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남궁억 선생.
ⓒ RTV
시민방송 RTV(스카이라이프 채널 154, 케이블TV)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일제하 민족의식의 고취를 위해 '겨레의 꽃' 무궁화 보급에 헌신한 민족운동가 남궁억 선생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한서 남궁억과 무궁화>를 특별 편성한다.(구성시간 74분, 17일(목) 오전 11시 본방송, 18일(목) 새벽 2시 재방송).

'순국선열의 날'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그 얼을 기리기 위해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제정한 법정기념일. 이후 민간단체 주관으로 기념행사가 이어지다 1997년 정부 주관의 기념일로 복원되었다.

한서 남궁억(1863~1939)은 양반 가문 출생으로 21세 때(1883) 문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립 영어학원에 입학해 "갓 쓰고 영어를 배울 만큼" 일찍이 신문물에 눈뜬 인물. 첫 발을 벼슬살이로 시작했으나 서재필의 독립협회 결성 후 수석 총무를 거쳐 <황성신문>을 창간(1897)했으며, 을사보호조약으로 충격을 받고 이후 '교육 구국'에 큰 뜻을 두게 되었다.

배화학교에서 진보적 기독교 여성교육을 펼치던 그는 무궁화꽃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의 지도와 태극기의 수본을 만들어 수놓게 했는데, 이것이 배일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하여 압수를 당하기도 했다.

▲ 남궁억의 저서 <동사략>.
ⓒ RTV
1918년 극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강원도 홍천군 서면의 모국(보리울)으로 낙향, 교회를 세우고 저술에 몰두하는 한편 무궁화 보급운동에 헌신했다. 단군조선 이후 3ㆍ1운동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동사략>(1924)과 동화체로 사화를 기록한 <조선이야기>(1929) 각 5권 등 그의 모든 저술은 애국충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또 자신의 밭 수천 평에다 무궁화 묘목 밭을 만들어 학생들로 하여금 가꾸게 하고 해마다 수십만 주씩을 전국의 학교와 교회, 기독교단체와 가정에 분배했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로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피어나듯 우리 민족의 역사도 바로 그러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려 함이었다.

▲ 무궁화 자수 지도
ⓒ RTV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교육가요, 정치가요, 저술가요, 계몽운동가요, 언론인이요, 무궁화 애호가요, 게다가 음악가로 현대음악뿐 아니라 시조와 가야금에도 일가견을 지녔던 그는 평생 쉼 없는 활동으로 애국의 길을 가며 고초를 겪었다. 5번이나 옥살이를 거듭한 끝에 74세에 옥중에서 병 보석된 뒤 1939년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수많은 애국자들이 변절하고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던 민족 비운의 시대에 그는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아니하고 무궁화동산에서 무궁화와 더불어 살다 간 것이다.

▲ 백범 서명이 있는 태극기(좌), 광복군 서명이 있는 태극기(우)
ⓒ RTV
드라마감독 출신으로 영화작업을 하고 있는 김문옥 감독 연출의 '광복 60주년 기념작'인 이 작품은 100여종에 달하는 다양한 무궁화의 품종들과 함께 백범 김구와 광복군들의 체취를 담은 친필 서명 태극기 등 희귀 사료도 풍부하게 소개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