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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사당.
ⓒ 권우성
8·31 대책의 약발이 다 떨어진 탓인지 강남 등의 아파트 가격이 눈에 띄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강남이나 분당 등에서는 급매물이 급속도로 소진되면서 호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매도인들도 자신들이 시장에 내놓은 매물을 재빨리 거둬들이고 있다.

눈 밝은 시인의 표현을 빌어보자.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열린우리당은 또 자살골?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부동산 부자들의 후각은 예민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8·31 대책 발표 이후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중 일부를 시장에 내놓은 것이 이전보다 한층 무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세 부담을 덜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처럼, 세금 중과의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에 반비례하여 향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자신들이 내놓은 매물을 발 빠르게 회수하고 있는 최근의 결정 역시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만약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8·31 대책을 발표하면서 거창하게 표방한 '헌법만큼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 정책'과 같은 정치적 수사에 대한민국 부동산 부자들이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리라고 기대했다면, 지나치게 순진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부동산 부자들이 정작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허황한 엄포가 아니라 8·31 대책이 후퇴 없이 입법화 되느냐의 여부다. 그런데 8·31 대책 발표 이후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태도는 부동산 부자들을 안도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열린우리당은 특유의 우유부단함으로, 한나라당은 당론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몇몇 의원들이 각개 약진식으로 8·31 대책의 근간을 훼손하는 입법발의를 통해 각각 부동산 부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것이다.

10·29 대책을 사실상 형해화 시키는 등 자살골 넣기에 일가견이 있는 열린우리당의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에게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부동산 투기를 뿌리뽑겠다는 약속의 시발점이 '8·31 대책의 온전한 입법화'라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과감히 기반시설부담금제를 원안보다 후퇴시킬 수가 없지 않겠는가?

한나라당이여, 부동산 투기는 로또가 아니다

▲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서병수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정책협의회를 열어 8.31부동산종합대책의 후속 입법 문제와 새해 예산안 조정문제 등을 논의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입만 열면 '민생'과 '경제'를 말하곤 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열린우리당의 그것보다 한결 고약하다. 열린우리당이 8·31 대책의 온전한 입법화에 소극적이라면, 한나라당은 8·31 대책의 무력화에 적극적인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그간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인상은 곧 확신으로 바뀐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1세대 1주택 소유자에 대한 광범위한 예외조항을 두며, 세대별 합산에서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자는 이혜훈 의원의 대표 발의안과, 60세 이상 15억 이하 3600만원 소득의 1세대 1주택도 면제해주자는 이종구 의원의 대표 발의안을 보고있노라면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국세청의 발표에 따르면, 기존 종부세 과세 기준(주택은 기준시가 9억원, 비업무용 토지는 공시지가 6억원)을 적용할 때 올해 종부세 대상자는 법인을 포함해 모두 7만4212명(개인 6만5000여명, 법인 9000여명)이라고 한다. 이는 법인을 포함하더라도 전체 인구(4800만명 기준)의 0.15%에 불과하다.

고작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부동산 부자들이 빠져나갈 구멍까지 친절히 만들어주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솜씨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정부 발표에 따르면, 8·31 대책에서 제시한 원안대로 입법이 될 경우(주택은 기준시가 6억원, 비업무용 토지는 공시지가 4억원) 종부세 과세 대상은 내년에 27만8000세대로 늘어나는데, 이는 전체 970만 세대의 2.8% 밖에 안 되며, 이 가운데는 중복 계산된 세대도 많아 실제 종부세 과세 대상은 전체의 2% 안팎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양도세와 관련해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의 활약은 계속되어 이혜훈 의원 같은 경우는 양도세 일반에 대해서 현행 9~36%를 6~24%로 낮추고, 장기보유특별공제율도 현행 10~30%를 15~50%로 높이자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1가구 1주택 소유자 중 상당수가 면세 혜택을 받고있는 점, 양도세 인하의 실질적인 혜택은 막대한 규모의 상가와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부자들이 볼 것이라는 점, 본디 양도세의 본질이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러한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 부동산 투기를 로또에 비유해 비난을 사고 있는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심지어 이종구 의원 같은 이는 "(로또) 당첨 금액의 최고 세율은 33%이다, 그런데 (8·31 대책을 보면) 1가구 2주택 양도소득세는 50%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 각종 세율을 포함하면 60%가 넘는다, 로또도 (세금이) 30%인데 주택이 60%인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라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이 의원은 '로또'와 '부동산 투기'가 똑같은 성격의 '투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둘의 경제학적 성격은 전혀 다르다.

우선 로또는 이를 구입하는 사람들 중 비당첨자(기실 이들이 입는 손해라는 것도 대개의 경우에는 무척 경미해서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는 반면, 부동산 투기는 이를 통해 불로소득을 취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또한 로또는 당첨의 행운을 누릴 확률이 구입자 간에 완전히 동일하지만, 부동산 투기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불로소득의 행운(?)을 누릴 확률이 동일하지 않다. 이와 같이 로또와 부동산 투기는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나 기회의 균등성 측면에서 결코 동일선상에서 취급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종구 의원은 이를 등치시키는 용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8·31 대책의 온전한 입법화에 여야가 적극 협력하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간 8·31 대책의 온전한 입법화를 둘러싸고 보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태도는 국민들의 실망과 공분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당리당략을 떠나 8·31 대책의 온전한 입법화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손을 잡아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부동산만큼 국민의 실생활은 물론 경제 전체에 파급력을 갖는 부문도 드물다. 우리 사회가 현재 노정하고 있는 계층간 양극화 문제, 노사 갈등 문제, 실업 문제 등과 그 밖의 크고 작은 문제들의 배후에 부동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8·31 대책은 '만악의 근원'이라 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에 불과하다. 모쪼록 여야는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8·31 대책의 온전한 입법화에 힘써 주길 바란다. 그 길만이 난마처럼 얽혀있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임을 여야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대한민국이 극소수 부동산 부자들만을 위한 공화국으로 머물 수는 없지 않는가?

▲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 입구에는 종합부동산세를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정수희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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