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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 20) 오후 3시에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을 찾았습니다. 막내 형님은 형수님과 이미 집에 도착해 있습니다. 집을 둘러보다가 형님과 나는 어릴 적 추억이 깃든 마을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야트막한 마을 주변의 논밭은 이미 억새만 가득차서 겨울을 재촉하는 싸늘한 늦가을바람에 웅웅거리는 것이 마치 농촌의 서글픈 현실을 목놓아 우는 듯 합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뼘쯤의 밭을 일구기 위해 형님과 어머니는 호미와 곡괭이질을 하고 나는 자갈 소쿠리를 들어 나르던, 땀에 절었던 우리 밭도 묵어있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우리 밭에 심은 머위는 봄에서 여름까지 입맛을 돋우는 반찬이 되어주어 위안이 됩니다. 산기슭에 서 있는 아름드리 큰 버드나무는 40년 전, 막내형님이 어릴 때 심은 나무들입니다.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파리를 벗은 제법 큰 나무에 작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 고욤과 단감
ⓒ 한성수
"형님, 귀감나무(고욤나무)입니다."

감나무에는 고염이 새까맣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형님은 나무 위에 올라서 감나무를 흔들고, 나는 부지런히 감을 줍습니다. 우리는 까맣게 말라붙은 고욤을 입에 넣어 봅니다. 말랑말랑하면서 쫀득하니 입에 착 달라붙는 달짝지근한 맛이 곶감맛과 흡사합니다.

▲ 고욤나무가지
ⓒ 한성수
우리가 따온 고욤을 보이자 아내와 아이들은 '평생 처음 보는 열매'라며 신기해합니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건포도와 같은 맛'이라며 잘 익은 것으로 하나씩 골라줬습니다. 그런데 덥썩 입에 넣은 아이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내가 미심쩍어서 홍시가 된 고욤을 입에 넣는데 떫은맛만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나는 서둘러 씨만 오소소 뱉어 냅니다. 말라붙은 것은 곶감이 되었지만 홍시는 아직 땡감(덜 익은 풋감)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 고욤 속 모습(있을 건 다 있어요)
ⓒ 한성수
"이 감이 말하자면 감의 최고 할아버지란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고욤나무를 귀감나무라고 했는데, 나는 단순하게 귓불만큼 작아서 그리 부른다고 생각했단다. 봄에는 다른 큰 감꽃과 달리 너무 앙증맞아서 떨어진 고욤꽃을 주워서 목걸이를 만들어 여자애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지.

고욤열매를 따서 단지에 두면 과육을 물러서 젤리처럼 되고 씨가 남는데, 이 씨를 뿌린 묘목에 다른 감을 접붙인단다. 감나무 묘목은 주로 고욤이나 돌감의 씨를 뿌려서 키운 것인데, 단감이나 박두감, 반시는 전부 접을 붙인 감나무란다."

내가 자신 없는 설명을 마치자, 어머니는 다시 말을 잇습니다.

"옛말에 '고욤이 감보다 더 달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겉모습이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실속은 더 알찬 사람을 이르는 말이란다. 저 것이 보기는 저래도 잘 익으면 맛도 좋고, 열매는 소갈증이나 감기, 천식 등 기관지 계통에도 효험이 있단다."

우리는 따온 감을 삼등분으로 나누었습니다. 나는 우리 몫을 병에다 담았습니다. 아마 보름정도 두면 말랑말랑한 젤리가 될 것이고 아이들도 그 때는 좋아하겠지요.

도토리만한 크기의 고욤나무열매, 작다고 얕보지 마세요. 고욤이 바로 모든 감의 원형이니까요.

▲ 가까이서 본 고욤
ⓒ 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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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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