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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기사의 현장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화재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기사의 현장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 송호정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서류를 처리하고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한다. 그 순간은 어느 직장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다. 늘 반복되는 일상은 그 균형이 깨질 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은 출동벨 소리에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또 출동이다. 이제는 화재 출동 자체가 평온하게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화재현장을 누빈지 10개월 남짓. 그러나 아직도 불끄기는 두렵다. 솔직히 말해 무섭다. 출동구(出動口)로 부리나케 뛰어가서 봉을 탄다. 119구조대, 구급대 모두 한꺼번에 출동하기 때문에 출동구는 항상 만원이다.

내 임무는 선착대 펌프차 승탑. 현장 도착 즉시 60mm나 40mm 수관을 연장하여 관창(물을 뿌리는 노즐)을 들고 불속에 신속히 뛰어들어 화재를 진압해야 한다.

물론 혼자서 다하는 건 아니다. 잠시 부연 설명하자면 선착대 구성은 이렇다. 소방펌프차에는 화재 진압대원 3명, 소방펌프차 운전 및 조작요원 1명 그리고 지휘자 1명으로 구성된다. 지휘자는 부소장이다. 그리고 물탱크차 2대에 진압요원 각 1명, 운전요원 각 1명 이렇게 해서 제1착대가 구성된다.

펌프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몸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최대한 신속하게 방수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메고, 안전모를 쓰고 그리고 동료를 한 번 쳐다본다. 얼굴을 보면서 긴장을 풀고, 서로 의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처음에는 아파트 복도에 내놓은 쓰레기에서 불이 난 거라고 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출동 벨소리만 들어도 큰 화재인지 알아

오래 근무한 베테랑급 소방관의 경우 신고전화 목소리나 출동 벨소리만 들어도 큰 화재인지 아니면 잘못된 신고인지 가려낸다고 한다. 실제로 큰불이 난 경우에는 신고자의 전화 목소리가 긴장돼 있고 긴박감이 있다. 그리고 이런 전화를 받고 출동 벨을 누르는 수보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벨소리가 길고 크게 난다.

관창수(관창을 들고 들어가는 사람)가 아무래도 공기호흡기를 단단히 메야 할 것 같다고 귀띔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 도착해보니, 주상복합 아파트 2층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우리는 신속히 관창을 들고 내부로 진입했다. 복잡한 복도식으로 된 아파트 2층 전체에 시꺼먼 연기가 자욱하다.

이때 20대 여자가 “우리 엄마랑, 제 동생이 안에 있어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면서 허겁지겁 뛰어 내려온다. “자기 혼자 살겠다고 저렇게 도망치다니”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다.

관창수가 불 속으로 뛰어 들기 전에 공기호흡기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지시한다.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여러 번 확인하고 불속으로 진입한다. 시꺼먼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호스를 잡고 더듬으면서 조심스럽게 진입한다. 몇 발자국 전진하자 완전히 암흑이다. 의지할 것은 함께 진입한 동료와 공기호흡기 뿐이다.

이제부터 내 몸은 외부와 단절이다. 이 사실 자체가 공포다. 운명은 나의 의지를 벗어났다. 암흑은 공포심을 더욱 자극한다. 우리의 적은 암흑 말고도 또 있다. 바로 단 한 번만 흡입해도 치명상을 입는 시꺼먼 유독가스인 연기와 살을 익힐 것 같은 뜨거운 열기다.

예측 불가능한 불의 향방

일단 물을 뿌리면 그 순간 공기가 급격히 유입되기 때문에 불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급속히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문을 개방하는 순간 공기가 공급되면서 불이 더 크게 번지는 경우도 있다. 불이 다 꺼진 줄 알고 건물 깊숙이 진입했는데 입구에서 다시 거센 불길이 일어 삽시간에 건물 전체에 불길이 돌아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부상당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자세를 최대한 낮춰 거의 기다시피 안으로 들어갔다. 열기가 대단하다. 귓가에서 열기가 전해져 온다. 몸이 긴장하자 호흡량도 증가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공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마스크를 양압(陽壓, 공기압력이 주변보다 높아지는 현상)으로 돌리자 좀 괜찮다. 그러나 연기도 함께 들어와 호흡하기가 힘들다. 연기가 우리 쪽으로 역류하자 숨이 콱 막힌다. 질식 직전이다. 아무래도 내가 쓰고 있는 공기호흡기가 고장 난 모양이다.

공포감에 현장에서 나왔다가, 다른 대원의 마스크를 빼앗다시피 착용하고 다시 불속으로 진입했다. 여전히 암흑이다. 함께 진입했던 대원들을 불러 본다. 상대방이 아직 무사한지 확인하면서 내 존재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래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서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세(火勢, 불이 타는 기세)에 눌려 물러났다가 전진하기를 반복한다. 현장에서 이런 판단은 모두 관창수의 몫이다. 함께 진입한 대원의 생명은 관창수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어요?”
“우리 아이는 윗 층에서 아직 못나왔어요.”

다급한 비명 같은 외침이 뒤에서 들린다. 위층에 대피하지 못한 주민이 있는 모양이다. 뭔가가 안면부를 후려친다. 몸이 움찔한다. 불속에서 하는 작업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는 일이라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가 강하다. 극도의 긴장과 집중 속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일하는 중에는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다. 오로지 공기호흡기의 공기량이 떨어졌다는 신호음을 듣고 대충 30분 정도 지났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공기호흡기의 용기 한 개는 30분 가량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긴장해서 과격한 작업을 하다보면 공기를 많이 소비하게 되고,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빨리 공기가 떨어진다. 그러니까 공기호흡기에서 삐--- 삐--- 하고 신호음이 나면 즉시 현장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공기가 떨어지기 5분 전에 신호음이 나기 때문에 5분 이내에 현장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이 작은 아파트가 그렇게 길게 느껴지다니

그런데 오늘은 불속에서의 작업시간이 유난히 긴 것처럼 느껴진다. 암흑과 열기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인 것 같다. 마음 한편에서는 공기라도 빨리 떨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드디어 공기가 떨어졌다는 신호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잠시 철수다! 밖으로 나와 공기호흡기 용기를 교체해야 한다. 용기를 교체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는 순간 “아! 드디어 바깥 공기를 마시는 구나! 내 몸은 아직 살아있다”라고 느꼈다.

그러나 쉴 시간이 없다. 더군다나 아파트라 탈만한 물건이 많다. 옷가지, 이불, 장롱 등 유독성 가스를 내뿜는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화점(발화점)을 정확히 공격해야 하는데 불 눈을 아직 못 찾았다. 불 눈을 찾아서 공격해야 불을 완전히 껐다고 할 수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다시 불속에 들어간다.

목이 탄다. 몸이 긴장한 탓이다. 시원한 물이라도 한 모금 하고 싶다. 그런데 물 한 모금 하라고 권하는 사람이 없다.

다시 또 불과의 싸움이다. 연신 물을 뿜어댄다. 아까보다는 훨씬 작업하기가 편하다. 그리고 불도 많이 누그러졌다. 열기도 식었다. 이를 틈타 건물 깊숙이 진입했다. 뭔가 손에 잡힌다. 문이다! 이 문을 열어야 한다. 먼저 문에 열기가 있는지 확인한다. 다행이다. 문을 열자 아! 이게 웬일인가! 바로 베란다다. 드디어 바깥에서 빛이 들어온다.

이제 됐다! 일단은 암흑에서 해방이다. 그리고 연기만 빠지면 된다. 더 이상 불이 붙은 곳은 없다. 남은 열기를 제거하기 위해 흠뻑 물을 뿌려댄다. 실내에는 열기도 없다. 드디어 불끄기에 성공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다. 그리고 연기 속에 갇혔던 주민들도 비상계단으로 무사히 대피시켰고, 어린아이가 연기에 질식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경상이란다. 다행이다.

불에 탄 아파트 내부는 모든 것이 새까맣게 그을렸고, 냉장고 문은 녹아내렸다. 내부 열기가 대단했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암흑 속에서는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아파트 내부가 너무 좁아서 놀랍다. 이렇게 불과의 한판 싸움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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