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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앞다리살이 가득 들어있는 돼지국밥. 바로 젓가락 들고 한 입 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돼지고기 앞다리살이 가득 들어있는 돼지국밥. 바로 젓가락 들고 한 입 먹고 싶은 충동이 인다. ⓒ 유영수
'돼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이중적인 경우가 많다. 돼지에 대해서는 더럽고 지저분하며 천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반면, 돼지고기에 관한 한 애정은 각별하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스트레스를 풀며 소주 한잔 할 때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삼겹살집이고, 과음한 다음 날 속풀이를 할 때도 돼지고기가 들어간 국밥으로 속을 달래며, 갑자기 날아든 부음을 듣고 찾아간 상갓집에서도 무상한 인생을 슬퍼하며 술안주로 편육 한점씩을 베어 문다.

심지어 새로 사업장을 열거나 확장이전하면서 번성하길 빌어야 하는 고사 자리에서는 돼지머리를 통째로 갖다놓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사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깔끔한 음식점 내부.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하고 가면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깔끔한 음식점 내부.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하고 가면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 유영수
원래 돼지고기보다야 쇠고기가 고급음식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의외로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즐겨먹고 좋아하는 이들도 꽤 많다. 육질이 좋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거야 물론 쇠고기만 하겠냐만, 쇠고기가 표현해내지 못하는 무언가를 돼지고기를 통해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돼지고기를 이용한 그 많고 많은 음식 중에서도 돼지국밥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부천시 중동에 위치한 이곳에 들어서면 어릴 적 시골 외할머니 댁에 찾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실제 나이로야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죄송할 정도로 아직 젊으시지만, 그 인상과 정감어린 말투가 꼭 외할머니를 연상케 한다.

정갈하고 한눈에 봐도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 특히 돼지국밥을 먹을 땐 왼쪽 하단의 새우젓갈이 제일 중요하다.
정갈하고 한눈에 봐도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 특히 돼지국밥을 먹을 땐 왼쪽 하단의 새우젓갈이 제일 중요하다. ⓒ 유영수
이집을 찾는 단골손님들은 "오늘 양말 많이 팔고 왔어?" 혹은 "내복은 요즘 잘 팔리나?"라는 주인아주머니의 조금은 생뚱맞은 인사를 먼저 듣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깔끔한 인테리어 덕분에 현대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는 식당내부와 상반된 느낌이라 더 색다르게 와 닿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신의 식당에 와주는 고마운 손님들을 살갑게 맞이하는 이집 주인만의 독특한 인사법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자연스레 '요즘은 경기가 별로여서 몇 장 못 팔았네요'라며 너스레를 떨게 될 것이다.

마냥 사람 좋아보이시는 주인장부부. 둥글둥글한 외모가 무척이나 닮아 보인다.
마냥 사람 좋아보이시는 주인장부부. 둥글둥글한 외모가 무척이나 닮아 보인다. ⓒ 유영수
시골 외할머니 댁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인심 또한 푸짐하기 그지없다. 방학이면 찾아갔던 외할머니 댁에는 서울처럼 동네에 슈퍼가 있거나 장난감을 살 수 있는 문구점이 없어 불편하기도 했다. 반면 서울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먹거리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이곳에서도 그렇게 푸짐한 인심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추가로 주문하는 공기밥은 당연히 공짜로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말 자주 찾아가는 단골손님이 된다면 자신이 시킨 메뉴보다 더 맛있는 것을 서비스도 받을 수 있으리라.

오늘의 주인공인 돼지국밥을 예로 들어보자. 손님들 한사람에게 각각 1인분씩 주어지는 돼지국밥 안에 들어있는 고기만으로도 웬만한 사람들은 양껏 배를 부르게 할 수 있으련만, 대식가들은 혹여 약간이라도 서운할 수 있으리라. 전에 한번 주인아주머니에게 '아, 서울에서 여기까지 이거 먹으려고 왔는데, 고기 좀 더 안주시나요?'라고 장난삼아 말을 건넸다.

주인아주머니는 냉큼 '부족하면 말을 하지'라는 말과 함께 주방으로 향하더니, 잠시 후 냄비 한가득 돼지국밥 1인분보다 더 많은 양을 서비스로 주시는 것이 아닌가. 물론 동행한 이들이 이곳 오래된 단골손님들이라는 전제를 깔고 하는 얘기이다.

이게 서비스로 나온 거라면 누가 믿겠는가. 이 기사 보고 오시는 손님들 모두 저렇게 서비스해 달라고 할까봐 두렵기도 하다.
이게 서비스로 나온 거라면 누가 믿겠는가. 이 기사 보고 오시는 손님들 모두 저렇게 서비스해 달라고 할까봐 두렵기도 하다. ⓒ 유영수
이번에는 맛에 대해 얘기해 보자. 양만 푸짐하고 맛이 형편없다면 아니 그럭저럭 먹을 만한 정도라 해도, 기자의 연재기사에는 등장할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갈 것은 확실히 짚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돼지국밥의 국물 맛은 여느 설렁탕집에서 맛볼 수 있는 그런 맛과 일단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처음에 이곳을 찾아가기 전 동행한 이가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기에, 조금은 껄끄러워 했던 게 사실이다.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익히 아셨을지 모르겠지만 기자는 느끼한 음식이나 비위 상하는 것에는 약한 편이라 '돼지국밥'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 자체에서 비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국밥 그릇 안에 있는 전지를 한 젓가락 듬뿍 집어 여기 새우젓갈에 찍어 먹어보시라.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하다.
국밥 그릇 안에 있는 전지를 한 젓가락 듬뿍 집어 여기 새우젓갈에 찍어 먹어보시라.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하다. ⓒ 유영수
연상되기로는 느글느글한 비곗덩어리가 둥둥 떠다니고 먹고 나면 속안이 메스꺼울 거란 선입견을 가진 것이다. 허나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고, 결국 이 '돼지국밥'의 맛에 푹 빠져 열렬한 팬이 되고 만 것이다. 요즘도 가끔씩 생각이 나서 먹으러 가고 싶을 때가 많지만, 워낙 집에서 먼 거리에 있기에 아쉬워만 하며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국물 맛은 깔끔하고 시원하며 약간은 매콤해 설렁탕과는 확연하게 다르며 국밥 그릇 안을 꽉 채우고 있는 돼지고기는 부드러운 육질과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고기는 상갓집에서 조문객들의 상에 내어놓는 편육을 약간 얇게 썰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지(前肢)라고 불리는 앞다리살을 잘라 내어놓은 것이다. 젓가락으로 듬뿍 집어든 후 함께 나오는 새우젓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매일 이곳에 출근도장을 찍을 정도로 자주 온다는 단골손님 문동훈씨.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다는 그의 말에 200% 동감한다.
매일 이곳에 출근도장을 찍을 정도로 자주 온다는 단골손님 문동훈씨.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다는 그의 말에 200% 동감한다. ⓒ 유영수
설렁탕이나 칼국수 혹은 이곳의 돼지국밥 같은 메뉴를 파는 곳에서는 식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김치와 깍두기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음식이 맛있다 할지라도 김치 맛이 별로면 가지 않는다.

이곳의 배추김치와 깍두기는 적당히 익힌 상태로 내놔 젓가락을 자주 움직이게 하고, 무척 시원해서 돼지국밥을 먹으며 흘리는 땀을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돼지국밥 한 그릇 비우면서 김치와 깍두기를 두 번씩이나 더 주문할 만큼 맛깔스럽다.

원래 이 음식점은 메뉴판에 있는 식사를 단품메뉴로 주문해 먹게 되어 있지만, 근처 오피스빌딩의 단골손님들에게는 요일별로 다른 메뉴를 정성껏 준비한 가정식백반을 대접하기도 한다. 하루는 매콤한 닭볶음탕 그 다음날은 구수한 된장찌개, 또 어떤 날은 콩나물국밥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집에서 거의 매일 점심을 해결한다는 단골손님 문동훈(33·인천 신흥동)씨는 "전라도 분이 하시는 식당답게 음식 맛이 워낙 좋은데다 주인부부께서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꼭 집에서 식사하는 느낌이 난다"며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원체 대식가인지라 무한으로 리필되는 공기밥 또한 이곳을 찾게 되는 매력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요렇게 싹 비워주는 게 먹는 사람의 매너라 하겠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요렇게 싹 비워주는 게 먹는 사람의 매너라 하겠다. ⓒ 유영수
'점심식사 한 끼 거 대~충 때우지 뭐'라는 생각으로 특별한 맛도 못 느끼고 양껏 배도 못 불리는 이들이여. 맛깔스러운 음식과 구수한 인정이 살아있는 이곳에서 푸짐하게 점심식사를 즐기시라. 오후 한나절이 든든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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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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