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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팔월 어느날 수목원 언덕에서 본미술관
지난 팔월 어느날 수목원 언덕에서 본미술관 ⓒ 권용숙

여름엔 아이들 놀기좋은 야외 수영장도 있고 인공폭포와 인공 계곡도 만들어져 있었다
여름엔 아이들 놀기좋은 야외 수영장도 있고 인공폭포와 인공 계곡도 만들어져 있었다 ⓒ 권용숙
지난 여름 수목원 입구에 무작정 내려놓고 근무지로 가버렸던 그녀와 단 둘이 수목원에 다시 들렀다. 수목원 입구 매표소 유리창 너머로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는 수목원 대표 임진호씨는 수목원에 두 번째로 찾아온 손님이 무지하게 반가웠는지 밖으로 나와 우리를 맞았다. 그리고 단풍이 지고 독야청청 푸르름의 빛을 잃지 않고 서 있는 늙은 소나무가 굽이굽이 굽은 사연과 소나무를 이곳에 심게 된 과정 등에 대해 신명나게 설명해 주었다.

나무를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하는 '그림이 있는 정원' 임진호 대표와 친구
나무를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하는 '그림이 있는 정원' 임진호 대표와 친구 ⓒ 권용숙
"우리나라 대표 수목 중 하나인 소나무를 중심으로 조경한 수목원 '그림이 있는 정원'은 내 집 정원과도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전하는 곳이 되고자 '정원'이 되었고, 자연과 예술이 함께 하는 공간이 되고자 '그림'이 되었다."

"사람들은 작은 것도 크게 보이려 과장 되게 이름을 짓는데 왜 하필 삼만 평이나 되는 수목원 이름을(그림이 있는) '정원'이라 했느냐며 수목원 이름을 바꾸라고 하지만, 그 이름도 그 애가 지었지유~."

임 대표가 말하는 그 애는, 큰 아들 구족화가 임형재(38)씨다.

약 200년된 적송
약 200년된 적송 ⓒ 권용숙

약 200년 이상된 해송
약 200년 이상된 해송 ⓒ 권용숙
전통고가구 사업을 하던 임 대표는 78년부터 칡넝굴 아카시아나무 투성이인 이곳 야산에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노후에 내려와 살고도 싶고, 자식들이 이 다음에 조경사업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큰 아들은 대학도 관상원예학과에 다녔다고. 그러다가 아들이 2학년 때 MT 갔다가 사고로 경추를 다쳐 전신마비가 되었다. 임씨는 어떻게든 치료해 보려고 9년 동안 노력했지만, 차라리 이곳에 내려와 아이가 휠체어 타고 바람이라도 마음껏 쐬게 해주고 싶었단다.

"누워만 있던 아들이 붓과 펜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조카 미술 과외 선생님이 올 때 한두 가지씩 그림에 대해 알려주었는데, 한 가지를 알려주면 그 이상을 해낸다는 거유. 그림에 재주가 있다 생각되어 그 선생님한테 2년을 그림 공부를 했지유~. 내가 그랬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네가 그린 그림을 국전에 출품해보자고."

갤러리안에 전시된 구족화가 임형재씨의 그림
갤러리안에 전시된 구족화가 임형재씨의 그림 ⓒ 권용숙
임형재씨는 국전에 두 번 입상한 경력이 있고, 지금은 스위스 구족화가본부에서 인정한 구족화가로 한 달에 150만원 정도의 월급(?)도 받는다고 했다.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마치 수목원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림만 보았을 때 그 섬세함을 보고 누가 입에 붓과 펜을 물고 그린 그림이라 생각할까. 그림이 살아있다. 작은 갤러리 안에서 작은 자연의 일부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타임 플러스(Time Plus(+)) 나무의 '옹이'를 이어 이어서 한부분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나무에 상처가 생기면 그나무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하며 그 수많은 상처들은 옹이가 되고 그것은 자연의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의 시간을 더하고 더해가면 스스로가 자연을 만들어 간다는 뜻입니다.  임형재씨가 전지에  펜을 입에물고 1년동안 그린 그림입니다.
타임 플러스(Time Plus(+)) 나무의 '옹이'를 이어 이어서 한부분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나무에 상처가 생기면 그나무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하며 그 수많은 상처들은 옹이가 되고 그것은 자연의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의 시간을 더하고 더해가면 스스로가 자연을 만들어 간다는 뜻입니다. 임형재씨가 전지에 펜을 입에물고 1년동안 그린 그림입니다. ⓒ 권용숙
"지엄마가 고생이 많지유."

얼마 전 운동을 시킨다고 하다가 대퇴부 골절로 치료를 받은 뒤로, 휠체어를 타면 땀을 얼마나 흘리는지 안쓰럽다고 말하는 임씨는 며칠 전, 출품한 작품은 육개월 동안 그렸는데 휠체어에 앉아있는 것조차 힘에 부쳐 누워서 그림을 그려 마무리 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지엄마가 접어주고 펴주고 다해유. 지금까지 옆에서 그림자처럼 모든 시중을 다 드는데, 내가 봐도 그게 바로 '모성애'인가 봐유. 몸도 좋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씩 완성한 그림들이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이제야 친구가 "꼭 그림부터 봐야해~"라고 주문한 이유를 알고도 남는다.

갤러리에 전시된 임형재씨의 그림
갤러리에 전시된 임형재씨의 그림 ⓒ 권용숙
어느새 칡넝쿨 아카시아 나무투성이인 야산은 3만평 대지 위에 목본류 460여 종, 초본류 870여 종을 보유하게 되어 2005년 3월 국내에서 9번째로 인공수목원 문을 열었다.

지난 여름, 처음 수목원에 있던 벌개미취 삼십 포기를 갈라 수목원 구석구석마다 심어 우리꽃 벌개미취 보라빛 향기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또 봄이면 연산홍 몇 포기를 꺾꽂이해 수십 년 동안 임씨가 번식시켰다는 붉은 연상홍이 정신을 쏙 빼놓을 것이다. 동양 최대의 천리포 수목원에서도 탐을 낸다는 후박나무 숲의 후박꽃 향기 또한 짠내 나는 내 고향 광천의 향기를 조금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잠시 비워둔 매표소에 손님이 든 모양이라며 뛰어가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수목원엔, 다른 거대한 수목원에서 하루종일 걸어도 결코 찾을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나무와 꽃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아들의 그림과 애끓는 모성애와 부성애가 바로 그것.

수목원 안에 자리잡은 카페테리아 '메이'
수목원 안에 자리잡은 카페테리아 '메이' ⓒ 권용숙
친구는 지난주 수목원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 '메이'에서 시화전 및 가족시 낭송회도 열었노라고 자랑했다. 수목원을 구경하느라 때를 넘겨 시장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식당 안엔 아직도 시화전 및 가족시 낭송회를 알리는 현수막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고 시절로 돌아간듯 "왜 날 부르지 않았느냐"고 큰 소리를 치며 재잘거리며, 창밖으로 보이는 수목원이 마치 우리들의 것인양 자랑스러워 했다.

"내년엔 내 시를 꼭 니가 낭송해 줘야 한다"는 친구야~. 내년 시낭송회 꼭 '그림이 있는 정원'에서 열어야 해. 알겠지?

첫번째 들렀던 팔월 어느날 수목원 주변을 뒤덮었던 벌개미취꽃
첫번째 들렀던 팔월 어느날 수목원 주변을 뒤덮었던 벌개미취꽃 ⓒ 권용숙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 서해안 고속도로→광천IC→4거리서 좌회전→첫 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그림이 있는 정원 
전화 | (041)641-1477 
부대시설 | 미술관, 전통고가구전시장, 카페테리아, 유리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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