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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역의 한 사립고교가 전체 학생의 손에 보따리를 나눠주는 수법으로 수백kg의 중국산 농산물을 밀반입한 것으로 20일 취재결과 확인됐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 "충남 천안지역 사립고교인 H고교가 2004년 5월부터 7월까지 이동수업 명목으로 학생들을 중국에 오가게 한 뒤 이들을 불법 밀수에 동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H고 전 교감 A씨는 이날 오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지난 해 7월 초 H고 학생 1, 2학년 전원(당시 신설학교인 까닭에 3학년은 없었음)인 56명에게 참깨, 고춧가루 등 중국산 농산물 박스를 하나씩 나눠주는 방식으로 인천국제여객터미널의 세관을 통과시킨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A 전 교감은 이 당시 학생 인솔 책임을 맡은 바 있다.

이 같은 증언은 교육기관이 미성년자인 학생을 이용해 불법을 저지른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학생 한 명마다 5kg 물건을 손에 들려준 것으로 어림잡을 경우, 몰래 들여온 중국산 물품은 모두 300kg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행 관세법에 따르면 수입물품을 부정한 방법으로 들여온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날 세관당국은 이 학교 교사와 민주노동당 관계자를 대상으로 조사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교감 "당시 이사장 동창인 김 목사 부탁 들어준 것"

A 전 교감은 "학생들에게 보따리를 맡긴 것은 단동 B농업기술학교 관리책임자인 김 목사 부탁을 들어준 것"이라면서 "학생들에게 하나씩 들려 보내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김 목사 의견을 받아준 게 탈이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여객터미널에 마중 나온 사람이 물건을 회수해갔기 때문에 이 물건을 팔았는지 아니면 대전에 있는 김 목사 가족이 처분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중국 B농업기술학교는 H고와 자매 결연을 맺은 학교로 김 목사는 H고 이사장과 교장을 잇달아 맡은 바 있는 조아무개씨의 고교 동창이다.

이에 대해 조 전 이사장은 이날 "중국에서 학생들을 동원해 물건을 불법 밀수시켰다는 말은 오늘 처음으로 듣는 얘기"라면서 "당시 학생들을 인솔한 교감이 자체로 판단했으면 몰라도 학교 차원에서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고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조 전 이사장의 이 같은 말에 대해 관련 교사와 A 전 교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다. 이들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한 목소리로 "조 전 이사장이 지난 해 학생들이 물건을 갖고 올 때 인천여객터미널에 직접 마중 나왔다"면서 "김 목사와 고교 동창인데다가 조 전 이사장 자신이 눈으로 물건을 직접 보고도 부인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학교 '학교정상화를 위한 학부모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전홍진씨는 "우리 자녀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 것인지, 뭐를 하려고 한 것인지 몰라도 속이 턱 막히는 사건"이라면서 "말이 되지 않는 일이 우리 사립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분을 삭였다.

학생 중국 인솔에 동행한 바 있는 한 교사도 "나도 학생들과 함께 보따리를 들고 오면서 교사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립학교의 황제식 경영으로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문제의 H고는 지난 11월 충남교육청의 감사에서 있지도 않은 영양사와 기숙사감의 급여를 준데다 학생들이 없는 방학기간에도 기숙사비를 15만원씩 꼬박 받아 챙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순영 의원실에 따르면 조 전 교장의 부인인 국어교사가 행정실 일을 맡아보았는데 개교 이후 회계정리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이 학교 행정실장은 조 전 교장의 큰 형인 조아무개씨가 맡고 있다.

충남교육청은 이 학교재단에 대해 감사를 벌여 2억여만원을 변상하고 3명에 대해 파면, 해임을 요구했다. 회계질서 문란과 교육과정 파행 운영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이 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은 감사 결과에 대해 '덮어주기 감사'라고 반발, 충남교육청은 이달 9일 재감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최순영 의원은 "학생들 등록금과 교육청 지원금이 학교장사꾼 호주머니에 들어갔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수년간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지도 감독이 없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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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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