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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에 이르면 마음을 허공같이 비우라"는 뜻을 새긴 돌기둥
"이 문에 이르면 마음을 허공같이 비우라"는 뜻을 새긴 돌기둥 ⓒ 문일식
아침 일찍 도착한 용주사에 도착했습니다. 용주사 입구에서 잠시 멈칫 했는데, 뭔가 다른가 했더니 사천왕문을 조성중이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연풍교를 올라서려니 양쪽에 서 있는 선돌에 "이 문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허공같이 비우라"는 한 자가 4자씩 정연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일주문이 없는 용주사에서는 마치 이 두 선돌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삼문 앞까지 이르는 굽은 돌길과 마치 시립해 서 있는 듯한 선돌들이 인상적인 길입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마치 사대부집처럼 삼문과 양 옆으로 이어진 행랑채가 나타납니다.

삼문 앞에 앉아 있는 해태상
삼문 앞에 앉아 있는 해태상 ⓒ 문일식
삼문 앞에는 크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무섭지 않고 귀여운 해태상 두 기가 있습니다. 모두 앉아 있는 상인데, 아침 햇살이 서서히 퍼져 내려올 때쯤이면 마치 문앞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는 고양이 같은 느낌도 듭니다. 송곳니를 뾰족히 빼어문 해태상을 살짝 어루만져주고,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우뚝 솟은 천보루는 좌우에 만수리실과 나유타료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건물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천보루를 지나 대웅보전을 바라보며 걸으면 어느 순간엔가 돌길을 걷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일주문, 천왕문 등 있어야 할 건물들도 없고, 생뚱맞게 삼문이 나오는가 하면, 주불전 앞에 있어야 할 석탑이 누각의 앞에 있고, 또한 대웅보전으로 이르는 길에 마치 참도처럼 박석을 깔아 길을 만든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른 용주사.

용주사 대웅보전의 전경
용주사 대웅보전의 전경 ⓒ 문일식
이 용주사는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 즉 장헌세자의 명복을 기리는 원찰입니다. 노론과 소론으로 갈린 서인들의 서로 죽고 죽이는 행태로까지 비화된 당쟁 속에서 28살의 젊은 나이에 뒤주 속에서 죽어간 사도세자. 11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효성이 지극한 정조는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조선 22대왕이 됩니다.

융건릉의 낙엽 가득한 숲
융건릉의 낙엽 가득한 숲 ⓒ 문일식
침전 지붕 위까지 자객이 침범할 정도로 불안했던 왕위였지만,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성군이자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궈낸 임금이 되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는 정조는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존함과 더불어 묘를 융릉으로 옮기면서 격상시켰고,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이라는 설법을 듣고 용주사를 창건하게 이르렀습니다.

용주사는 그런 정조의 효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찰입니다. 삼문이나 행랑채가 딸린 것도 그렇고, 대웅보전에 이르는 길도 그렇고, 정조가 기념 식수했다는, 지금은 앙상하게 말라죽은 회향목 등 구석구석 정조의 숨결과 손길이 느껴지고도 남음입니다. 융건릉은 정조의 아버지인 장헌세자와 혜경궁 홍씨로 잘 알려진 경의왕후의 합장릉인 융릉과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인 건릉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 융건릉은 영월의 장릉과 여주의 효종대왕릉인 영릉과 함께 개인적으로 세 손가락에 꼽는 아름다운 왕릉이기도 합니다. 원색의 물결이 사라진 융릉과 건릉으로 가는 사잇길에는 사각사각 밟히는 낙엽소리를 한창 들을 수 있습니다. 낙엽을 손으로 모아 허공 위로 뿌려보기도 하고, 낙엽을 잔뜩 모아 놓은 곳에서는 낙엽의 탄력을 맘껏 누려보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조개구이
맛있는 조개구이 ⓒ 문일식
봄이 오면 봄대로, 겨울이 오면 겨울대로 한없는 운치가 있는 곳이 바로 융건릉이 아닌가 합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묘였던 아버지의 묘지를 릉으로 격상했고, 장헌세자로 추존했으며, 용주사를 지어 아버지의 명복을 빌게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융릉과 건릉은 표면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장헌세자의 릉에는 건릉에도 없는 병풍석이 둘러쳐져 있고, 왕에게만 세우는 무인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그만큼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단적으로 융릉을 자주 참배했던 정조는 능행길에 송충이가 융릉 주변의 소나무를 갉아먹자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도 그 행동을 용서할 수 없다"며 씹어 죽인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이제 푸른 잔디는 없지만 누렇게 익은 잔디 위에 잠시 누워 늦가을의 갸날픈 햇살을 잠시 받아봤습니다.

융건릉에서 나와서는 제부도로 향했습니다. 양 옆으로 바닷길을 아슬아슬하게 건넌 후에야 '섬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곳. 근교로 바다를 보러 오는 사람들, 조개구이에 술 한 잔 하며 왁자지껄함을 즐기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유혹하는 조개구이집들 속에서 누가 수요자이고 누가 공급자인지 잠시 헷갈렸습니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 앉아 말하지 않아도 절로 나올 법한 조개구이에 왕새우구이를 추가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소주 잔에 소주를 들이붓고는 건배를 할 것만 같습니다.

먹음직스러운 왕새우구이
먹음직스러운 왕새우구이 ⓒ 문일식
제부도 해안산책로
제부도 해안산책로 ⓒ 문일식
쩍쩍 벌리는 조개들을 헤집는 젓가락은 여지없이 바쁘고, 술잔 또한 거침없이 비워지면서 사람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기억 속에 담기 바쁩니다. 어느 정도 술잔이 돌고, 조개와 왕새우의 빈껍질만이 혼란스럽게 나뒹굴면 이제 서서히 속을 풀어줄 바지락 칼국수가 도착합니다. 속이 확 풀어지는 느낌과 포만감이 동시에 느껴지고, 이때쯤 되면 제부도를 한바퀴 도는 산책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제부도에는 서쪽 해안가 절벽 쪽으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옷깃을 여미고 스산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느껴 볼 수 있습니다. 물때를 맞춰서 나가야하는 번거로움과 아쉬움이 있지만, 그 아쉬움은 궁평리에 가면 더 큰 보상을 받게 됩니다.

제부도에서 20~30분 정도면 궁평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궁평리 포구에는 길었던 하루를 접고, 날개를 접어 곤히 쉬고 있는 갈매기들과 배들이 잔잔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를 보기 위해 하나 둘씩 방파제 끝으로 다가 갔습니다.

화성팔경인 궁평리 낙조
화성팔경인 궁평리 낙조 ⓒ 문일식
솔숲이 있는 곳에서 보는 낙조가 궁평리 낙조이지만, 방파제를 거닐며 보는 낙조 또한 괜찮았습니다. 화성 8경 중 하나인 궁평리 낙조는 무언가 특이함이 있습니다. 붉음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나타내기에 충분했고, 커다란 느낌은 이내 바다를 황홀한 느낌으로 만들고, 부드러운 적색으로 흔들었습니다.

궁평항의 방파제에 세워진 정자
궁평항의 방파제에 세워진 정자 ⓒ 문일식
해가 떨어지는 수평선에는 마치 거대한 배 한 척이 가로지르는 것처럼 연기를 뿜어내는 공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낙조가 절정에 이르게 되면 공단 사이로 해가 넘어가는데, 이때의 느낌이 참으로 남달랐습니다. 21세기 기계만능주의로 철저히 파괴된 황량한 바닷가.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름다운 낙조였습니다.

해가 떨어진 후 금성이 뜬 바다 풍경
해가 떨어진 후 금성이 뜬 바다 풍경 ⓒ 문일식
붉은 기운이 바다위에서 사라지고, 어느새 밝은 금성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empas.com/foreverhappy4u/에 올렸습니다.
지난 11월 20일에 다녀온 여행기 입니다. 

★ 여행정보
용주사,융건릉
수원에서 1번국도 ▶ 병점 사거리 우회전(지하도X)▶용주사 표지판 따라 이동 
융건릉은 용주사에서 나와 우회전하여 길을 따라가면 융건릉 표지판 따라 이동

제부도
융건릉에서 비봉IC까지 간뒤 306번 지방도를 타고 안내표지판 따라 직진

궁평리
제부도에서 303,309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궁평리 안내표지판 따라 직진
※ 화성 8경 궁평낙조는 선착장가기전에 우회전해 시멘트길로 가야합니다(표지판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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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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