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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한미 정상회담 모습. 당시 오찬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 국민들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에 대해 싫증난(tired) 것은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2005년 6월 한미 정상회담 모습. 당시 오찬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한국 국민들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에 대해 싫증난(tired) 것은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 청와대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한 것은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전면 폐기"라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상당한 이견을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당시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이 문제를 '장관급 회담'에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그로부터 7개월 뒤인 올해 1월 19일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양국 정부가 공동발표문 형식으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합의했다고 밝힌 것은 한국 정부가 정상회담에서의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부시 대통령 "나는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명확히 하고 싶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부시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는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명확히 하고 싶다'며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고 회담 내용을 <오마이뉴스>에 전했다.

이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석상에서 노 대통령에게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should not allow this to be a political issue)"고 분명히 못박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전략적 유연성 문제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지금 얘기하자면 시간이 걸린다"면서 "그 부분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고 말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전략 쪽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두 정상 간의 대화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부시 대통령 "한국 국민들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에 대해 싫증난(tired) 것은 아닙니까?"
노 대통령 "미군 주둔이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한미군 주둔을 싫어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대다수 사람들은 환영하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 "한국 국민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주한미군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역내(域內) 안정을 위해서도 주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면,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 "그 문제는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면 된다고 봅니다. 왜 이것을 미리 다 정해 놓아야 합니까. 사전에 정해 놓으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시끄러워집니다."


따라서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미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에게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음으로써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대사안에 대한 국민여론 형성을 봉쇄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부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부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확고한 입장을 밝혔으나 한국 정부는 실상을 숨겨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대사안에 대한 국민여론의 형성을 봉쇄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확고한 입장을 밝혔으나 한국 정부는 실상을 숨겨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대사안에 대한 국민여론의 형성을 봉쇄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 청와대
한미 관계에 정통한 앞서의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부시 대통령이 입장을 밝힌 두 가지 사안은 ▲북한의 '우발사태'에 대한 군사적 대비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였다.

이같은 회담 내용은 당시 한미 정상회담에 참여한 청와대 관계자에 의해서도 사실로 확인됐다. 두 사람이 전한 회담 내용과 발언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부시 대통령은 당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OPLAN) 5029'를 둘러싸고 한미 간 이견 노출을 의식한 듯 "일부 한국인들은 미국이 북한의 불안정에 대비하는 것을 마치 북한의 불안정을 희망하는 것처럼 보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부시 대통령은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군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서 "이 점을 한국 정부 전체가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 "사전에 정해 놓으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시끄러워진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한국은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히고 "이 문제는 양국 외교장관과 국방장관 간에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한미 동맹관계에 지장이 없도록 협의해서 정리하자"고 제의했다.

또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구체적 예를 들어, 만약 미국과 중국 간에 전쟁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을 작전에 참가시키려면 한국 정부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그 때 가서 한국 정부와 합의해서 하자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고, 미국은 그러한 상황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고 양국간 입장 차이를 설명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법적으로 볼 때 한미 동맹에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따라서 그 문제는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면 된다고 본다"고 밝혀 전략적 유연성에 의한 주한미군의 자유로운 '전출입'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배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사전에 정해 놓으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시끄러워진다"고 말해 문제를 공식화하는 것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했고 "양국 정부가 원칙의 범위 내에서 신뢰를 갖고 유연하게 하면 될 것을 왜 미리 다 결정해 놓아야 하냐"고 덧붙였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각하의 말씀을 잘 들었다"면서 "이 문제는 장관들끼리 협의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매듭을 지었다.

한미 공동성명 어디에도 주한미군의 '전출입' 제약 표현은 없어

그런데 22일 외교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공동으로 발표한 '전략적 유연성 관련 설명 자료'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합의한 이번 공동성명의 문안은 다음과 같다.

-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공동성명의 어디에도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존중'할 뿐, 노 대통령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한 주한미군의 전출입에 대해 '제약'한다는 표현은 없다. 결국 공동성명에 따르면,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의 전출입이 자유롭다는 얘기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간에 전쟁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을 작전에 참가시키려면 한국 정부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고 밝힌 입장이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힘과 의지도 없으면서 '큰 소리'만 친 것인지 NSC와 외교부의 해명이 필요하다. 물론 노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처음으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언급하며 이렇게 천명해 큰 박수를 받았다.

"최근 일부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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