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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만두 짜요
베트남 만두 짜요 ⓒ 고기복
그런데 그 자리엔 틔이의 남편과 나 말고도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 틔이 남편의 친구였다. 그는 틔이와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였는데, 오랜만에 만났는지 서로 반갑게 한참 동안 인사를 나누었다. 틔이는 인사를 나누는 모양새가 어느덧 한국 아줌마다. 틔이는 접시에 음식을 담아 건네면서 중얼거리듯 베트남어로 몇 마디를 던지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는 틔이가 한 말 중에 ‘콩 비엩(Khong Viet, 모르다)이라는 말 외엔 못 알아들었지만, 달리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던 남편이 “집사람이 방금 혼자 한 말이 ‘그새 참 많이 말랐네’ 해 놓고는 ‘이 사람은 내가 하는 말 모를 것이여’ 하는 구만요”라고 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말을 했던 틔이는 머쓱했던지 생긋 웃는다. 아마 우리말로 “말랐네요”라고 말하려다, 습관처럼 베트남어가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말을 뱉고 나서 악의 없이 중얼거린 것이다. 그러자 뜬금없이 말 못 알아듣는 사람 소릴 들은 틔이 남편의 친구가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베트남인지 모르겠네요”하며 웃음으로 답해줬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 사람은 내가 한 말을 모를 것이여”라고 말하며 안쓰러워하던 틔이의 표정이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는 늘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이다 보니, 종종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외국어라는 사실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그 점은 우리 쉼터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무감각은 본의 아니게 자리를 함께 한 한국인에게 내국인이면서 오히려 외국인이 된 듯한 이질감을 안겨 주기도 하고, 실례를 범하기도 한다.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의 신발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의 신발 ⓒ 고기복
그런 실례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 현장에서도 종종 벌어진다는 것을 상담과정에서 알게 됐다. 한국인 노동자들이나 직원들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말을 모른다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발언을 심심치 않게 내뱉는 것이다.

일하던 직장에서 말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고 하면서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은 같이 일하는 한국 사람들의 표정과 말을 재연하며 하소연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말을 전혀 못할 것 같은 그들의 입에선 온갖 상스런 욕설이 나온다. 말이 안 통한다고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는 사례다.

어떤 경우는 작업반장이 빈정거리듯 웃으면서 욕을 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구나’라고 느꼈다는 이주노동자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드는 건 ‘외국어를 배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외국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진대,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을 갖고 있고, 언어에는 감정이 실리기 마련인데, 비록 못 알아듣는 말일지라도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하면서 하는 말인지, 무시하면서 하는 말인지 다 느끼기 때문이다.

언어는 감수성의 무대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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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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