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겉그림
책 겉그림 ⓒ 살림
사람들은 왜 '극장'에 가는 걸까? 일방으로 전해주는 영화관보다는 그래도 양방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스크린에 보여주는 필름보다는 배우와 관객이 마주하며 더 깊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극장의 생김새가 원형이든지 모서리 꼴이든지 또는 사각형이든지 간에 그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영화보다는 훨씬 더 깊게 다가올 것이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그리고 깊게 생각하는 그 공감은 사람들 발걸음을 극장 안으로 불러 모으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연극을 상연하는 '극장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역사라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거기에 몰두하는 사람만이 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극과 극장이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떻게 발전돼 왔는가를 어렴풋이나마 알아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임종엽님이 쓴 <극장의 역사>(살림·2005)에는 바로 극과 극장이 시작된 배경과 그 역사 발전에 대해 아주 짧고 굵게 쓰고 있다.

연극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희랍신화라든지 그 신화와 맞물려 있는 각종 제의 속에서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극의 시작은 '디오니소스 대축제'에 기원을 둔다고 한다. 이는 그것을 기점으로 자그맣지만 형식도 갖추었고, 또 사람들에게도 대리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극장은 또 어떨까? 옛 그리스에서는 거의 모든 극장을 야외에 꾸민 게 사실이다. 그 원형이 되는 틀로 디오니소스 극장과 에피다우로스 극장을 예로 든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다분히 제전 의미가 더해진 극장으로서, 아테네라는 지형과 지세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관객석은 모두 3단이고, 각각 27열과 13열로 자리 잡고 있고, 수용 인원만 해도 무려 1만8000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리고 에피다우로스 극장은 아테네 문명 최전성기인 페리클레스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서, 가장 완벽한 기하학과 균형을 보여줬다. 물론 이곳엔 병원, 체육관, 역도경기장, 선수 공중욕장과도 함께 지어졌지만 디오니소스 극장과는 달리 순수예술을 감상하기에는 더 안성맞춤이었다.

그 가운데 그리스 극장을 살펴보면 그 무엇보다도 음과 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지었다. 이를테면 무대의 중심이 되는 오케스트라에서 동전 하나를 대리석 바닥에 떨어드려도 금세 가장 먼 객석에까지 전달된다. 특히 객석에 놓인 좌석 하단부에 항아리도 심어 두어 음향의 공명 현상을 줄이기도 하고, 또 배우의 성격과 음성을 잘 전달하기 위해 당시에는 배우들 모두가 가면을 쓰기도 했다.

그리스 극장은 희극보다는 대부분 비극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그 다음 시대를 대표하는 로마 극장은 해학극을 더 많이 상연했다. 그것은 로마 사회가 인간의 정신이 되는 면보다는 물질이 되는 면을 더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이 극에서도 그대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차경주, 마술 경기, 격투기, 창검투기들이 극으로 전환되어 극의 소재로 연출되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로마에서 극은 하나의 오락이자 구경거리였다. 이는 그리스의 무대에는 '신에 대한 경건한 의식'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출연과 출장이 명예롭게 여겨졌으나, 로마에서는 황제 네로가 무대에 섰다가 비난을 받은 경우와 비교할 수 있다."(40쪽)

그 후 중세 시대에는 특별한 장소를 정해 놓은 극장보다는 시민들 속에서 연출할 수 있는 극장들이 생겨났다. 이른바 이동식 극장들이 그것이다. 그 당시 시민들은 폐쇄되거나 한정된 곳보다는 도시 전체를 배경으로 하는 극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매일 매일 태어나고 사라지는 '하루살이 극장'들도 그때 많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봉건주의 세계관이 무너지고 휴머니즘이 자리 잡게 된다. 인간에 대한 낙관론과 개인주의적 성향이 대두되는 시대였다. 자연스레 연극도 다른 부분과 맞물려서 하나의 통일이라는 장을 구성해 나간다. 일정한 사회적 배경과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극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거리와 광장을 돌며 연극을 상연했던 그 전까지와 달리 다시금 표를 파는 극장들이 들어서게 됐다. 기록된 사례를 보면, 1576년에서 1680년 사이에 세워진 '검은 수사들'이라는 극장에서는 중세 이후 극을 보기 위해서 표까지 예매했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중세 이전의 극장 문화로 복귀하는 것이고, 적어도 극장과 극의 문화가 중세의 틀에서 이탈하는 것이요, 또한 근대적 인간 극장을 알리는 첫걸음으로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세계가 온통 무대'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 시대 극장과 적당한 표현은 '무대가 곧 세계'여야 한다. 대규모 무대 장치가 없는 플랫폼 무대는 다양한 움직임과 장소의 변화를 허용했다. 순식간에 무대의 일부는 도시의 거리, 외지의 싸움터, 궁중의 방, 주막 등 작가가 원하는 곳으로 바뀌었다."(78쪽)

모름지기 연극은 희곡과 연출 그리고 연기술에 의해 그 깊이가 드러난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연극을 상연하는 극장의 건축술 또한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건축은 분명 그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기 때문이다.

그런 특성 가운데 초기 극과 현대 극, 초기 극장과 현대 극장이 주는 차이가 있다. 가장 큰 것은 초기에는 조명 장치나 음향 효과보다도 오히려 관객들 스스로가 생각할 수 있는 공감 꺼리에 더 중점을 두었다면, 현대에는 기술이 되는 부분과 사실이 되는 부분을 더 돋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대극과 현대 극장에서 더욱 관심을 갖추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하고 또 생각할 거리들을 더 많이 제공해야 하는 데 있지 않겠나 싶다. 다른 겉모습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연극 본연의 의미는 퇴색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것이 극과 극장의 역사 속에서 깨달아 볼 수 있는 장점이지 않았나 싶다.

극장의 역사, 상상과 욕망의 시공간

임종엽 지음, 살림(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