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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동북아 국가들 상호 간에는 상대적이고 복합적인 콤플렉스 구조가 존재한다.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데 비해,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우월감 내지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에는 그러한 자신감의 이면에 어떤 공포심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는 일본이, 미국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중국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정서는 '생성되다 만 우월감'에 가깝고, 중국이 미국에 대해 갖는 감정은 '막연하고 옅은 열등감' 같은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나타나는 새롭고 특징적인 현상은, 2002년 촛불시위를 분기점으로 미국·일본에 대한 종래의 정서가 점차적으로 극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미국·일본에 대해 모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이전 세대와 비교할 때, 한국의 새로운 세대는 미국·일본에 대해 서서히 자신감을 키워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처럼 상대적이고 복합적인 콤플렉스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단순히 흥미 차원을 넘어 동북아 국제질서의 현재 구도는 물론이요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몇 편의 시리즈 기사를 통해, 동북아 국가 상호간의 콤플렉스 구조를 분석하고 향후 구도를 전망해 보기로 한다.

그럼, 이번 1편에서는 미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등감을 다루어 보기로 한다.

먼저, 국가나 민족 상호간에 콤플렉스가 생기는 계기는 무엇일까? 당연한 언급이 되겠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에 그러한 콤플렉스는 '(1)역사적 의미를 갖는 중대한 접촉 과정에서 (2)대립하는 쌍방이 (3)정반대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 생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전쟁이나 점령 혹은 급격한 문화교류 과정에서 쌍방의 한쪽은 우월한 입장에 놓이고 다른 쪽은 열등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러한 콤플렉스 구조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 과정에서 발생한 새로운 이미지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회 일반에 전달되면, 전체 사회가 평균적으로 그러한 콤플렉스를 공유하게 된다. 그렇게 생성된 콤플렉스 구조는 다음번의 역사적 접촉과정에서 운명이 뒤바뀌기 전까지는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떠할까? 흔히 회자(膾炙)되듯이, 일본인들이 미국에 대해 상당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를 곧잘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와 비교하면서 언급하기도 한다.

당연한 언급이 될 수도 있지만, 일본인들의 대미(對美) 열등감은 2차례의 역사적인 접촉과정에서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1853년에 미국의 페리 제독이 4척의 함선을 이끌고 도쿄 인근의 에도만에 들어왔을 때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 '동아시아의 거인' 중국이 허무하게 주저앉는 과정을 목격한 이후 국제정세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던 일본은, 자국에 밀어닥친 뜻밖의 물리적·문화적 충격 앞에서 심대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흑선'의 출현은 근세 일본이 근대 일본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이 서양 특히 미국에 대해 열등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는 1945년에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다. 이때의 '검은 구름'이 일본사회에 어느 정도의 충격을 주었는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리라 본다. 그리고 두 번째의 충격적 경험은 미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등감을 강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감행한 1941년 당시에도 일본은 분명 미국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지만, 당시의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면밀한 분석과 예측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중국 등의 항일투쟁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상황에서, 진주만 기습을 국면 전환용의 돌파구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1592~1599년)과 제국주의 침략전쟁(1874~1945년) 시기에 나타난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전선(戰線)이 길어질수록 일본 지도부의 판단능력이 분열되고 약화된다'는 점이었다. 1941년 당시의 일본 지도부 역시 미-일 콤플렉스 구조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두 번의 충격적인 접촉 과정에서 일본은 한 번도 미국을 능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1945년에는 인류 최초의 원폭 투하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두 차례의 역사적 경험이 미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열등감을 생성·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음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대미 열등감이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하는 점보다도, 그런 현상이 앞으로 언제까지 갈 것인가 하는 점이 더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만약 향후 일본인들의 대미 콤플렉스 구조가 바뀌는 시기가 있다면, 그 시기는 국제사회의 변동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콤플렉스 구조의 전환은 대개 국제사회의 변동기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제질서는 결정적 변동기를 향해 급격히 달려가고 있지만, 과연 그 결정적 변동기 때에 일본인들의 대미 콤플렉스 구조가 바뀔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경우. 만약 다음번 국제질서 변동기 때에 일본과 미국이 상호 적대적인 위치에 놓인다면, 그러한 콤플렉스 구조의 변화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두 나라가 상호 적대적인 입장에 놓인 상황에서 충격적인 접촉을 경험한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조건 하에서 일본이 미국을 능가한다면 1853년 이래의 대미 열등감은 당연히 소멸할 것이고, 정반대로 미국이 일본을 다시 한 번 능가한다면 일본인들의 대미 열등감은 더 한층 강화될 것이다.

두 번째 경우. 반면, 지금의 미일동맹이 변함없이 유지되어 다음번 변동기 때에도 양국이 동일한 운명에 놓인다면, 현재의 콤플렉스 구조는 다음번 국제질서 하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미일동맹이 다음번 변동기 때에 승리를 거두든 패배를 당하든 간에 양국이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한은 지금의 콤플렉스 구조에 결정적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으로 볼 때에는 다음번 국제질서 하에서도 일본인들의 대미 열등감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국들의 견제와 도덕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에 의존하여 '반(反) 동아시아적' 태도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이 미국과의 공동운명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 일본들의 대미 열등감은 다음번 국제질서 하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일본이 대미 열등감에서 벗어나려면 미국과 다른 길을 갈 필요가 있는데, 지금으로 보아서는 미일동맹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미일동맹의 성패와 관계없이 대미 콤플렉스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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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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