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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소문난 자장면' 집. 외팔이 아저씨가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자장면과 짬뽕을 만든다. 소주병에 감국 몇송이가 꽂혀있는 안방 풍경.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소문난 자장면' 집. 외팔이 아저씨가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자장면과 짬뽕을 만든다. 소주병에 감국 몇송이가 꽂혀있는 안방 풍경. ⓒ 이승열
스님은 몇 번인가의 결정을 번복하다 결국 짬뽕 곱빼기로 정했다. 우리들도 몇 번의 갈등 후에 둘씩 짝을 진 후 자장, 짬뽕을 섞어 시켰다. 늘 사소한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 나뿐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도 스님도 다 똑같다. 짬짜면을 처음 대했을 때 느꼈던 세상과의 동질감과 안도감. 우동 짬뽕을 계속 고민하던 스님은 기어이 가장 어린 예쁜 처자한테 "스님, 너무 귀여우세요"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소문난 자장면집 답게 전국에 마니아를 형성할 만큼 짬뽕과 자장면의 맛은 훌륭했다. 우리는 외팔이 아저씨가 쓴 책을 한 권 샀다. 미인 아내와 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자장과 짬뽕 맛이었다. 재료를 아끼지 않은 면과 소스, 식욕을 돋우는 색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친절, 모든 것이 훌륭했다. 엊그제 대한민국 최고라고 소개받은 압구정동 짬뽕보다 100배쯤 더 맛이 좋았다.

대나무 숲 뒤에 백장암이, 대나무 숲앞에 검은빛 탑과 연등이 서 있다.
대나무 숲 뒤에 백장암이, 대나무 숲앞에 검은빛 탑과 연등이 서 있다. ⓒ 이승열
2005년 6월 9일 한여름의 실상사 백장암.
2005년 6월 9일 한여름의 실상사 백장암. ⓒ 이승열
결국은 호두나무에 오르고 마는 다람쥐

스님은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셨다. 짬뽕 속의 해물을 드시나 남기시나 또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H는 여고시절 스님을 처음 봤다고 했다. 할머니 생일날이었다고 했다. 무서운 얼굴, 과묵한 몸짓, 잿빛 장삼이 스님에 대한 기억의 전부라고 했다. 스님이 고기를 먹을까? 먹지 않을까? 그것만이 궁금했고 그것만을 지켜봤다고 했다. 스님은 고기뿐 아니라 다른 음식도 거의 먹지 않아 신기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땐 참 어렵고 무서웠다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늘 지리산 자락에 오면 실상사를 시작으로 노고단, 화엄사, 연곡사를 거쳐 피아골쯤에 숙소를 잡곤 했었다. 함양 쪽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리산 여행 준비 중 만난 누군가는(실상사를 징검다리로 건넌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대원사만은 남겨 두라고 충고했다. 그곳은 꼭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가야 하는 곳이라고...

고민하고 말고도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 그들이 있어 내 생이 조금은 풍요로워졌고, 견딜만해졌다. 그들과 열 달을 준비해 떠난 여행이었다. 말도, 설명도 필요 없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그들이 함께 버텨 주어서 시대와의 불화를 견딜 수 있었다. 나 혼자 같으면 어림도 없었다. 마음이 좀 불편했겠지만 다수 속에 숨어 내 의견을 말하지도 않고, 무엇인가를 바꿀 노력 같은 것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발굴중의 백장암 탑과 부도. 땅 속에서 삶의 흔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발굴중의 백장암 탑과 부도. 땅 속에서 삶의 흔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이승열
부처의 무덤 탑, 스님의 무덤 부도가 나란히 서 있다.
부처의 무덤 탑, 스님의 무덤 부도가 나란히 서 있다. ⓒ 이승열
전날 스님 숙소에서 전북에서 두개 뿐 인 국보 이야기를 들었다. 실상사 약사전 철불처럼 검은빛을 띠는 백장암 탑은 탑신에 난간을 두른 독특한 형태라고 했다. 백장암 입구 감나무에 등불처럼 감들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지난 6월에 왔을 때에는 발굴 조사 중이던 백장암 탑 주변이 지금은 발굴흔적이 전혀 없이 깔끔하다. 내가 지난 여름 꿈을 꾼 듯싶다. 깨어진 기와의 파편, 땅 속에서 세상에 막 모습을 드러낸 아궁이,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그을림, 파헤쳐진 주변 때문에 마치 섬처럼 고립됐던 백장암 검은 탑과 부도를 분명히 봤었다. 한번 발굴을 시작하면 몇 년씩 파헤쳐져 있는 모습들만 대했던지라 발굴 후 땅 속에 고스란히 흔적을 도로 묻어버리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백장암이 신기했다.

내가 서 있는 이 땅 아래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05년 6월 9일 발굴현장.
내가 서 있는 이 땅 아래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05년 6월 9일 발굴현장. ⓒ 이승열
백장암 검은 탑에 새겨진 조각들. 옥개석에도 탑신에서도 붓다의 영토를 지키고 있다.
백장암 검은 탑에 새겨진 조각들. 옥개석에도 탑신에서도 붓다의 영토를 지키고 있다. ⓒ 이승열
'이 땅 아래 온돌이 있었지. 아궁이에 검은 그을림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는데. 아, 이 아래는 댓돌이 있었던 자리. 토방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댓돌을 딛고 마루에 오르며 지리산 능선을 봤을 거야.' 누군가 그랬다. 발굴은 역사의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라고. 오래 전 내 꿈을 생각했다. 장래희망을 물을 때 난 한가지에만 손을 들었다. '고고학자' 지금은 꿈과 너무 멀리 떨어져 밥벌이를 하고 있다. 여행 중 땅 속을 드러낸 집터, 절터를 만나면 지금도 내 가슴은 한동안 뛰곤 한다.

탑 아래 서니 멀리 불꽃 모양의 지리산 능선이 눈에 잡힌다. 저런 봉우리를 앞에 두고 있으면 풍수지리학적으로 마주한 건물에 불이 자주 난다고 했다. 저 화산 봉우리 어디쯤 매년 소금가마를 묻어 화마를 잡는다고 했다. 몇 번인가 왔어도 눈에 뜨이지 않던 사미승의 조그만 부도를 스님이 알려준다. 등불처럼 가지에 매달린 주홍 감들이 쪽빛 하늘에서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백장암 사미승 부도 앞에서 본 지리산 능선. 불꽃처럼 솟아있는 봉우리를 마주하면 불이 자주 난다고 한다.
백장암 사미승 부도 앞에서 본 지리산 능선. 불꽃처럼 솟아있는 봉우리를 마주하면 불이 자주 난다고 한다. ⓒ 이승열
백장암 호두나무, 호두를 확보하려는 스님과 다람쥐의 신경전이 오늘도 치열하다.
백장암 호두나무, 호두를 확보하려는 스님과 다람쥐의 신경전이 오늘도 치열하다. ⓒ 이승열
나무 줄기에 양철이 감겨져 있었다. 다람쥐로부터 호두나무 열매를 지키려는 백장사 스님들의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줄기를 매끄럽게 하지 않으면 단 한 개의 호두도 맛볼 수 없을 만큼 다람쥐들이 다 가져간다고 했다. 백 번, 이백 번 그 미끄러운 양철 줄기를 결국은 오를 만큼 다람쥐들도 호두를 얻기에 필사적이라 한다. 초보 농사꾼인 F는 딱따구리의 잽싼 부리놀림으로 순식간에 호두 알맹이가 빠져나가는 것을 본적이 있다고 감탄했다.

자꾸 늦장을 피운다. 이제는 짧은 인연을 뒤로 할 시간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스님은 내일 새벽 문경 봉암사로 동안거를 떠난다고 했다. 인월 차부에서 스님과 헤어졌다. 40년 만에 속가의 핏줄을 만난 스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스님과 헤어지며 잠깐 큰 눈이 붉어졌던 H의 마음이 어땠을까 따위의 호기심은 일지 않았다. 만추 실상사에서 하룻밤을, 스님과의 동행을 가능케 한 내 오랜 친구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아래 오솔길을 건너 사미승의 부도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오솔길을 건너 사미승의 부도가 있다. ⓒ 이승열
작년 시월상달에도 보름달은 떴을 것이고, 재작년에도 떴을 것이다. 지리산에서 돌아온 뒤 내내 달에 취해 살았다. 아파트 옥상에서도 달을 맞았고, 몽촌토성 위에서도 달을 맞았다. 조금씩 달뜨는 시간이 늦어지며 달이 오른쪽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보름이 지난 어느 날 퇴근길 동쪽 하늘에 아직도 둥근 달이 떠올랐다. 아파트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H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달, 그리고 눈물. 반복 또 반복" 일곱 명 모두에게 그랬다. 실상사가, 지리산 골짜기마다, 끝없이 이어지던 능선에 쏟아지는 달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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