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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어제, 점심을 먹고 우리 부부는 장유에 있는 농산물판매점으로 향했습니다. 문을 연 지 겨우 보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각종 이벤트와 할인행사를 많이 합니다. 이번에 찾은 주목적은 '곰거리'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 겨울밤을 줄지어 내리는 아름다운 불꽃
ⓒ 한성수
매장 안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대더니 밀감매장으로 몰려듭니다.

"자, 지금부터 밀감 한 봉지를 무조건 2000원에 드립니다. 가득 담으면 5000원이 넘는 밀감을 단돈 2000원! 2000원에 모십니다. 거기 아저씨, 임신한 아주머니를 밀지 마세요. 저 아주머니께는 특별히 500원에 드리겠습니다. 어제 임신하셨다구요? 증거가 없어 안됩니다."

▲ 반짝세일, 밀감매장-절반은 남자
ⓒ 한성수
판매원의 유쾌한 외침이 매장 안을 가득 채우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아내는 급히 비닐봉지 2개를 뜯어서 밀감을 담기 시작합니다. 나는 짐수레를 잡고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기가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러나서 사진을 찍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이 매장 안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일러줍니다. 나는 "몰랐다"며 명함을 건네자 "미리 이야기해서 직원의 안내를 받으라"며 친절히 일러줍니다.

아내가 밀감 두 봉지를 담아왔는데, 봉지가 미어져 나올 정도로 가득 담았습니다. 아내는 몇 개 더 담은 것에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습니다. 11월 27일에는 이곳에서 개장 기념으로 사흘에 걸쳐 배추 5만 포기를 세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나도 아내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줄을 섰습니다.

▲ 아내가 가득 담은 밀감봉지
ⓒ 한성수
우리 부부는 한사람이 살 수 있는 최대량인 21포기씩 42포기를 사서 그것으로 김장을 했습니다. 당시에 배추 한포기가 시장에서는 2000원을 넘었는데, 여기서는 한포기에 500원에 팔아서 사람들이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었는데, 그날 분량의 배추가 동이 날쯤에는 새치기하는 사람과 말싸움이 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차에 짐을 싣고는 개장식에 참가한 행운권 번호를 맞춰보는데, 우리번호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 복에 무슨 행운권이 걸리겠노. 나는 남편 복 밖에 없다 카이."

아내의 혼잣말에 나는 기분 좋게 속으로 웃습니다. 우리가 출입문을 나서는데, 여섯시 반부터 '불꽃놀이가 있다'는 안내방송이 들립니다.

▲ 노랗거나 붉거나 푸르거나
ⓒ 한성수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들고는 팔짱을 끼고 주변을 천천히 걷습니다. 겨울바람이 제법 차갑지만 우리는 젊은 연인처럼 더 꼭 붙습니다.

"그런데 줄서는 것이 당신만 쑥스러운 것이 아니고, 다른 남자들도 똑같은가 봐요. 저번에 당신이 동문회 등산 가을날, 동네 전자제품매장에서 할인행사가 있었어요. 내가 첫날은 줄을 서서 6만 원짜리 가스레인지를 3만 5천원에 샀어요.

둘째 날도 줄을 서기 위해 뛰어갔는데요. 아, 글쎄, 거기서 당신 직장의 직원 부인인 송이 엄마를 만난 거예요. 그런데 '송이 아빠가 앞쪽에 서 있다'며 '모른 척 해 달라'며 손가락을 입에 대는 거예요."

아내는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 이는 얼마나 난감해 했을까요.

"한정 판매라 뛰지 않으면 물건이 떨어져서 사지도 못하거든요. 그 부부는 3만8천 원짜리 스탠드를 1만5천원에 두 개를 샀어요. 그러니 잠시 줄을 서서 5만원을 절약했잖아요. 그런데 다른 남자들은 잘도 서는데, 당신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에이, 좀생이들!"

아내는 혀를 끌끌 차지만, 나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시장을 다니고, 반짝 세일에 줄을 서고….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생각해보면 부끄럽거나 쑥스러워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같이 숫자를 셉니다.

"5, 4, 3, 2, 1"
"펑! 펑!"

빨갛고 노란 불꽃이 밤하늘을 장식하다가 매캐한 화약 내음과 함께 우리 부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립니다. 아내는 탄성을 연발합니다. 10여 분의 화려한 축제를 끝내는 마지막 불꽃들이 다시 캄캄한 겨울 밤하늘을 가득 수놓고 있습니다. 이제 하늘에 아름다운 붉은색 하트가 그려집니다.

▲ 연, 영원한 내사랑!
ⓒ 한성수
"우리를 위해 준비했나봐요!"
"정말, 그래요!"

내가 큰 소리로 외치자, 아내는 환호와 박수로 화답합니다. 참 기분 좋은 초겨울 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린 지 오늘로 만 일년이 됩니다. 이 기사는 99꼭지 기사가 되고 100번째 기사는 처음에 올렸던 어머니가 드실 곰국을 끓이는 정경을 적기로 했습니다. 일년 동안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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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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