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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연·민우회등 32개 여성단체들은 지난 4일 황우석교수팀 난자채취과정 진상을 규명하고 엄격한 난자관리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노민규기자  nomk@iwomantimes.com
여연·민우회등 32개 여성단체들은 지난 4일 황우석교수팀 난자채취과정 진상을 규명하고 엄격한 난자관리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노민규기자 nomk@iwomantimes.com ⓒ 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 차모(32·사무직)씨는 2004년 12월과 2005년 7월, 두 차례에 거쳐 시험관아기 시술을 위한 난자 채취를 했다. 그런데 2005년 난자 채취 동의서에 새로운 사항이 추가된 것을 발견했다. 수정하고 남은 난자가 있을 경우 연구용 난자로 기증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 묻는 항목이 추가된 것이다. 차씨는 고심한 끝에 병원 측의 유전학 연구에 난자가 사용된다는 말을 듣고 연구용 난자 기증에 동의를 했다.

그러나 최근 황우석 연구팀의 난자 출처 문제가 제기된 이후, 자신이 기증한 난자가 어떻게 이용됐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신모(35·광고홍보직)씨 역시 지난해 6월 처음 난자 채취 동의서를 작성하면서 남은 난자는 연구용 난자로 기증하는데 동의했지만 자신의 난자가 다른 목적으로 매매된 것은 아닌지 이제야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 출처 의혹으로 불임전문 병원에서의 난자매매를 비롯한 난자 채취와 이용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불임시술 과정에서 여성건강권이 간과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불임시술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 모두 과배란(과잉배란. 정상적인 생리 때보다 훨씬 많은 알이 배출되는 현상) 유도로 난자를 이용하는데 불임시술 의료기관에서 이 난자들이 이용, 관리되는 과정이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임부부를 대상으로 한 시술은 크게 ‘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로 나누어진다. 인공수정은 여성의 배란 시기에 맞춰 남편의 정액을 특수 처리해 가느다란 관에 넣은 후 자궁 내로 직접 주입하는 불임치료 방법이다. 여성의 배란이 불규칙한 경우 배란 유도제를 복용하면서 3~4개월간 실시되며,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과배란 유도주사를 맞아 여러 개의 난자를 배란시킨 후 과배란 인공수정을 실시한다.

남성의 정자를 여성의 자궁에 투입하는 인공수정과 달리 시험관아기는 난자와 정자를 각각 채취한 후 만들어진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하는 시술이다. 시험관아기는 과배란 유도로 채취한 여러 개 난자를 일단 시험관 내에서 배양한다. 이후 처리된 정자를 만나게 한 뒤 수정란으로 배양하고, 그 배양된 배아를 가느다란 관을 이용해 자궁 내에 넣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 시술이 다른 점은 가격과 시술 성공률이다. 시험관아기는 약 180만~230만원 가까이 필요하며 임신율이 35~40%에 이른다. 반면 인공수정은 10만원 내외로 시험관아기에 비해 저렴하지만 임신율은 10~15% 정도이고 과배란 인공수정인 경우에는 20% 내외인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불임시술에 사용되는 난자뿐 아니라 연구용으로 기증되는 난자 모두 전국 10여 곳에 이르는 불임시술 의료기관에서 채취,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불임시술에 사용되는 난자가 연구용으로 오용될 소지를 안고 있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황우석 교수팀에게 전달한 난자가 매매된 난자라고 시인한 데 이어 지난 3일 MBC ‘PD수첩’이 방송한 불임시술을 받은 부부의 증언은 이미 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임시술 의료기관 중 하나인 한나산부인과에서 불임치료를 받았던 윤씨 부부는 “병원 측에서 난자 제공자 10명이 필요하다”며 시술과정에서 난자 일부를 추출해가는 조건으로 시술 비용을 절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지난 4일 서울대 조사위가 황우석 교수 연구 난자 제공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조사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여성의 난자 채취와 이용 문제는 더욱 미궁에 빠진 상태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32개 여성단체들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황우석 교수팀 난자 채취과정의 진상을 규명하고 엄격한 난자관리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여성단체들은 “생명윤리법이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잔여 난자 및 배아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생명공학 연구에서 여성인권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는 객관적 검증위원회 구성 및 검찰조사를 통해 배아줄기세포 연구과정의 난자 제공과 관련한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또한 앞으로 여성의 몸을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일이 없도록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난자수요 폭증에도 여성건강 뒷전 시술·난자공여등 투명한 법제 시급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 논란을 둘러싼 난자 출처 의혹은 난자 관련 관리시스템이 전혀 없다는 허점을 드러내, 우리 사회에 이를 보완하는 법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을 일깨웠다. 줄기세포 연구와 불임시술 등에 사용되는 난자 수요는 증가하고 있으나 난자 제공자인 여성의 건강권 및 안전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 전무하기 때문.

이는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 개정 활동과 난자 관리에 대한 법제정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는 많은 인공수태 시술기관이 있으나 관리감독이 소홀해 난자나 잔여 배아의 수, 시술 현황 등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 해 150만 건 이상 이뤄지고 있는 인공생식 시술 및 난자 공여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정운동으로 여성의 건강권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법개정 및 제정으로 연구용 난자를 기증하거나 불임시술을 이용하는 여성들이 과배란 유도와 난자 채취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기 때문이다.

강모(32·사무직)씨는 3개월 정도 인공수정 시술을 받다가 임신이 되지 않자 과배란 유도제를 맞았다. 그러나 강모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약 10개 정도의 난자를 유도하는 과배란 유도제를 맞으면서도 “일시적으로 어지럽고 시력이 흐려질 수 있다”는 말만 들었을 뿐 다른 부작용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 이모(35·카피라이터)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과배란 유도를 제안받았으나 과배란이 위험하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 이를 거부하고 현재 자연배란으로만 인공수정시술을 받고 있다.

하정옥(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씨는 난자 채취 과정이 실제 배란유도와 난자 채취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질병과 사망 등에 대한 상관관계가 정확하게 추진되려면 시술 이후 여성들의 건강이 장기간 진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씨는 “과배란 유도와 난자 채취에 대해 전문 의료진들은 크게 위험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과배란 유도와 난자 채취가 어떤 위험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반복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여성단체들은 “생명윤리법 38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생명공학 기술의 연구·개발·이용으로 인해 생명윤리 또는 안전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그 연구·개발·이용의 중단을 명하거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게 명시돼 있다”며 “보건복지부가 이 법령에 따라 난자 제공 여성들의 후유증 문제에 대해 조사와 감독의 의무를 어떻게 수행해왔는지 의문스럽다”고 문제 제기했다.

김명진 시민사회과학센터 운영위원은 “캐나다, 스위스, 덴마크, 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은 오직 난자 공유만을 허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국의 경우에는 ‘인간수정 및 발생학청’(HFEA. 불임시술과 연구 전반을 관장하기 위해 1990년 설치된 관청)에서 난자와 정자, 배아관리 등을 담당하는 의료기관과 불임시술기관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불임시술 전반에 관한 규제 법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채혜원 기자

불임시술만이 대안인가
한방시술 등 정부지원 다양화돼야

▲ 인공수정과 과배란 인공수정에 의존하는 기존 불임치료와 함께 한방치료등 다양한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난자채취 시술과정.
정부가 올 한 해 불임부부의 치료비 지원예산을 213억으로 책정한 데 이어, 인구보건복지협회(구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이하 인구복지협회)와 한국여성재단이 기업과 협력해 치료비 지원사업을 전개하는 등 민관이 불임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임치료 지원사업이 여성의 배란을 유도, 난자 채취를 해야만 가능한 ‘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 등 시술에만 국한돼 더욱 다양한 지원책이 요구되고 있다.

인구복지협회는 지난 2일 ‘새생명, 새희망! 불임치료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불임치료비 지원대상자 불임부부 44쌍을 발표했다. 선정된 불임가족은 저소득층으로, 6개월 간 100만원 한도액내(1회 50만원, 총 2회까지 지원 가능)에서 인공수정 시술비를 지원받는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시험관아기 시술비 지원예산을 책정하고, 구체적인 연령, 소득계층, 자녀유무 등을 정해 지원계획을 2월 말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익적인 불임치료사업이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는 난자 채취가 주요 과정인 인공 시술에만 치중하고 있는데다 특정 치료법만 지원, 불임치료방법을 단일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복지협회는 특히 불임치료 지원사업의 구체적인 세부지원 내역을 인공수정과 과배란 인공수정에 대한 시술비로 국한했으며, 한방에 의한 치료, 약제비 등은 일절 제외한다고 밝히고 있다.

결혼 후 5년간 병원에서 불임치료를 받아온 김모씨는 “남편에게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시술에 매달리게 돼, 경제적으로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면서 “수십 회에 걸쳐 호르몬을 투여하는 인공 불임시술이 절대 최고의 해답은 아닌 것 같다”며 정보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문현주 움여성한의원 원장은 “배란이나 착상이 되지 않는다고 무조건 여성의 몸에 호르몬제를 투여, 인위적인 배란과 착상을 유도하는 것을 최고의 치료법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인구복지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임치료비 사업은 그 동안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해온 부부의 불임 문제를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나서 지원을 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시술비 지원은 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의사가 시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불임 한방치료가 치료보다는 보약의 개념으로 판단돼 지원 범위를 배아생성이라는 규격화된 불임치료에만 국한시켰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출산지원팀 홍순식 사무관은 “불임부부의 가장 큰 고충은 경제적인 부담”이라면서 “시험관아기 시술의 경우 1회 300만원의 치료비가 들어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 감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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