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필자 신희철씨와 어머니
필자 신희철씨와 어머니 ⓒ 심은식
새벽 5시, 엄마의 뒤척이는 소리에 난 얼른 일어났다. 엄마가 화장실을 가시려는 뒤척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방수패드를 만져보니 엄마는 벌써 오줌을 싼 뒤였다.

엄마는 하룻밤사이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여섯 번까지 오줌을 싸기도 했다. 거의 열흘 가량 매일 밤 반복된 행사다. 나는 잠을 못자 비몽사몽이었다. 그러나 근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엄마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밤새 몇 번씩이나 일어나는 모습은 보기에도 힘겨워보였다.

물을 많이 마셔 소변 볼 일이 자주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옷과 방수요에 아주 조금 묻기만 할 정도로 소변의 양은 아주 적다. 엄마가 이렇게 자주 오줌을 싸는 게 건강이 많이 나빠져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부터 엄마가 살이 유난히 많이 빠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또 불안 증세와 우울증 증세로 보일 정도로 기분이 가라 앉아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서도 엄마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젖은 옷도 갈아입혀야겠고 소변도 마저 보시게 하려고 엄마를 화장실로 모시고 갔다. 잠에 취한 엄마는 거의 걷지를 못했다. 두 팔을 내 어깨에 걸고, 내가 엄마의 허리를 다잡아 끌고 가는 형국이다.

힘에 겨웠던지 파르르 눈까풀을 떨기만 할 뿐 눈도 뜨지 못하던 엄마가 실같이 눈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본다. 엄마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딸을 처음 만 난 듯 말한다.

"우리 딸 왔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에 목이 메여왔다. 불면 날아갈 만큼 힘없는 엄마가 정신조차 혼미한 상태에서도 당신의 딸을 알아보는 것이 기뻤고 숨소리보다 더 작은 엄마의 힘겨운 목소리에 다시 슬퍼졌다.

"응. 엄마, 엄마 딸 여기 있어. 우리 화장실 갔다 빨리 코 자자. 엄마, 많이 힘들지?"

엄마를 꼭 안았다. 매일 안아주던 엄마의 몸이 유난히 더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엄마, 어디 아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아프면 어디 아픈지를 얘기해야 알지. 감기 몸살같이 몸이 아파? 내일 병원 가자. 응?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그렇게 하자. 그러면 다 나을 거야. 엄마, 아프지마 응?"

아프지 말라는 나의 말에 엄마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났다. 내 마음도 아파서….

'옷은 나이대로 입는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엄마는 키는 작아도 몸이 다부져 몸집이 제법 있는 체형이다. 허리둘레 36인치에 몸무게가 60kg을 훨씬 넘을 정도로 뚱뚱하던 시절도 있었다.

치매에 걸린 후에도 적당한 '똥배'와 넓은 등의 몸을 그대로 유지하던 엄마는 지난 1년 전부터 조금 더 살이 빠져 52kg 대로 내려왔다. 거기에서 또다시 엄마의 몸무게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 3, 4개월 전인 듯싶다.

"아주머니, 엄마 살이 자꾸 빠지는 것 같아요. 이상해요."

난 엄마를 돌봐주시는 아주머니에게 엄마의 변화를 눈여겨 봐 달라고 얘기 했지만 중국동포인 아주머니는 식사를 잘 하시고 '일없다'며 '이상 없음'만을 강조했다.

아주머니를 괴롭히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목소리가 큰 아주머니 역시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기보다는 의무로 대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주머니의 '못해먹겠다'는 푸념도 잦아졌다.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영향이 있는 것 같아 늦게 퇴근해 돌아온 난 가라앉은 엄마의 기분을 띄워보려 애를 썼지만 엄마는 무표정이었다.

아침 출근도 늦춰가며 엄마와의 장난을 시도했지만 엄마는 시큰둥을 넘어 짜증까지 냈다. 말이 없고 웃음도 없고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우울증 증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외식을 해도 짜증스럽게 식사를 하며 졸기까지 했다. 엄마, 엄마하고 헛소리 같은 잠꼬대까지 하는 엄마에게 난 긴장감마저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일 없는 엄마가 아주머니와 둘이 앉아 무슨 재미가 그리 있었을까. 난 아주머니께 엄마와 낮에 고스톱도 좀 치고 장난도 쳐 가며 놀아줄 것을 부탁했다. 아주머니의 대답은 '무엇을 하려해도 언니가 안하려한다'는 대답뿐이었다.

엄마의 살은 계속 빠지고 엄마의 침묵도 계속되었다. 몸은 몸대로 지쳐 있는 듯했다. 엄마는 한 달에 한번쯤 기분이 몹시 나빠져 한바탕 '행사'를 치른다. 그 행사란 것이 밤새 오줌을 싼다든지, 말을 하지 않는다든지, 약을 삼키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또 집엘 간다고 밤새 떼를 쓰기도 하고, 말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기도 한다. 그러기에 나는 엄마가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식욕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기에 연례행사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어느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 전에 엄마를 씻기다가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다. 그 넓던 엄마의 등이 한 없이 작아져 있었던 것이다. 그 당당하던 엄마의 똥배는 온 데 간 데 없이 홀쭉해져 있었다. 몸무게를 재보니 불과 두어 달 사이에 4kg이나 빠져 있었다.

문득, 얼마 전 아는 분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그 분은 일 때문에 일주일가량 우리 집에 묵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내가 머무는 일주일동안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점심을 드린 적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나는 늦은 아침을 드시는 엄마에게 점심 드실 시간이 마땅치 않아 가끔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었다.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던 난 혹시 지난 몇 달 간 엄마에게 아주머니가 점심을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낮에 통화를 할 때마다 아침을 늦게 먹어 엄마랑 고구마를 쪄 먹었다는 말이나 부침개를 해 먹었다는 말을 듣고는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리고는 이른 저녁을 먹었을 터였다.

엄마의 주식거리와 간식거리를 잔뜩 사다 냉장고에 채워놔도 아주머니는 엄마를 잘 챙겨드리지 않았다. 음식이 썩어서 버리기를 몇 차례하자 난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가 안 드시려고 한다'는 말에 무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난 아침 드시고도 과일 등의 간식을 드렸고 점심 드시고도 간식을 드렸다. 밤늦은 시간이라도 엄마에게 간식을 드렸었다. 식성이 워낙에 좋은 엄마는 매번 정말 맛나게 드셨었다.

건강을 생각해 많은 양을 드리지는 않지만 균형 있는 영양을 위해 난 이것저것 쉬지 않고 챙겨드렸던 것이다. 워낙 식성도 좋으시고 소화력도 좋으신 터라 그렇게 드신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거나 특별히 살이 더 찌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난 문득 엄마가 살이 빠지기 시작한 지난 두어 달 아주머니가 점심을 간식으로만 때운 때부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약도 제때 드렸다고 주장하는 아주머니의 말을 믿고 있었지만 약통을 보니 하루 세 번 드려야 할 약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체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사태를 그때야 눈치 챈 나는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 영양제를 맞게 해 드렸다. 한의원에 가서 한약도 짓고 엄마에게 갖은 영양식을 시작했다.

영양제 두 병을 맞고 나니 엄마는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바뀌어 하루 세 끼 따뜻한 식사를 드리고 간식까지 챙기니 엄마의 걸음걸이와 기분 상태는 이전보다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말도 잘 하지 않으려던 엄마가 기력을 조금 회복하자 예전과 같이 말수가 많아지고 농담도 하게 되었다. 걸음걸이도 힘이 들어가 부축 없이도 집안을 '휘젓고' 다니기까지 한다. 밤새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했다.

엄마의 그 홀쭉하던 배는 다시 볼록하게 똥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난 엄마의 똥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 심은식
엄마는 외식과 외출을 하면 주변사람들과 농담도 하고 즐거워했다. 엄마의 구겨진 얼굴이 펴지고 얼굴에 웃음이 번지자 나는 비로소 안심하게 되었다.

웃음과 말을 되찾은 너무나 고마워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아프지 마, 아프면 안돼. 건강하게 나랑 오래오래 살자"
"오래 살긴 뭘 오래 살아. 다 늙어 빠져서. 빨리 죽어야지."

"엄마 점쟁이가 백 살까지 산대. 그러니까 건강하게 살아야지."
"에이, 무슨 그리 징그런 말을 하냐? 백 살까지 어떻게 살아? 오래 살아봐야 니들 고생이지.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장수한다고 말하면 엄마가 좋아할 거란 생각에 한 거짓말이었는데 기분을 좋게 하려는 내 의도와는 달리 엄마는 갑자기 심각해 졌다.

"엄마, 그럼 언제 죽을 건데?"

나의 직설적인 질문에 엄마는 주먹을 쥐어 날 때리는 시늉을 하며 웃기 시작한다.

"엄마, 진짜로 점쟁이가 백 살까지 산다 그랬어. 그러니까 아프지 말아야해. 알았지? 밥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건강해져서 관광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우리 둘이 재밌게 같이 살자. 자, 약속하자. 약속!"

엄마랑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아프지 말기. 밥 잘 먹기. 약 잘 먹기, 그렇게 세 번 약속했다. 엄마는 그제야 기분 좋은 웃음을 웃는다.

난 지난 몇 달 바쁘다는 핑계로 아주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것이 엄마의 상태를 나빠지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놀아주지 못해 엄마를 외롭게 했던 시간에 대한 반성도 했다. 사랑이란 커다란 무엇이 아니라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잠시 잊었었나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