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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당·청 만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사실상 탈당을 고려했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낳았다.
ⓒ 연합뉴스 박창기

노무현 대통령에게 물어야 할 게 있다. 자신의 탈당 발언으로 정가의 안개 농도를 더 짙게 만든 만큼 최소 밝기의 안개등이라도 켜줘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 물어야 할 건 두 가지다.

하나. "대연정 주장은 잘못 됐다"는 말은 뭔가?

김근태 열린우리당 고문은 지난 6일 "노 대통령이 근래 공·사석에서 대연정 주장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했다.

지난 11일 청와대 만찬에서 흘러나온 얘기도 일맥상통한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말에 대연정 제안으로 당에 피해를 입혔다면 탈당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는 얘기 말이다. 그 전에 청와대는 대연정 제안은 사실상 무산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불분명한 게 있다. '잘못'이나 '무산'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 청와대는 당시 한나라당의 거부로 대연정 제안이 무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지는 있으나 여건이 안 돼 거둬들인다는 취지였다. 김 고문의 말에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저 "지나쳤다"는 노 대통령의 말만 전했을 뿐이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 과정에서 했던 말 가운데 특별히 돌아봐야 할 게 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차이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연정 제안 반대 논리의 핵심이었던 노선차를 반박하면서 한 말이다.

물어야 할 건 바로 이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차이가 없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었는가? 판단 착오였는가?

둘. "창당 초심"은 또 무슨 말인가?

지난해 11월 14일의 일이다. 10·26 재선거 참패로 위기에 빠진 열린우리당 내에서 민주당과의 통합론이 제기되자 노 대통령은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국민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정당과 정치인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지역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민주당과는 같이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앞서 유시민 의원은 대연정 제안을 옹호하면서 "노 대통령이 '호남 표 덫'에 도전 중"이라고 했다.

3김정치의 유물인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새로운 정치질서와 문화를 일구는 게 열린우리당의 창당 초심이요, 다른 당과의 통합 여부를 판단하는 첫째 기준 또한 이것이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진정성 과연 뭐기에...

▲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정가의 안개 농도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열린우리당의 창당 초심"이 부응하지 않는데도 노 대통령은 왜 두 말을 했는가? 지역주의 정당이란 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다르지 않은데도 노 대통령은 왜 상반된 태도를 보인 건가?

이럴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판단 착오로 정체성 발언을 했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을 수도 있다. 노 대통령 발언을 시간 순으로 늘어놓으면 이런 추측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치자. 그럼 탈당 발언은 또 뭔가?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탈당 발언이 과거완료형이었다고 거듭 주장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는 정치인과 언론은 거의 없다.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를 대비해 탈당 발언을 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정계개편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지점에서 종합판 질문이 나온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은 도대체 뭔가?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향해 "100년 가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덕담한 바 있다. 정당이 100년의 역사를 헤아리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지방선거,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 지는 일도 다반사일 것이다. 이런 풍상을 겪으면서도 정당이 명맥을 이어가는 동력은 노 대통령 스스로 밝힌 대로 "자신의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이다.

그럼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자신의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하는 걸까? 그렇다면 열린우리당과 차별화되는 정치노선과 정책은 뭔가?

언론은 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만찬에서 했다는 또 다른 말, 즉 2002년 대선 직전 유시민 의원 주도로 만들어진 개혁당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정당이었다"는 말을 주목하고 있다.

오는 18일로 예정된 노 대통령 연설과 25일의 기자회견 내용을 주목하기도 한다. 주로 사회개혁 의제가 담길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런 것들은 노 대통령이 애기한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구상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정당개혁과 사회개혁 화두를 선점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적지 않다. 지방선거 이후 여권 내에 몰아칠지도 모를 회오리에 대응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도구로 손색이 없다. 그 뿐인가. 이 역학관계의 향배에 따라 모색될 정계개편의 명분축적용으로도 하자가 없다.

한 가지 남는 문제는 있다. 그런 구상과 목표가 이른바 '민주개혁평화세력'의 분열을 초래한 책임을 상쇄할 수 있느냐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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