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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외로 시골 집과 비슷한 맛이 우러나왔습니다.
예상 외로 시골 집과 비슷한 맛이 우러나왔습니다. ⓒ 양중모
'그래, 직접 하는 걸 보고 했으니, 인터넷상에서만 자료를 찾은 나보다 잘하는 게 당연해!'

이런 제 위안은 금방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녀가 시도한 오징어채볶음, 메추리알 조림, 어묵 등은 그녀 역시 다 인터넷에 설명되어 있는 요리법을 보고서 만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려운 요리는 아닐지라도 저라면, 하루에 하나씩 소화해내기도 힘든 요리들을 척척 하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허무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 일간지에서 '아내 없이 살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1달 이내 폐인 모드가 된다'는 기사를 보고 비웃었건만, 그녀가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몇 십 년 후에 그 기사의 주인공이 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청국장 이후에 그녀가 과감히 감행한 요리들은 청국장만큼 감탄을 안겨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녀가 오징어채 볶음을 한 후 제게 맛을 보라고 했을 때 사실 그건 설탕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오징어채 볶음의 맛은 정체 불명이었습니다.
사실 오징어채 볶음의 맛은 정체 불명이었습니다. ⓒ 양중모
맞을 것을 각오하고, 솔직히 말했더니, 이번에는 그녀가 고추장을 넣어 열심히 비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맛을 보라고 합니다. 아, 그건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맛이었습니다. 참 요상한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그녀가 만들었는데, 맛이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집요하게 묻는 그녀의 물음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도 혀가 있잖아."

그녀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웃으면서 좋아합니다. 스스로도 맛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여자들이 웃으면서 때릴 때는 힘이 없어 보일 듯하지만, 정말 아픕니다. 맞아보면 압니다.

이 후 제게 내려진 과제는 중간 중간 설거지하기였습니다. 어차피 다시 쓸 것을 왜 설거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랜 연애 생활을 한 덕에 여자친구의 말은 어지간하면 그냥 들어주는 게 몸에 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별 다른 말없이 설거지를 했습니다.

설거지는 벌써 3년 정도 몸에 배어 힘들지 않았습니다만, 정작 절 괴롭힌 건, 메추리 알 까기였습니다. 그녀가 다른 반찬을 만드는 동안, 전 의자에 앉아 메추리알을 까야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무척 귀찮았습니다. 그래도 좀 하다 보니 빨리 까는 법과 쉽게 까는 법을 대강이나마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아, 메추리알 까는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아, 메추리알 까는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 양중모
"먹지마! 얼마 있지도 않은데!"

유난히 식탐이 많은 제 속을 꿰뚫고 있는지라 뒤돌아 선 상태에서도 까면서 먹지 말라고 제게 주의를 주는 그녀가 은근히 얄미웠지만, 그녀 말이 맞는지라 들고 있던 메추리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세 번째 요리는 어묵을 볶은 것입니다. 꽈리 고추랑 고추 가루 등을 넣고 열심히 만든 후 또 다시 제게 맛을 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맛있긴 한데, 왜 이렇게 기침이 자꾸 나지?"
"어, 왜 그러지, 고춧가루 때문에 그런가?"

아 그랬습니다. 맛은 괜찮았지만,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넣었는지 자꾸만 기침이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뚝딱 뚝딱 잘 만들긴 하는데, 2% 부족한 면이 있긴 했었던 듯싶습니다. 어묵을 완성시킨 후 마지막으로 만든 요리는 메추리알 조림이었습니다. 메추리알 조림을 옮겨 담는데, 두 알이 식탁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오뎅에 붙어있는 고춧가루때문인지 자꾸만 기침이 났습니다.
오뎅에 붙어있는 고춧가루때문인지 자꾸만 기침이 났습니다. ⓒ 양중모
"어,어, 안 돼."

그녀와 저 둘 다 반사적으로 막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메추리알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메추리알을 떨어지지 않게 잡으려 했는데, 메추리알이 바닥에 떨어지자, 저도 모르게 바닥에 떨어진 메추리알을 잡아서 입 속에 넣어버렸습니다. 넣고 나서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찌할 도리는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몇 가지 반찬이 완성되었고,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께서 정말 그녀가 한 게 맞냐며 흡족해 하실 만큼, 정말 의외로 그녀가 분전한 하루였습니다. 예전 어머니 손맛과 같은 맛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제 요리에서 여전히 부족한 한 부분을 그녀는 어떻게 채우는지 분명히 아는 듯 했습니다.

완성품입니다. 메추리알은 다른 그릇에 옮기기 전입니다.
완성품입니다. 메추리알은 다른 그릇에 옮기기 전입니다. ⓒ 양중모
오늘따라 그녀가 그리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귀찮을 텐데도, 피곤할 텐데도, 저와 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먼저 나서서 이것저것 챙겨주겠다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에게 결국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크리스마스도 지났으니, 솔로이신 분들께 염장질 좀 해도 괜찮은 것이겠죠?

"사랑해~!"

덧붙이는 글 | 오랜만에 여자친구와 있었던 일을 기사화합니다. 사실, 이전 기사를 찾아보시면, 그녀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지만, 초상권을 들먹이는 그녀이기에 더 이상 쉽게 그녀 사진과 이름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이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녀에게 기사료 절반을 주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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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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