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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집> 겉표지
<제14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집> 겉표지 ⓒ 사회평론
전태일. 누구나 대면 다 아는 이름일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분신자살한 불쌍한 노동자'. 많은 이들은 이렇게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다.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는 '전태일 문학상'이라는 뜻깊은 문학상을 제정하면서 전태일의 뜻을 기리고 있다. 이제 14회째를 맞이한 전태일 문학상은 비록 소설부문에 당선작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시 부문에서 이맹물의 '비명悲鳴-마이크로칩 공장'외 5편이 당선작으로 소개되면서 수준높은 문학상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전태일의 글로 시작한다

모든 내용을 뒤로 두고, 책의 맨 앞장에는 전태일이 직접 쓴 글이 눈에 띈다. 내용 자체는 천상병 시인의 작품 '귀천'을 떠올리는 듯 하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 <생략>

- 1970월 9월 8일 전태일


이 한편의 글을 읽음으로써 이 문학상 수상집이 다른 수상작품집과는 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태일이 울부짖었던 '근로기준법 준수!'의 혼이 모든 이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맹물의 당선작 '비명悲鳴-마이크로칩 공장'이라는 시의 제목에서 '비명'은 전태일이 분신하며 질렀던 비명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부문, 김인철의 <깨어 있는 시간> 돋보여

당선작은 없다. 오직 우수작과 추천작만이 있을 뿐이다. 우수작은 두 편인데 김인철의 <깨어 있는 시간>과 장용돈의 <비둘기들의 서식처>다. 그중 김인철의 <깨어 있는 시간>이라는 작품은 무척 돋보인다. 우리가 흔히 TV를 통해서 볼 수 있었던 노동조합과 회사 경영진들의 협상 테이블. 그 사이에 오고가는 엄청난 갈들과 희생. 그 모든 것이 김인철의 작품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다.

(비명을 지르다, 옥타브. 목청. 남자. 가성假聲의, 한계)

내가 발목 잡혀 있는 직장은
백 미터의 직선 볻고가 있는 윙윙대는
삑삑대는 간혹 클래식 멜로디의 경보음이 들리는
첨 단 공 장
똑같은 수백 수천 개의 형광등이 누릿한 빛을 내며
스물네 시간 정렬한 곳

...<생략>

- 이맹물의 '비명悲鳴-마이크로칩 공장'


이맹물의 작품은 전태일이 살던 때와 지금 현대의 노동 환경은 변한 것 같지만, 여전히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한과 비명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전태일은 직접 몸으로 분신하며 노동자들의 한을 대변했지만, 이맹물은 글을 통해서 함축되고 의미가 압축된 시를 통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다. 당선작으로 아주 적합한 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잊지 말고 기억해야

전태일 문학상은 자칫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학상일 것이다. 그냥 전태일의 넋을 기리는 문학상이려니 하고 넘기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 속의 슬픈 노동자들은 전태일의 목소리가 아직도 이 문학상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이 한권의 수상작품집을 통해 우리 시대의 노동자들의 쓸쓸한 뒷모습은 비로소 힘을 받는 듯 하다. 아직도 비정규직의 부당함, 최악 환경속의 노동 등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1970년 당시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던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그 근본 옆에 자리한 세세한 문제들은 아직도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다.

비명 - 마이크로칩 공장 - 제14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맹물 외 지음, 사회평론(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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