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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모처럼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을 보면서, 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얀 눈속에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을 읽어냅니다
서울에 모처럼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을 보면서, 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얀 눈속에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을 읽어냅니다 ⓒ 김형태

서울에 내린 눈도 아름답기만 합니다. 춥고 가난한 동네만을 골라 사랑으로 파고드는, 가장 낮은 모습으로 찾아드는 백설은 분명 하늘의 천사입니다.
서울에 내린 눈도 아름답기만 합니다. 춥고 가난한 동네만을 골라 사랑으로 파고드는, 가장 낮은 모습으로 찾아드는 백설은 분명 하늘의 천사입니다. ⓒ 김형태

단풍나무 위에도 하얗게 눈이 쌓였습니다. 저 단풍잎들은 오늘처럼 눈을 맞고 싶어서 추위와 싸워가며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었을까요?
단풍나무 위에도 하얗게 눈이 쌓였습니다. 저 단풍잎들은 오늘처럼 눈을 맞고 싶어서 추위와 싸워가며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었을까요? ⓒ 김형태

눈을 따라 사뿐히 내려앉은 마른 단풍잎,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눈을 따라 사뿐히 내려앉은 마른 단풍잎,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 김형태
시인의 눈으로 볼 때, 눈은 춥고 가난한 동네에만 내립니다. 춥지 않고 잘 사는 동네에는 눈 대신 비가 내립니다.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무조건 좋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밖으로 뛰어나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면 얼굴 가득 눈이 내렸습니다. 눈(眼)에 내린 눈(雪)은 눈물이 되고, 입 안에 들어오는 눈은 미소가 되었습니다.

동무들과의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 눈썰매 타기 등 아름다운 동심이 묻어 있는 하얀 눈!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무조건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병아리처럼 따라다니며 조금이라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리던 유아기가 누구에게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모와 자식 사이는 밀착 관계입니다. 날 떼어놓고 부모님이 어디를 간다고 하면 나도 따라간다고 떼를 쓴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가 더 좋고, 사춘기가 되면서 이성에, 또는 나 자신에 골몰하였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돌아보니, 어느새 부모님과의 거리는 한참 떨어져 있었습니다. 부모는 열 자식을 키우는데, 열 자식은 부모 하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합니다.

전설과 동심을 주렁주렁 안고 내리는 햐얀 눈이 현대 도시에서는 불청객이듯, 요즘 세상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존재가 더 이상 반가운 손님이 아닌 듯 합니다.

한때는 '동방예의지국'이라 자랑하던 우리나라에서 "차라리 아들을 부정하고 싶은 심정" 노인학대 위험수위(노컷뉴스), 한겨울 온기 없는 방 '어둠속 방치'(한겨레신문), 노인학대 80% "친족에 당해" 아들이 1위(쿠키뉴스) 등 걸핏하면 노인 학대와 관련된 기사가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니 말입니다.

언제쯤이면 다시 하얀 눈을 동심의 눈으로, 부모님을 어린아이처럼 대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요?

우리도 멀잖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배롱나무가 하얀 눈꽃을 피웠습니다.
배롱나무가 하얀 눈꽃을 피웠습니다. ⓒ 김형태

마른 나뭇가지같은 은행나무 위에도 눈꽃이 피었습니다.
마른 나뭇가지같은 은행나무 위에도 눈꽃이 피었습니다. ⓒ 김형태

목련도 하얗게 꽃을 피웠습니다.
목련도 하얗게 꽃을 피웠습니다. ⓒ 김형태

도심에 때 아닌 벗꽃이 하얗게 활짝 피었습니다.
도심에 때 아닌 벗꽃이 하얗게 활짝 피었습니다. ⓒ 김형태
우리 사회에 어느새 '시집살이'라는 말 대신 '며느리살이'라는 말이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요즘 어르신들이 자식, 며느리 눈치를 많이 본다는 뜻이겠지요. '시집살이'가 좋지 못한 말이라면 '며느리살이'도 좋지 못한 말일 것입니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자식이 바로 '종신보험'이었습니다. 나는 못 먹고 못 입더라도 갖은 고생하며 자식 하나 잘 키워놓으면 그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그 전통은 깨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노후를 자식에게 의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준비합니다.

그러나 '말초세대'(부모을 공경하는 마지막 세대요, 자식한테 효도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고 불리는 어르신들은 샌드위치처럼 끼어 이도 저도 아닙니다. 가난한 형편에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해가며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미처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러는 사이 세태는 달라져 가고 있고, 그것을 아는 이상, 자식들에게 손 벌리려니 눈치도 보이고 자존심도 상합니다. '이렇게 찬밥, 쉰밥 신세가 될 줄 알았으면, 자식들 조금 덜 가르치고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 둘 걸'하며 후회하는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솜사탕같은 창밖의 백설. 탐스럽기도 하지만 몹시 추워 보입니다. 요즘의 어르신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솜사탕같은 창밖의 백설. 탐스럽기도 하지만 몹시 추워 보입니다. 요즘의 어르신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 김형태
창밖에 백발같은 백설이 소담스럽게 내립니다. 그 모습이 마치 빨랫감을 보듬어 감싸고 있는 거품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온누리를 하얗게 뒤덮은 눈꽃세상, 분명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닙니다. 이것을 보겠다고 열대지방 사람들은 큰돈 들여 우리나라까지 오기도 합니다. 녹이지 않아도 눈은 저절로 녹습니다. 백발이 서산 위의 해처럼 세월 속에 묻혀가듯이.

저 밖아오는 여명처럼 우리 어르신들에게도 살만한 세상이 하루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 밖아오는 여명처럼 우리 어르신들에게도 살만한 세상이 하루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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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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