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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그> 표지
ⓒ 창작과비평사
어느 틈에 해가 바뀌었다. 신문을 펼치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문구를 무색하게 하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핵심 세력으로 '2635' 세대가 부상했다는 내용이다. 386으로 세대를 구분할 때부터 기분이 나빴던 나로서는 화가 났다. 핵심 세력이라고? 그렇다면 나머지 세대들은 위성에 지나지 않는 뒷전 세대들이란 말인가.

통념화된 58년 개띠

아무튼 이른바 386의 형님 세대에 해당되는 40대들이 지금 '복고' 열풍을 일으키며 문화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름진 얼굴과 여기저기 나잇살이 든 몸은 역시 나이듦이 밟아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생의 젊음은 한 번뿐임을 말해 주는 증거들은 그뿐 아니다. 무얼 해도 예전만큼 재미가 없고 열정이 식었다는 것. 그래서 시간의 경과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함을 조금씩 나름의 방식으로 터득해 나가는 시기다.

여기 40대들의 지난날이 영화처럼 펼쳐지는 책 <마이너리그>(창작과비평사, 2001)가 있다. 시간의 다리를 지나 그들의 유년과 젊음이 어지러운 꿈처럼 난무하던 그 때를 배경으로 인생 이류(얼치기 삼류)인 네 남자의 인생유전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결코 일류가 돼본 적이 없는 그들 네 남자의 지난날은 바로 우리 누나, 우리 형의 이야기다. 냉소적 전면적 환멸주의자라고 일컬어지는 은희경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내가 20대였던 80년대 말, 젊음에 기대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던 때, 책임의 소재를 왈가왈부하게 되면 으레 선배들은 '58년 개띠'라는 무기(?)를 앞세워 무엇이든 후배들의 입을 닫게 하는 위력을 과시했었다.

이해되지 않던 그 무기가 이 책을 읽고 나니 비로소 이해됐다. 그래서 한밤중에 그만 크게 웃어버렸다. 58년 개띠는 일종의 '일당'들이었다. 그들이 있어 나의 젊은 날도 낭만화되고 신비로 덧칠해질 수 있었다.

4명의 58년 개띠 남자들, 유신시대에 유년을 보내는 이들은 '개 같은 인생'을 겪는다. 그들은 결코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들이며, 그래서 그들의 리그 또한 평범하다 못해 보잘 것 없는 것이다.

함량 미달들의 좌충우돌 돌발 사태는 풍자의 극치를 보여 주는 듯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의 재미를 안겨 준다. 특히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4인방의 생생한 캐릭터와 터지는 사건들의 조합은 영화화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는 개인적 확신을 준다.

70년대와 80년대의 풍속과 역사들의 재현 속에 추억의 달콤함과 쓰라림이 뒤섞이면서 삼류인생도 못 되고 어정쩡한 이류에서 머물고 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작별은 또 다른 시작

은희경의 냉소는 바로 이런 것인가. 그들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없이 남루한 변두리의 40대로 전락한 모습을 과장 없이 보여 줄 뿐이다. 그러한 이유,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름 아닌 '시간의 비루함'이다.

이 유장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1979년'도, 또 '1987년'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 시간대는 다만 불현듯 맞게 되는 '소란 속의 침묵' 혹은 '부지불식간의 깨달음'에 버금갈 듯하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어떤가? 다시 '시간'은 흐른다. 소년은 노인이 되고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삶은 지속된다.'

이 책을 읽고는 '작별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고 위로할 수 있는 여유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낙관은 낙관을 낳는 법. 언제나 희망의 그물코를 건져 올리는 시늉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은 나에게 말해 준다. 조금씩 잃어버리며 사는 게 삶이라고, 또 잃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게 삶이라고. 이런 맥락으로 보자면 '작별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연초다. 과거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 <마이너리그>를 적극 권한다.

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창비(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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