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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일 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 2명의 안타까운 사망소식을 들어야 했다.

한 명은 외국 유학길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막내딸 윤형씨이고, 또다른 한 명은 농촌의 현실을 비관하며 음독자살한 여성농민 오추옥씨다.

어느 사회에서건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두 여성의 죽음을 보도하는 우리 언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숙연함에 앞서 의아심을 감출 수 없다.

먼저 윤형씨의 사망소식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22일 오전 연합뉴스가 최초로 보도하면서부터. 이후 각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이씨의 사망소식을 매시간 주요뉴스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의 모습에서부터 이씨의 재산내역, 심지어는 고인의 인터넷 미니홈피까지 거론하며 누리꾼들의 추모가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이씨의 사망관련 소식을 무려 9개나 편집, 기사화하는 친절(?)을 베풀었고, MBC 역시 23일 오전 장례식을 마치고 귀국하는 가족들을 기자의 리포트까지 넣어가며 상세히 보도하면서 카트로 공항을 빠져나가는 가족의 모습을 방영했다.

반면 지난 주 정부의 살농(殺農)정책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북 성주의 여성농민 오추옥씨의 자살소식을 제대로 보도한 언론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부 인터넷언론만이 중요기사로 오씨의 음독소식을 보도했을 뿐 재벌가 막내딸의 사망소식을 관련기사까지 편집해가며 대대적으로 알린 대다수 언론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것도 경향신문, 한겨레, 국민일보 등이 '쌀개방 반대 음독여성, 끝내 숨져'라는 제목으로 일부 처리했을 뿐, 대형 언론들은 이를 기사화하지 않거나 단신 처리하는 데 그쳤다.

물론 언론사로서는 소위 잘나가는 재벌가의 막내딸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던 도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독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소재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수입 강요와 잘못된 농촌정책으로 살아야 할 희망마저 잃어버린 농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젊은 여성농민의 죽음이 재벌가 막내딸의 죽음보다 더 비중있게, 아니면 최소한 동등하게라도 다뤄졌어야 했다.

23일 쌀협상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질 것이다. 이를 취재하려는 언론사의 열기도 그만큼 뜨거워질 것이다. 농민들의 모습을 취재하는 언론의 공정한 보도행태를 희망하는 것이 비단 기자만의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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