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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에 천원짜리 심플한 라인의 머리띠
두개에 천원짜리 심플한 라인의 머리띠 ⓒ 박유민
불황 탈출 메모 1. 싸게 판다는 것은 장점, 고객에게는 그 장점을 부각하되 사실 너무 친절할 필요도 없다.

난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일찍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살 것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작은 화장품 가게가 있었다. 여기로 들어가니 주인은 뭔가 하고 있었다. 시큰둥한 태도로 뭘 찾는지 묻지도 않았다. 난 머리띠를 사러왔다고 말했다. 저기 있다고 한다. 내가 찾는 것이 없었다. 그냥 나와버렸다.

다음으로 간곳은 길 건너 노점이었다. 말하자면 액세서리를 덤핑으로 모아다 잔뜩 싸게 파는 곳이었다. 이쁜 게 별로 없어서 늘 그냥 지나치다가 오늘 필요한 것은 기본형이기에 한번 들렀다. 앞의 가게보다 절반 정도 가격이 더 쌌다.

나는 “아저씨, 거울 없어요? 어울리는지 보고 싶은데...”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1초도 쉬지 않고 대답한 말. “저기 길 건너에선 그거 한 개에 천원이야. 우린 거울 같은 거 없으니까 살려면 사구 안살거면 거기가서 사”라고 하는 것이었다. 불쾌해야 할텐데 오히려 난 얼른 머리띠 두개를 집어들었다.

합리적인 가격 앞에서 무엇을 더 논하겠는가. 내가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말이다. 둘 다 기본형으로 어디에 두어도 쓸모가 많았고 집에 있는 비즈 구슬에 꿰면 예쁜 머리띠로 리폼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두말도 않고 지갑을 꺼내 돈을 드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소비자의 심리다. 모든 고객은 친절한 가게에서 지갑을 열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은 구매행동도 심리 전략이므로 무조건 많이 깎아주고 아주 많이 친절하게 군다고 해서 물건을 많이 팔거나 단골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적당히 튕길 줄도 알고 손님을 주무르고 뒤흔들만한 '말빨'은 갖춰야 한다.

말하자면 판매자의 입장에서 단호히 안되는 건 안된다고 살짝 튕길 줄도 알아야 한다. 바코드가 찍히는 중대형 매장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위에서 빨리 구매 결정 행위를 하게 만든 동인은 아저씨의 ‘안살거면 딴데 가서 사’라는 말투에 배인 자신감 때문이었던 듯하다. 어디가도 우리만큼 싸게 파는 데 있겠냐는 확신에 찬 자신감 말이다.

새로산 빨강 립스틱을 바르고
새로산 빨강 립스틱을 바르고 ⓒ 박유민
불황 탈출 메모 2. 업종별 특성화된 전략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라

난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가게를 별 살 것이 없어도 꼭 둘러본다. 가게 진열품이나 물건의 질, 디스플레이와 주인의 친절도 등을 속으로 체크해두었다가 단골을 할 것인지 그냥 둘러보고 나올 것인지를 정한다. 빵집이든 화장품 가게든 내가 맘에든 물건이나 서비스를 거기에서만 제공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매장을 꼭 다시 들르게 될 것이다.

오늘 내가 아침에 들른 곳은 화장품 가게. 얼마 전 신장개업을 한 가게다. 난 그곳에서 얼마 전 아이라이너를 산 적이 있다. 아저씨가 주인인데도 꼼꼼한 상품 분석을 해주셔서 제품을 고르는데 별 시간을 들이지 않고 제품을 신뢰하면서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 또 덤으로 이것저것 팩이며 샘플 로션을 주는데 다 쓸 것도 아니면서도 일단 주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난 며칠 전 산 빨간 터틀넥 스웨터에 어울릴만한 예쁜 색깔의 붉은색 립스틱을 찾고 있었다. 아침에 급히 나가는 길이었기에 제품을 고를만한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아저씨는 내 맘을 읽었던 것인지 발라보는 것에 대해 부담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내가 알아서 고를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결국은 시간 때문에 맘을 못정하고 매장에서 자리를 떠야했 는데, 그때 던진 아저씨의 한마디. “립스틱을 안가져와서 그러는 거면 여기서 저거 바르고 나가요.” 사실 그랬다. 내 맘을 읽은 것 같은 한마디에 난 저녁에 오는 길에 그 립스틱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사실 화장품의 경우는 요즘 정말로 작은 매장을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신상품의 홍수 속에서 큰 점포들은 각각 할인 경쟁이나 경품 경쟁으로 제살깎기식 경영을 하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오프라인에서보다 더 값싼 제품들이 화려한 색깔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동네에 있는 작은 화장품 가게에서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며 화장품 얘기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느덧 옛일이 되어 단골 잡기가 이전보다 수월치 않다.

그래서 작은 점포의 화장품 가게에 필요한 것이 고객 개인에 대한 화장품 컨설팅 서비스 부분이다. 사실 인터넷 가게에도 리뷰을 보면 제품을 써본 소비자들의 평가가 올라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전문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화장품은 대체로 여성 소비자가 많고 그들 개개인의 피부 취향과 기호가 다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춘 컨설팅을 제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뚫는 것이 이 가게가 단골을 잡아나가는 전략이라고 난 생각했다.

당연히 일찍 문을 열고 먼지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밝고 환하게 제품이 드러나 보이도록 디스플레이하고 외양과 내면에서 점포 이미지가 밝고 단정한 것은 판매의 기본적 요소일 것이다.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동네의 튀김집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동네의 튀김집 ⓒ 박유민
불황 탈출 메모 3. 노점이라고 해서 다 싼 것은 아니다. 고급화와 질, 제품관리에 승부수를 띄워라!

지하철 역에서 나왔을 땐 언뜻 배가 고팠다. 집이 가까운 거리인데도 전철역 옆에 있는 튀김집의 냄새가 나의 군것질 욕구를 자극했다. 그 튀김집은 노점이지만, 이 근방 분식점이나 떡볶기집 이상 가는 단골을 많이 잡아두고 있다.

항상 사람으로 붐비지만 북적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잠시 기다려서 포장으로 가져가는 손님이 많기 때문. 그리고 튀김을 다시 튀기지 않고 진열된 튀김만 그냥 먹어도 항상 따뜻하고 방금 만들어낸 튀김이 꼭 먹을 만큼만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부부가 오랫동안 튀김을 팔면서 얻은 노하우로 절대로 다시 튀김을 튀겨서 줌으로써 기름기를 더 배게 해서 튀김의 맛을 떨어뜨리지 않는 비결 덕분이다.

또 식용유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튀김, 바로 이곳에서 파는 제품에 대한 신뢰를 강하게 잡아두는 요인이 된다. 누가 보아도 맛으로도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이 바로 식용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점에서는 (비용 부담 때문에) 튀김을 메인 메뉴로 넣지도 않을뿐더러 식용유를 제대로 깨끗하게 관리하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사먹으면서도 약간의 찜찜함을 느끼기도 한다. 식용유 하나 만으로도 바삭바삭함과 눅눅함, 고소함과 닝닝함 같은 맛의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동네, 우리 집근처 신당동에서는 정말 먹거리가 많은 동네다. 중앙 시장이라는 큰 도매시장, 재래시장이 바로 옆에 있고 그곳엔 각종 전통 군것질 거리와 먹을 것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신당동 떡볶기가 있고 왕십리 쪽으로 오면 곱창 골목이 있다. 근처에는 분식집이며 횟집, 비빔밥 집 등이 거의 널려있다.

그러니 이 노점으로 치자면 경쟁 업체가 많은 입지 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찌보면 식당등이 많이 있는 곳의 상권은 오히려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만 노점이라는 약점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 특성화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른 가게라면 추울 때에도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반면 이곳은 그냥 서서 먹거나 포장해가야 하는 불리함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 가게의 불황 탈출법은 간단하다. 특성화와 고급화다. 노점이라는 인식을 깨고 제품의 질과 맛을 향상시켰고 항상 보기 좋은 모양새로 다듬어서 먹기 좋게 깔끔하게 진열해둔다. 재료도 도매시장에서 사오는 것을 다시 튀겨내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직접 만든 것으로 하기 때문에 고추 튀김이나 김말이 튀김의 맛은 그 어떤 곳과 비교해도 맛의 경쟁 우위에 있다.

그러나 질의 고급화는 당연히 가격 부담이 따른다. 다른 가게보다는 이 집 튀김의 가격이 다소 높은 편이다. 노점이라고 해서 고객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맛의 질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격의 상승부분을 고객은 당연히 받아들인다. 오히려 고객은 가격상승 요인을 다른 노점과의 차별점으로 인식한다.

덧붙이는 글 |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토스트 가게를 단돈 25만원으로 창업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써보지요. 불황이라 우울한 많은 분들의 표정을 펴드리고 싶어서 이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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