화나 용적률 상향 조정과 같은 고밀도 개발은 도시 토지이용의 관점에서 해당 위치에 고밀도 개발을 하는 것이 좋으냐 아니냐의 기준을 우선 적용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집값 안정의 하나로 고밀도 개발을 추진해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근시안적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정책 당국자들이 언제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집값 안정'이 먼저가 아니라 '불로소득 환수'가 먼저라는 사실이다. '불로소득 환수'가 선행되면 '집값 안정'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

그렇다고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양질의 주택 공급은 항상 이루어져야 일이다. 단지 '불로소득 환수'를 통해 투기적 가수요를 걷어낸 연후에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태경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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