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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지슴' 해안동굴 앞에 핀 쑥부쟁이와 해국. 봄처럼 따뜻했다.
'질지슴' 해안동굴 앞에 핀 쑥부쟁이와 해국. 봄처럼 따뜻했다. ⓒ 최성

동굴에서 바다를 보며
동굴에서 바다를 보며 ⓒ 최성

점심 먹고 바로 자전거를 매고 걸었던 구간. 이번 자전거여행의 백미였다. 하얏트리젠시 바로 뒤편이다.
점심 먹고 바로 자전거를 매고 걸었던 구간. 이번 자전거여행의 백미였다. 하얏트리젠시 바로 뒤편이다. ⓒ 최성
점심을 앞두고 집에서 나왔다. 몸 편함보다 마음 편함이 먼저다. 나가라고 하거나 불편함을 전혀 주지 않았어도 집에서 나와 자전거에 오르니 엉덩이 아픔보다 가슴이 먼저 시원해졌다. 화순 쪽으로 가다 해안으로 빠지면서 안덕 계곡을 보았다.

여기가 섬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깊고, 규모가 크다. 내리막 길을 시원하게 내려와 용머리 해안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도는 경관이 참 좋다. 제주 어디라도 훌륭한 볼거리지만 용머리해안부터 하얏트리젠시에 이르는 해안의 주상절리, 바다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용암의 형태 등이 자전거 여행에 기쁨을 더해준다. 자전거 여행 구간의 백미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날씨가 아주 좋아서 흰 눈을 덮어쓴 한라산 정상이 구름에 뜬 신비한 모습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우리들 기분도 아주 가벼워졌다. 점심을 먹으려고 다시 ‘바다목장횟집’에 왔다. 사람들이 구면이라 낯설지 않고 정겹다.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봄처럼 날씨가 따뜻하다. 질지슴에서 하얏트리젠시까지 이어지는 해변에서 해안동굴과 주상절리가 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동굴 앞에 핀 꽃들은 계절을 의심케 했다. 자전거를 끌고 갈 수도 없는 너덜지대를 자전거를 매고 지났다. 금방 배가 고파질 만큼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하얏트리젠시로 가는 경사가 아주 급한 계단을 올라서 다시는 자전거를 매는 일이 없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미지식물원에 들렀다. 거대한 유리온실은 화장을 진하게 한 지나친 인공미가 느껴진다. 감탄은 있지만 감동을 부르지는 못했다.

서귀포 시내를 지나는 길은 교통량도 많고, 차도와 자전거도로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힘들다. 어둠이 밀려오자 처음이니 말고기를 먹어보자는 의견을 모았다. ‘신라원(762-3392)’에서 말고기육회를 시켰다. 고기를 아주 잘게 채 썰어서 양념과 버무렸는데 너무 부드러워 씹지 않아도 입에서 녹는 듯 했다. 비싼 가격에 비해 모두 실망했다. 다시 제주에 오더라도 말고기는 먹지말자고 이야기했다.

제주에서는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다는 말이 있다. 오분자기와 전복을 사기위해 ‘매일시장’에 들렀다. 붐비는 인파 속에 갖가지 해산물이 벌떡였다. 1㎏에 6만원하는 전복을 샀다. 이미 어두워진 길을 가로등에 의지해 정방폭포 매표소 입구에 있는 ‘해오름 민박’에 여장을 풀었다.

전복을 갈무리하여 지금까지 여행에 대한 소회와 오늘 좋았던 날씨로 한껏 부풀어 오른 기분을 소주와 함께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지금까지는 바람을 등지고 달렸지만 내일부터는 바람을 안고 달려야 할 것이다.

1월 3(불)일. 맑다 오후에 흐림

정방폭포 - 쇠소깍 - 신영영화박물관 - 남원 - 표선 - 성산 - 우도

여름에 비가 와서 보지 못했는데 ‘해오름 민박’은 앞 경치가 참 좋은 곳이다. 여장을 꾸려 정방폭포에 들렀다. 검은 바위에 하얀 포말을 이루며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물이 시원하다. 해녀 네 분이서 해산물을 내놓고 소박하게 소주를 팔았다. 소라와 해삼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자 이내 속이 뜨거워졌다.

되도록이면 해안에 인접한 길과 동네 골목길(이때 길이 갈라지면 오른쪽으로 달려야 해안이다는 원칙을 지키면 길 찾는데 어려움이 없다)로 달려 ‘쇠소깍’에 도착했다. 그냥 가버릴까 하다 온 이곳에서 일행은 제주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대단히 기뻐했다. 육지에서 흐른 물이 깊은 계곡을 만들어 바다가 땅에 혀를 깊이 박고 있는 곳이다. 맑고, 깊은 물이 주는 투명한 푸름과 그 속에서 놀고 있는 고기들이 인상적인 곳이다.

큰엉해안경승지 위에 영화배우 신영균씨가 설립한 ‘신영영화박물관(764-7777)’은 우리나라 영화의 역사와 영화가 만들어지는 원리, 각종 장비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천천히 둘러보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박물관 안에 있는 음식점에서 바깥 경치를 즐기며 먹는 오뎅국물 맛도 각별했다.

남원에서 허름해 보여 이방인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하루방 순대’에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렸다. 이런 집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나, 규모로 승부하기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꾸준하게 장사를 하기 때문에 좋은 맛이 아니면 경쟁력이 없다. 막창전골에 밥을 먹었는데, 씹을수록 쫄깃하고 진한 맛이 배어나와 싼 가격에 맛있는 음식점을 찾은 안목에 만족했다.

표선에 있는 ‘제주민속촌박물관’에 들리려 했으나 보이지 않아 지나쳤다. 분명히 옆을 지났을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다. 옆에서 불던 바람이 표선을 지나면서는 간혹 앞에 나타나는 일이 많다. 이것을 이기고 나가는데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이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지만 두 발로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행동만이 우리를 저곳에 안기게 할 것이다.

곳곳에서 해안 길옆에 돌성을 쌓아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왜 어떤 이유로 돌성을 쌓았을까? 신산리에서 ‘막내 해녀’라는 간판을 내걸은 간이상점에 들렸다. 어느 곳을 들리든 감귤을 먼저 내놓는다. ‘귤만 먹고 가면 어쩔라고 그라요?’ “그래도 괜찮아요.” 멍게, 해삼, 소라에 소주를 들이키며 이곳에서 물질하는 해녀 중 막내라는 주인과 제주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요청이 있으면 물질을 나간다는 것과 나이 든 분들이 오히려 건강하게 물질을 계속한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날씨가 나빠 내일 아침 기약이 없는 성산일출보다 우도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막내해녀의 제안에 우리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성산항에서 마지막 배가 오후 5시에 있어 바람을 이기고 가기에는 빠듯한 거리임에도 4시 50분에 우리는 우도에 가는 막배에 올랐다.

성산에서는 크고 작은 오름이 한라산과 어우러진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제주를 보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배에서 오름과 어울린 한라산을 보다가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잠에 빠졌다.

관광객이 없는 우도는 겨울 날씨 만큼 어둡고 조용했다. 지침 몸이 서둘러 민박을 구했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주인이 없는 것이다. 농협에 가서 민박을 알아보고, ‘종합식당’에서 돼지고기와 성게미역국에 저녁식사를 했다.

민박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기에는 시간도 늦고, 많이 지친 것이다. 제주에서 반드시 성게미역국 먹어보기를 권한다. 쌉싸름하면서 개운한 그 맛에 술꾼이라면 후회가 없다. 가로등이 없어 캄캄한 길을 달려 비양동에 있는 민박집에 왔다. 방이 넓고 따뜻하다. 여름에 마라도에 다녀와 지금 우도에 몸을 뉘인 내가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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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놀게하게 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초등학교교사. 여행을 좋아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빚어지는 파행적인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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