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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에 내가 귀향할 화순 북면 방리 양지마을. 이 곳 백아산 밑에 내 새 터전을 만들고 싶다.
올 연말에 내가 귀향할 화순 북면 방리 양지마을. 이 곳 백아산 밑에 내 새 터전을 만들고 싶다. ⓒ 김규환

며칠 전 대통령께서 퇴임 후 귀향을 하겠다고 들었습니다. 모쪼록 꿈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나무를 키우고 시인이 되겠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현직에 계시면서 차곡차곡 구체화하는 모습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전임 대통령들은 퇴임 후 소꼬리라도 잡겠다는 심정인지 청와대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잘잘못을 떠나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던 만큼 재임 기간 동안 노심초사 심신을 망쳤던 분들이므로 한적한 농촌에서 푹 쉬었어야할 터인데 말입니다.

질곡의 역사, 시련의 현대사 긴 터널을 지나 이제야 한 시름 놓아도 되는지 노 대통령께서 퇴임 후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를 올바로 제시하시니 국민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가 뚜벅뚜벅 앞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를 기쁘게 살았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야당에서 대통령의 소박한 꿈을 두고 "이번 지방선거용이다"라며 혹평을 해놓았네요. 우리같이 정치를 잘 모르는 대중은 혼란스럽답니다. 아니지요?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제발 약속 지키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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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게 귀향입니다

"노 대통령님, 퇴임후 귀향하신다니 권 여사께서 순순히 들어주시던가요?" 지난 5일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서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참석해 과학회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노 대통령님, 퇴임후 귀향하신다니 권 여사께서 순순히 들어주시던가요?" 지난 5일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서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참석해 과학회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백승렬
이제 귀향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성이 사회 돌아가는 흐름을 훨씬 잘 알기 때문에 여성들의 귀농, 귀향은 생각도 말아야 한다는 인식엔 정확한 데가 있습니다. 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모아 가난이 대물림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아내들의 악착같은 몸부림엔 그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이렇게 보통은 아내 반대가 심해서 아예 얘기도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우선 가족 동의가 있었는지요? 권 여사님께서 순순히 들어주시던가요?

저는 아내와 고향으로 가는데 큰 문제없이 합의를 봤습니다만, 생각처럼 귀향이 쉽지가 않습니다.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이렇게 삶의 질이 낮은 살림살이라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면서도 꿈엔 고향마을에 있지만 몸은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방향을 잡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저도 고향으로 가겠다고 벌써 몇 년 전부터 귀향을 선언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지뢰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번째가 뭐니 뭐니 해도 돈입니다.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그날 그달 먹고 살기 바빠 저축 한번 못하고 삽니다. 10년 만에 승진하여 8급이 된 아내 월급에 제가 버는 건 용돈밖에 안 됩니다.

그래도 남들은 번듯한 직장이라는데 은행돈인 전세금 4500만 원에 반지하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걸로 우리 가족 미래를 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 것 저 것 빼고 나면 한 푼도 남지 않아요. 벌써 그런 생활이 6년째군요. 암담합니다.

둘째, 아이들이 한창 크고 있는데 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시골로 가면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20리나 됩니다. 지방에도 거창고처럼 명문고가 몇 개 있으니 고등학교는 그곳에 보낸다쳐도, 중학교 때까지는 또래가 없어서 문제지요. 중학교 전체 학생수가 20~30명인 곳이 적지 않습니다. 전라남북도와 강원도의 현실입니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께서 참여정부 시작하기 전에 보육걱정 하지 말라고 하셨을 때 참 기대 많이 했습니다. 지금 몇 년이 지나 곧 아이들이 취학을 앞두고 있는데 그 어떤 보조도 없이 두 아이들에게만 월 50만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셋째아이부터 무상으로 키우도록 하겠다는 정책은 요즘 사람들 분위기를 하나도 모르고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중고등학교 의무교육도 좋지만 출산과 육아를 함께 아우르는 정책이 눈에 보이도록 펼쳐지기 바랍니다. 집안 살림 좀 실질적으로 피게 도와주세요.

셋째, 소득이 될만한 작목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제 마흔인 저는 당장 내려가 죽을 때까지 살 집을 지어야 하고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 농사대금, 노후설계 등 들어갈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풀만 뜯어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농사로 말할 것 같으면 현재 농민이 모두 박사인데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자꾸만 피폐해집니다. 어릴 적에 농사를 지어봤지만 어디까지나 몇 년간 헤매야 합니다. 그 다음이 문제지요. 보통 귀향이나 귀농을 하면 '3억이면 3년 만에 손 털고 나온다'는 말이 들리니까요. 생활이 바뀌어야겠지만 도시인의 절반에 근접할 정도 소득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귀향은행' 만들면 어떨까요?

나는 귀향하면 산나물 150여종을 키우며 살 생각이다.
나는 귀향하면 산나물 150여종을 키우며 살 생각이다. ⓒ 김규환
여기에 대한 대책이 절실합니다. 우리 귀농클럽 하나 만들면 어떨까요? 저는 오래 전부터 귀향이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택한 '귀양살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귀향은행'을 만들어 시골살이를 하려는 사람을 정책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농림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지은행 가지고는 턱도 없다고 보거든요.

토지뿐만 아니라 빈집과 빈 택지를 뜻있는 사람끼리 모아야 합니다. 마을도 개조해야 하구요. 예전 집터 50~60평으론 집만 지을 뿐 친구들이 놀고 갈 쓰임새 있는 공간을 들일 수 없어요. 게다가 텅 빈 쓰러진 집들은 귀신 나올 것 같잖아요.

십시일반 보탠다는 정신으로 지역 금융과 유입된 인구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세수만큼 지자체에서 자금을 출원하여 기금을 조성하면 어떨까요? 그 돈으로 정착할 때까지 돌봐주는 겁니다. 그래야 한두 가구만 남아 전통과 맛, 멋이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귀향 후 소득 작목이 될만한 걸 고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몇몇 품목은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내놓아야 합니다. 저는 장차 산나물을 재배하는 단지인 '산채원' 마을을 조성하려고 100가지가 넘는 귀중한 나물을 이미 모아놓았고 이 은행이 만들어지면 몇 가지 출연할 생각입니다. 여기에 노력봉사도 포인트 정립을 하면 좋겠네요.

정부에서도 노력해주십시오. 차후 농림부 예산이나 각종 기금을 이런 데에 일부 쓰도록 배려하시면 대통령 후배들이 훨씬 더 고향 마을에 많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농촌인구 380만 명 가운데 절반은 이미 65세가 넘었다고 합니다. 10년 후엔 진짜 시골에서 다람쥐 만나기보다 어려워질지도 모르잖습니까?

귀향하려거든 전라도로 가보십시오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귀향지를 경남 일원 고향마을이라고 하셨는데 곰곰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고향으로 가신다면 인심과 물정이 맞고 땅도 몇 평 있으시고 음식 입맛도 맞아 편하시겠지만, 요즘 농촌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곳은 호남, 그것도 전라남도 쪽 아닌가요?

이왕 작게 시작하여 큰 물결 만드시려거든 대통령께서 작심하시어 전임 인사수석인 정찬용씨와 함께 전라도로 오십시오. 정 전 수석께서 한 때는 경남 거창으로 가서 활동하지 않았던가요?

왜 이런 가당치도 않을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서민이 아닌 최고 권력을 누렸던 분이 국정 경험을 두루 갖고서 땅을 파고 벼를 심고 밭을 일궈도 안된다면, 그 때는 과감히 농사와 농정을 모두 포기하든가 버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해서 입니다. 그 땐 정말이지 잘 된다면 확실한 재투자가 필요할 것이고, 만일 어렵다는 결론이 나면 선사시대에 최초로 낫과 호미를 들었던 심정으로 농촌 농민 농업에 대해 재설계에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으로 아내가 국가직 공무원입니다만, 호남 쪽은 서울로 올라오면 단칸방도 구할 돈이 되지 않아 옮기려고 하지 않는답니다. 자리가 나지 않아 3년째 전근 소식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저라도 혼자 올 연말에는 먼저 내려가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아무리 평생직장을 만든다 하더라도 난데없는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혼자 1~2년 못 기다리겠습니까마는, 두 아이와 아내가 어떻게 생활할지도 걱정입니다. 척박한 땅을 살리고 농촌 인구 하나라도 늘려 젊은 분위기가 당분간이라도 이어지게 하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늘 맘 같지가 않네요.

하루하루가 고뇌의 연속일진대 이런 뜬금없는 이야기로 누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꼭 귀향하시어 3년 뒤엔 농부로서 만나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 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를 이번 설 전에 만들려고 합니다. 많은 응원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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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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