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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를 들어가기전 속세의 때를 씻은 뒤 들어가야하는 일주문
월정사를 들어가기전 속세의 때를 씻은 뒤 들어가야하는 일주문 ⓒ 문일식
월정사 일주문을 지나쳐 금강교 앞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다시 월정사 일주문 쪽으로 걸어내려 왔습니다. 명색이 신성한 사찰을 들어가는데 속세의 모든 때를 말끔히 벗어놓고 들어가야 한다는 당연함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주문을 통과해야만 월정사의 명물인 전나무 숲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월정사대가람(月精寺大伽藍)이라는 편액이 전나무숲길을 가로막고 웅장하게 서 있었습니다. 가람이라는 것은 인도에서 수행을 하는 승려들이 모여 숙박하고 수행하는 원림을 말하는데, 나중에는 7가지의 건축물인 7당가람(금당, 강당, 탑, 종루, 식당, 경장, 승방)의 형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체로 산이름과 사찰이름으로 만들어진 편액이 걸려있는데, 이곳 월정사 일주문의 편액은 월정사대가람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서 다소 의외였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나오는 전나무 숲길의 입구
일주문을 지나면 나오는 전나무 숲길의 입구 ⓒ 문일식
월정사 일주문을 막 통과하면 차디찬 햇빛이 나뒹구는 작은 양지 뒤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전나무들과 음침한 느낌이 퍼져오는 검푸른 전나무 숲길이 아득하게 보였습니다. 일요일 오전이라 아무도 들지 않는 전나무 숲길을 홀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은 마치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울부짖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전나무 숲길
울부짖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전나무 숲길 ⓒ 문일식
조금씩 걸어들어가는 전나무 숲길 속에서 느껴지는 음침함은 이내 사라졌고, 전나무 숲사이로 간간히 스미는 햇살과 이름모를 새들이 오랜만의 침입자를 경계하듯 다급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바람소리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늘꼭대기부터 전나무들의 잔잎 하나하나를 스치며 크게 울부짖게 하는 바람소리는 귓속으로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숲을 스치는 소리가 느껴졌습니다. 귓가를 스친 바람소리는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일렬로 도열해있는 전나무들을 스치며 멀어져만 갔습니다.

전나무 숲길에 놓여진 개구리 스피커
전나무 숲길에 놓여진 개구리 스피커 ⓒ 문일식
순간 앞쪽에 밝은 초록색의 물체가 눈에 띄었습니다. 눈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개구리였습니다. "저리도 큰 개구리가 이 겨울에..."하며 다가가 보니 개구리 형상의 스피커 였습니다. 눈이 치워지지 않은 길가에 세워진 개구리 스피커는 유난히도 동공을 확장하며 눈에 띄었는데 막상 스피커라 생각하니 웃음이 났습니다.

사천왕상의 다리뒤에 숨은 잡귀
사천왕상의 다리뒤에 숨은 잡귀 ⓒ 문일식
1KM에 달하는 전나무 숲길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사천왕상이 또 한번 가로 막았습니다. 사천왕상중에는 다소 독특한 잡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원래 잡귀는 사천왕이 짓밟는 악귀들인데 마치 사천왕이 자신을 지켜주는 버팀목인양 사천왕의 다리 뒤로 숨어 보호를 받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경내로 들어서는 마지막 문인 금강문 또는 불이문을 금강루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중층의 누각건물로 나라연금강과 밀적금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적광전 기단위에서 바라본 팔각구층석탑(국보 48호)
적광전 기단위에서 바라본 팔각구층석탑(국보 48호) ⓒ 문일식
이제 경내에 들어서 대강당과 설선당 사이 적광전과 팔각구층석탑이 있는 넓은 공간으로 들어섰습니다. 적광전은 보광전이나 대적광전처럼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삼아야 하는데 이곳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여러 사찰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팔각구층석탑은 국보 48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다층다각탑중에서 가장 큰 15m가 넘는다고 합니다.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비슷한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비슷한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 문일식
석탑 바로 아래에는 마치 공양을 하고 있는 듯한 석조보살 좌상이 있는데, 성보박물관에 이동되어 전시되고 있다해서 들어가보려 했지만, 매표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보지도 못하고 와야 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강원도에 분포되어 있는 비슷한 석조보살좌상이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강릉의 신복사지에 있는 것과 한송사지에서 출토된 것도 월정사에 있는 석조보살좌상과 비슷합니다. 특별한 연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완전한 물고기 모양의 월정사 목어
완전한 물고기 모양의 월정사 목어 ⓒ 문일식
종루는 대강당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월정사의 목어는 말 그대로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목어가 용이나 용과 물고기를 섞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습니다. 목어 전체적인 색감도 그렇고, 아가미쪽에 기나긴 수염을 하고 있는 모습도 무척 이채로웠습니다. 월정사는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월정사라는 느낌은 일주문의 편액에 쓰인대로 대가람인데 돌아보면 그리 크지 않음이 느껴지며 서운해지는 그런 사찰입니다. 종루에서는 대강당으로 막혀있고, 적광전 뒷편으로 가면 수광전을 지나 담장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월정사 부도밭의 용과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귀부들
월정사 부도밭의 용과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귀부들 ⓒ 문일식
아쉬운대로 담장을 나서서 부도밭까지 가봤습니다. 부도밭으로 가는 길은 상원사로 가는길입니다. 머지않아 포장된 도로가 끊기고 울퉁불퉁한 길을 한참을 달려야 상원사에 이릅니다. 지난해 타이어 상태에 맘졸이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부도밭에 이르는 길 역시 전나무 숲길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움이 가득 느껴지는 길입니다. 그 오른편에 수십기의 부도가 세워져 있는 부도밭이 있습니다. 대부분 석종형 부도가 대부분인데 크기는 대체로 다 상이했습니다.

하얀 솜이불을 덮고 있는 듯한 부도밭의 귀여운 귀부
하얀 솜이불을 덮고 있는 듯한 부도밭의 귀여운 귀부 ⓒ 문일식
이 부도밭에서는 꼭 보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보는 듯한 모습의 귀부(부도비의 비의 몸체를 받치는 거북이나 용모양의 석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부도밭 사이에 그동안 내린 눈에 숨겨진 그 귀부를 발견했습니다. 크기도 작은데다가 눈에 덮혀 있어서 한동안 찾아야 했습니다. 머리부분의 눈을 쓸어내니 넙적한 얼굴이 나왔습니다. 희화적이고, 웃음이 절로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머리에 있는 눈을 쓸어내고 나니 마치 흰색 솜이불을 덮고 곤히 잠든 모습도 같았습니다. 포근한 모습처럼 보이니 마치 추위가 느껴지는 쓸쓸한 부도밭에 따사로움이 내리는 듯 했습니다.

아침 나절의 꽁꽁 얼었던 월정사의 차디찬 풍경이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포근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도 잦아지기 시작했고, 전나무 숲길에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여행은 떠나는 자의 몫' 블로그(http://blog.empas.com/foreverhappy4u/)에 올렸습니다. 

2006년 1월 22일에 다녀온 여행입니다.

* 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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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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